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열린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대만영화 [침묵의 숲](원제:無聲/The Silent Forest)은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대만 남부도시 타이난의 한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벌어졌던 끔찍한 일을 담고 있다. 그 영화가 4일, 한국극장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미리 밝혀둔다. 내용이 끔찍하다.
영화가 시작되자 가방을 둘러맨 장청(류자전)이 한 노인을 쫓아가서 실랑이를 벌이고, 드잡이를 하더니 경찰에 연행된다. 장청은 잔뜩 화가 나있지만 말을 못 한다. 청각장애인으로 수화로 ‘저 사람이 내 지갑을 훔쳐갔어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연락을 받은 학교 선생님(류관정)이 와서 상황을 수습한다. 일반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던 장청은 막 이곳으로 전학온 것이다. 이곳은 유치원부터 초등, 중고등학교까지 시스템이 잘 짜여있다. 기숙사 생활을 하며 같은 처지의 학생들이 동고동락하는 것이다. 그런데, 동급생 베이베이(전연비)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기숙사에서 학교로 가는 통학버스 속에서 끔찍한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이 영화는 지난 2011년 대만을 발칵 뒤집어놓은 장애인학교 성폭력 사건을 재구성한 것이다. 이 학교에서는 오랫동안 선배가 후배를, 선생이 학생을 성추행, 성폭행을 일삼아왔던 것이다. 피해자는 처음에는 선생님에게 말을 했지만, ‘그럴 리가 없다’, ‘이게 소문나면 너 큰일 난다’식으로 무마한다. 베이베이는 "애들이 괴롭힐 때마다 소리를 쳤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어요. 아무리 그만하라고 애원했지만 걔들은 멈추지 않았어요."라고 말한다. 가해자는 피해자 동영상을 찍고 협박하고,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든다. 그게 오랫동안 선후배로 대물림되면서 끔찍한 ‘침묵의 숲’이 형성되고 만다. 장청은 베이베이를 위해 나선다. 선생님에게 말하고, 선생은 교장에게 항의한다. 오랜 침묵의 시간은 결국 끝장난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피해자가 고통을 받는다.
주인공을 연기한 류쯔취앤(류자전)과 천옌페이(진연비)의 연기는 그야말로 폭발적이다. 학생들의 지옥도를 접하고 분노하는 선생님을 연기한 배우는 류관팅(류관정)이다. 올초 개봉된 대만영화 [마이 미싱 발렌타인]과 넷플릭스를 통해 소개된 [아호, 나의 아들]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대만배우이다. 양귀매는 학교교장으로, 왕년의 스타 태보는 베이베이의 할아버지로 등장한다. 피해자이며,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온몸으로 보여준 샤오광을 연기한 배우는 한국배우 김현빈이다. tvN드라마 ’시그널‘에서 이제훈의 아역을 연기했던 배우이다. 정말 끔찍한 역할을 소름 돋게 연기한다.
커전니엔(柯貞年)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침묵의 숲>은 사회고발극이면서 다양한 장르의 색채를 선보인다. 보호받지 못하는 청소년의 심리 스릴러이자, 피해자와 가해자의 미묘한 관계설정이 가져오는 공포물이다.
영화에서는 대만 민간신앙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 잠깐 등장한다. 도교에서는 남녀노소 부귀영화를 관장하는 여덟 명의 신선(八仙)이 있다. 그중 여(女) 신선이 하선고(何仙姑)이다. 아마도 남자무리 속에 내던져진 ‘베이베이’의 상황을 빗대려는 감독의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
실제사건을 잠깐 소개하자면, 사건이 벌어진 학교는 타이난 계총학교(啟聰學校)이다. 아주 오래 전 1891년 영국 장로교 목사가 이곳에 장애인을 위한 교실을 열었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체계적인 교육시설로 자리를 잡았다. (영화에선 학교 100주년 표어를 볼 수 있다) 이 끔찍한 실상은 2011년 밝혀진 것이다. 조사결과 8년에 걸쳐 164건의 성적 범죄행위가 벌어졌단다. 피해자는 92명이었고, 발생한 장소는 교실, 기숙사, 도서관, 선생님 집, 통학버스 등 다양했다. 감찰원(우리나라 감사원에 해당)은 관련인사를 문책한다. 교장 등 많은 학교관계자가 행정조치를 받는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이 다시 학교에 복직, 근무를 하고 있단다. 대만 사법체제의 무능함, 교육계의 부패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셈이다. 그래서 ‘대만판 도가니’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 영화의 교훈이 있다면 피해자는 숨거나 굴복해서는 안 되고, 가해자는 끝까지 자신의 행동에 마땅한 처벌을 받아야한다는 것이다. 특수한, 특별한, 금단의 영역에서는 특히 책임자들이 주의를 기울여야할 것이다.
참, 이 학교는 사고가 터진 이듬 해 국립 타이난대학 부속학교(The Affiliated Hearing Impaired School of National University of Tainan)로 소속이 바뀌었단다.
▶침묵의 숲 감독:커첸넨 출연: 류자전, 진연비, 류관정, 양귀매, 태보, 김현빈 2021년 11월 4일 개봉/청소년관람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