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정적인 바이올린 연주의 비발디 ‘여름 3악장’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셀린 시아마 감독의 신작이 이달 개봉되었다. ‘워터 릴리스’, ‘톰보이’, ‘걸후드’ 등을 내놓으며 영화팬을 매료시킨 셀린 시아마 감독의 신작에서는 또 어떤 섬세한 영혼의 숨겨진 비밀을 전해줄지 기대된다. 신작 ‘쁘띠 마망’(Petite Maman)은 8살 여자아이의 이야기이다. 제목이 ‘작은(쪼그만) 엄마’라니. 무슨 이야기일까.
‘쁘띠 마망’은 축축한 느낌과 신록의 푸르름이 동시에 느껴지는 유럽 어느 전원도시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방금 양로원에서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린 넬리는 할머니에게 작별인사를 못한 게 아쉬운 듯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며 “잘 있어요”라고 인사한다. 그리고 할머니의 나무지팡이를 들고 엄마 마리옹이 운전하는 차에 오른다. 관객은 차안에서 어린 꼬마애가 가만히 앉아 과자를 오물오물 먹다가 운전석의 엄마에게 과자를 내미는 깜찍한 장면을 본다. 슬픔에 젖은 엄마를 뒤에서 가만히 껴안는 장면에서부터 셀린 시아마의 신비한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영화는 할머니를 떠나보낸 넬리가 숲속의 집에서 엄청난 성장통을 겪게 되는 이야기이다.
셀린 시아마 감독이 펼치는 동화 같은 이야기는 시간을 뒤흔드는 환상으로 가득하다. 어린 넬리는 엄마가 오래 전 숲에다 나무로 오두막을 지었다는 이야기를 믿는다. 그리고 그 숲속에서 정말 8살의 마리옹을 만난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여덟 살의 넬리와 마리옹을 구분하는 게 힘들었다. 알고 보니 조세핀 산스와 가브리엘 산스는 쌍둥이 자매란다. 이 영화의 매력은 ‘백투더퓨쳐’처럼 미래의 아들이 과거의 엄마를 만나면서 펼쳐지는 타임 패러독스 SF스토리가 아니다. 숲속 공터에 얼기설기 완성되어 가는 오두막 앞에서 마주친 넬리와 마리옹은 아이의 눈높이에서 일상적인 놀이를 이어간다. 관객들은 마치 대단한 비밀을 지켜보기라도 하듯이 이들의 대화를 엿듣는다. 8살 소녀는 너무나 야무지게 옷을 입고, 시리얼을 챙기고, 상대의 기분을 맞춘다. 둘은 결코 미래의 이야기를 앞서서 나누지 않는다.
넬리와 마리옹, 그리고 넬리와 가족들이 펼치는 잔잔하지만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무거움이 이 영화를 떠받치는 힘이다. 할머니와 엄마처럼, 엄마와 딸은 그렇게 교감하는 것이다. 딸과 엄마의 우정(!)을 이렇게 섬세하게 다룰 수가 있을까.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처럼 <쁘띠 마망>도 거듭 보게 되는 작품이다. 그때마다 넬리와 마리옹의 섬세한 대화,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한밤에 어른거리는 흑표범의 이야기는 단지 작은 이야기일 뿐이다.
▶쁘띠 마망 감독: 셀린 시아마 출연: 조세핀 산스(넬리), 가브리엘 산스(마리옹), 니나 모리스(엄마), 스테판 바뤼펜(아버지) 2021년 10월 7일 개봉/전체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