“a long time after in a galaxy far far away...”
[시카리오:암살자의 도시](2015)로 영화팬을 열광시킨 드니 빌뇌브 감독은 소설을 영상화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테드 창의 아주 짧은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컨택트](Arrival)로 만들었고, 필립 K. 딕의 매혹적인 소설(안드로이느는 전기양을 꿈꾸는가)과 그 영화(블레이드 러너)를 바탕으로 속편 [블레이드 러너 2049]를 완성시켰다. 그리고 그 기세를 이어 마침내 SF소설계의 오르지 못할 산으로 여겨지던 [듄]의 영화화에 뛰어든 것이다. [듄]은 프랭크 허버트가 쓴 연작소설이다. [듄]을 필름에 담을 때는 마치 김용의 무협소설을 영화 혹은 TV드라마로 만들 때처럼 취사선택의 기로에 서야한다. 세상에 없는 우주를 배경으로, 세상에 없는 인물을 다 채워 넣을 수는 없기에. 그러면서 세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프랭크 허버트의 소설, 그리고 모래 전사들
[듄]은 프랭크 허버트(팬들은 ‘FH’라고 한다)가 1965년 처음 발표한 작품이다. SF소설계의 노벨상이라고 할 수 있는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동시에 수상한 후 꾸준히 후속편을 내놓았다. 듄 시리즈는 [듄 - 듄의 메시아 - 듄의 아이들 - 듄의 신황제 - 듄의 이단자들 - 듄의 신전] 등 6부작으로 완성된다. 이야기는 아주아주 먼 미래의 우주에서 펼쳐지는 사가(Saga)이다. 우주는 황제와 명문 귀족, 우주 길드 등이 권력을 나누며, 아슬아슬하게 질서가 유지되고 있다. 그들 세상에도 정복과 독점, 종교적 우월감이 존재하고 있다. ‘듄’은 그런 세상의 이야기이다.
‘무려 10191년’ 칼라단을 통치하는 공작 레토 아트레이데스(오스카 아이삭)는 황제의 명에 따라 아라키스 별로 부임하게 된다. 일종의 총독이다. 이곳은 얼마 전까지 아트레이데스와는 원수지간이 하코넨이 다스리던 곳이다. 아라키스에는 멜란지라고 알려진 스파이스(향신료)가 무궁무진하게 묻혀있다.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신성한 환각제이자, 우주여행의 연료로 쓰이는 이 물질은 우주에서 가장 값비싼 물질 중 하나이다. 멜란지를 채취/채굴하는 것은 엄청난 돈벌이가 되지만 이곳 사막에는 크기가 수백 미터에 달하는 위험한 괴물 '모래벌레'가 살고 있다. 레토 공작은 아들 폴(티모시 샬라메)과 아내 레이디 제시카(레베카 퍼거슨)와 함께 이 새로운 행성에서 새로운 세상을 개척할 원대한 포부를 갖고 있다. 그들의 여정에는 오랜 심복인 거니 할렉(조쉬 브롤린)과 던컨 아이다호(제이슨 모모아)가 그림자처럼 따른다.
FH(프랭크 허버트)는 아라키스의 끔찍한 자연환경을 묘사하기에 앞서 생생한 권력투쟁, 정복의 야심을 펼쳐놓는다. 레토 공작은 포부를 채 펼치기도 전에 하코넨의 급습을 받고, 이제 16살에 불과한 아들 폴은 위험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폴은 어머니 레이디 제시카의 손에서 베네 게세리트라는 특별한 도제교육을 받은 ‘선택된 자’이다. 그런 폴은 하코넨의 음모와 황제의 야욕에 맞서 찬란한 투쟁을 펼치게 된다. 아라키스 행성의 보잘 것 없는, 하지만 불굴의 의지를 가진 원주민인 프레멘과 함께 말이다.
소설을 먼저 읽었다면 텍스트로 묘사된 것이 어떻게 이미지화되는지 궁금해 할 것이다. 모래벌레(샤이 홀루드)야 [스타워즈]를 통해 먼저 만나보았지만 폴이 입은 방어막을 친 옷, 원주민들의 패션, 그리고, 공중부양 하듯이 움직인다는 블라디미르 하코넨의 모습이다. 멜란지를 채굴하는 기계들과 하늘을 나는 오니솝터도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할 것이다. 드니 빌뇌브의 [듄]은 그런 점에서는 일단 원작 팬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킨다.
‘FH’의 방대한 소설의 1부에서는 폴이 어떻게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아라키스를 이어받게 되는지, 프레멘의 마음을 얻어 권력을 장악하게 되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황제의 권력에 맞서는 그의 놀라운 실력을 보여준다. 정략결혼을 포함해서 말이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듄 1편은 폴이 프레멘의 투사 자비스를 꺾고, 프레멘의 거주구역인 시에치 타브르에 들어가는 장면으로 끝난다. 속편에서는 더 많은 이야기, 더 많은 전투, 더 많은 정치적 부침이 예약된 셈이다. 정략결혼도 포함하여 말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초월적 존재 ‘퀴사츠 해더락’으로 추앙될 폴을 향해 ‘차니(젠다야)가 "이것은 시작에 불과해."라고 말한다. 드니 빌뇌브는 [듄]을 2부작으로 끝내서는 안 될 것 같다. 이왕 판을 벌인 것, 소설처럼 더 장대하고 더 오래 지속될 우주오페라로 이어가길 기대한다.
영화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선 몇 가지 알아둬야 할 것이 있다. 레베카 퍼거슨이 연기한 레이디 제시카는 레토 공작의 정실부인이 아니다. 제시카의 지위와 관련이 있다. 폴과 차니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레토 공작을 위험에 내모는, 그래서 아트레이데스 가문을 멸족시킬 뻔한 웰링턴 유에 박사는 대만배우 장진(장쩐 張震)이 연기한다. 그 유에의 모습에서 그 옛날 [고령가 소년살인사건]의 중학생, 그리고 [와호장룡]에서 중국 대륙 서북부 사막지역을 배회하던 산적두목 나소호를 누가 떠올릴 수 있을까.
프랭크 허버트는 [듄]을 쓰기 위해 엄청난 조사를 했단다. 얼핏 보아도 아랍 문화, 종교에 대한 연구가 공고하다는 것이 느껴진다. ‘아라키스’는 이라크로, 멜란지는 석유로 대입한 뒤 보아도 탁월한 제국주의/식민주의의 땅싸움을 엿볼 수 있다. 물론, [듄]은 더 나간다. 헛된 희망을 주는 권력가, ‘메시아’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에서처럼 영화 속 폴은 미래의 환영에 시달린다. 메시아는 사랑과 평화를 가져다주는 절대자가 아닐 수 있다. 결국 그들에 의해 ‘퀴사츠 해더락’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의 폴이 어떤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된다. [듄]의 세계관은 그렇게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