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막을 내린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모두 223편의 영화가 상영되었다. 그중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섹션에서 상영된 박송열 감독의 영화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가 KBS가 지원하는 KBS독립영화상을, 한국필립모리스가 후원하는 크리틱b상을 수상했다. 박송열 감독은 배우 원향라와 함께 가난한 연인의 이야기를 담은 [가끔 구름](2018)을 찍었고, 이번에는 가난한 부부로 고군분투하며 초긍정 삶을 살아가는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를 만들었다. 두 사람은 2018년 결혼했다! 박송열 감독을 상암동 KBS미디어센터에서 만나 영화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는 언제부터 만들었는가.
▶박송열 감독: “시나리오는 작년 봄 무렵에 구상했고 가을에 초안을 완성했다. 그리고 작년 11월과 12월에 몇 장면 찍었다. 그 장면들은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곤 다른 작품 ‘동시녹음’ 작업을 하면서 프로젝트를 잠시 중단했다. 올 4월부터 다시 시작하여 6월말 촬영을 끝냈다. 그리고 서둘러 편집하고 부산에서 공개된 것이다. 시나리오는 초안을 틈틈이 수정했다. 순서대로 촬영을 진행했다. 원향라와 공동작업이다.”
Q. ‘동시녹음’ 작업을 했다는 게 무슨 말인지?
▶박송열 감독: “학교(용인대 영화영상학과)에서 연출을 배웠지만 연출 하나에만 특화된 수업은 아니었다. 졸업할 때가 되면 길을 정하는데, 두루두루 할 수 있도록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나는 주로 동시녹음을 맡다보니, 영화판에서 동시녹음 작업을 많이 하게 되었다. 거의 독립영화이다. 장우진 감독의 <겨울밤에>와 지금 후반작업 중인 김정은 감독의 <경아의 딸>이 내가 한 동시녹음 작품이다. 독립영화하면서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 않는 이상 생계를 이어가기 어렵다. 자기 영화를 준비하면서 별도로 다른 일을 하나씩 한다.”
Q.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의 경우 제작비는 얼마나 들었는가.
▶박송열 감독: “제작비는 얼마 들지 않았다. 자체제작 수준이었다. 회계를 따로 할 정도도 안 된다. 천만원 정도 들었다. 물론 배우들에게는 소정의 출연료를 지급했다.”
Q. 전작 [가끔 구름]과 이번 작품의 연결점은?
▶박송열 감독: “‘가끔 구름’은 70분짜리 작품이다. 커플의 이야기인데 거기서도 가난한 연인의 이야기를 한다. 남자주인공은 영화감독 지망생이고 여자친구는 무명배우인데 오디션에서 번번이 떨어지는 형편이다. 현실과 꿈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때 제작방식을 그대로 이번 작품에서 사용했다. 자체제작에 셀프카메라 방식으로 촬영했다. 카메라를 세워두고, 세팅하고 둘이서 연기를 하는 소규모 작업방식이다. 아마 두 영화를 다 보신 분이라면 느낌이 올 것이다. 그 영화 찍을 때는 연인이었고, 다 찍고 나서는 결혼했다.”
Q. [가끔 구름]은 어디서 상영되었나.
▶박송열 감독: “2018년 인디포럼 폐막작으로 상영되었다. 그리고 전북독립영화제에서 상영되었는데 그곳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상금이 100만원이었다. 이번에 부산에선 KBS독립영화상과 크리틱b(크리틱비)상을 받았다.” (상금은 각각 천만원 씩이었단다)
Q. 영화는 리얼 부부이야기인가? 다단계 이야기는 경험담인가.
▶박송열 감독: “부부가 일자리를 구하는 여정이 들어가면 재밌을 것 같았다. 실제와 얼마나 같으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실제 삶에서 영감을 받고, 주변을 맴도는 영감을 극화한 것이라서 비슷하다면 비슷할 수 있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남자주인공의 소심함은 비슷할 것이다. 가난한 젊은 부부의 이야기는 많다. 하지만 제가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가난은 계속되는 삶의 가난이 아니다. 경제적으로 잠시, 일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전엔 형편이 괜찮았을 수도 있지만, 당장은 어렵지만, 곧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나서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기본적으로 난 일시적인 어려움을 겪는 부부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다단계 사기는 예전에 20대 초반에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어서 영화에 녹여보았다.”
Q. 부산영화제에서 GV때 관객들은 어떤 질문을 하던가.
▶박송열 감독: “GV때 감독에게 질문을 할 정도면 작품에 호의적일 것이다. 많이 받은 질문은 극중 부부가 왜 적극적으로 일을 구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너무 태평스럽다는 지적이었다. 저는 이 부부는 일시적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부부라서 당장, 아등바등 급하게 일을 구하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씀 드린다. 나의 영화는 삶의 여유를 찾으려는 부부에게 포커스를 맞췄다. 어려운 시기를 벗어나는 게 처음이 어려운 법이다. 재기의 발판이 필요한 부부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Q.유머코드에 대해.
▶박송열 감독: “영화 속 부부의 이야기는 슬플 수밖에 없는 소재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다이렉트로 표현하면 영화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소재를 다룬 영화는 많다. 다른 시각이나 관점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에는 고유의 리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위트와 유머! 시나리오에서는 담을 수 없었지만 촬영하면서, 세팅하면서 편집을 어떤 식으로 할지 생각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는 대화를 끊고, 한 사람을 보여주고, 또 듣고 있는 모습 등을 리듬감 있게 보여주려고 했다. 대사도 그렇다. 시나리오 쓸 때는 대강 이런 내용의 대사일 것이라고만 써두고, 세부적인 장면을 묘사할 때 아내와 함께 고민했다. 이 인물이, 이런 상황에서 했을 법한 대사를 떠올렸다. 실생활에서는 쓰기 어려운 대사이다. ‘삶의 질이 중요해. 사채를 쓰면 구원받을 수 없어’ 같은 대사를 실생활에서 쓴다면 어색할 것이다. 하지만 그 대사는 영화의 방향을 말해준다. 그 대사 칠 때 NG 많이 났었다. 실생활 대사가 아니어서.”
Q. 그런데 극중에 등장하는 사채업자 말이다. 세상에 그렇게 착한 사채업자가 있는가.
▶박송열 감독: “그렇다. 사채업자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살벌하고, 삭막하고, 험악하다. 이 영화에서만큼은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정희(아내)는 사채 쓰는 것을 무서워한다. 정희가 돈을 빌리려면 험악한 사채업자 보다는 선한 사람이 필요했다. 이 세상에는 없는 사람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정희도 (돈 빌리려) 갈 수 있을 테니.”
Q. 극중 부부 사이가 행복한 것 같으면서도, 어찌 보면 무미건조해 보이기도 하다.
▶박송열 감독: “전작에서는 키스신이 있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그것조차 없는, 자극적이지 않은 영화를 찍고 싶었다. 일상적인 소재와 톤을 그리는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Q. 다음 작품 준비하는 게 있는지.
▶박송열 감독: “차기작으로 준비하는 것은 없다. 우선 이 영화 배급문제가 해결되길 기다린다. 우선은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를 즐기고 싶다. 부산영화제 끝나고 든 생각이 있는데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가 어떨까? 막 떠오른 생각이다.”
Q. 부산영화제에서 참석한 소감은? 배급은 어떻게 진행되나.
▶박송열 감독: “부산영화제 ‘비전’과 ‘뉴커런츠’ 부문에서 상영된 독립영화감독들과 인사 나누고 그랬다. 단톡방도 생겼고. 서로 소식 전하고 정보 구할 생각이다. 작업하면서 모르는 것 도와가며 지내야지. 영화진흥위원회의 배급지원 프로그램이 있는데 독립영화하는 사람들의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경기영상위원회에서 하는 지역배급 지원제도도 있다. 저도 그런 지원프로그램에 많이 의존할 수밖에 없다.”
Q. 부산영화제에서 레드카펫도 하고, 웅장한 영화의전당에서 손을 흔들었다. 특별한 경험일 듯한데.
▶박송열 감독: “레드카펫을 어떻게 하는지 기사 찾아보고 그랬다. 레드카펫 한다고 해서 정장도 준비하고. 아내도 함께 입장했다. 영화제 숙소에서 차량으로 이동하여 대기실에서 기다리다가 입장순서에 따라 걸어 들어가면 된다. 독립영화 사람들 소감을 들었는데 비슷하더라. 웅장한 영화의 전당 건물에 들어설 때 관객들이 박수 쳐주고. 각자 짧게나마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는 것이 자극이 된다고. 다음 작품 동기부여도 되었다면, 잘 해서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부산에 열흘을 머문 박송열 감독은 정작 영화를 두 편밖에 못 봤단다. ”개막작(행복의 길로)과 카자흐스탄 영화 ‘붉은 석류’.”
“제 영화는 작은 영화이다. 일상적이고 미니멀하다. 작은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구가 있다. 미니어처 같은 느낌이 드는. 연필심을 그냥 보면 연필심인데 현미경으로 들여다볼 때 정밀한 조각이 새겨진 예술작품이 있다. 내 영화도 그랬으면 한다. 지나치면 그냥 영화인데, 관심 가지고 들여다보면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보이는, 그렇게 봐야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가끔 구름]이후 3년 만에 신작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를 내놓은 박송열 감독은 다음 작품은 그 텀이 좀 짧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는 11월에 열리는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