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벨리의 프로그래머 미래(최성은)에겐 꿈이 있다. ‘하바드 나온 저커버그’는 아니지만 자신의 꿈을 위해 게임 개발에 청춘을 쏟아 붓고 있다. 남친(서영주)은 요상한 모바일 액세서리(악어 클립)를 만지작거리면서 스마트업 대박을 꿈꾼다. 다들 대한민국의 젊은 청춘들이다. 그런데, 미래는 속이 메슥거려 간밤의 숙취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임신 10주차란다. 이젠 세상은 미래를 중심으로, 미래의 태아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구심력이 아니라, 원심력으로!
[십개월의 미래]는 남궁선 감독의 영상원 졸업작품이다. 박정민 배우의 데뷔작이기도 한 <세상의 끝>(2007)으로 화려하게 ‘단편’ 데뷔한 남궁선 감독은 김수현과 정소민이 출연한 단편 <최악의 친구들>(2009)로 제8회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비정성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었다. 2012년 단편 [남자들] 이후 소식이 뜸하더니 오랜만에 장편 ‘십개월의 미래’로 돌아온 것이다.
‘연애-결혼-가정’ 같은 우아한 정코스 보다는 오늘의 자기 일에 모든 것을 쏟아 붓던 미래(최성은)가 덜컥 임신을 하게 된다면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까. 준비(?)되지 않은 현실에 수많은 변수와 선택의 길이 놓인다. 믿었던 사람은 하나씩 본색을 드러낸다. 그리고 시간과의 싸움에서 자신도 조금씩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실제 미래는 10개월 동안 선택을 미루고, 끊임없이 고민한다.
모든 것이 흥미로운 이 영화는 사용된 음악조차 흥미롭다. 김치켓의 ‘아무도 없드라’(1963)와 김태희의 ‘사랑하다 헤어지면’(1971), ‘가을에 온 여인’(이용복, 1972) 등 옛 가요들과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재즈 샘플들까지 다양한 음악이 쓰인다. 영화 시작부터 궁상(?)맞은 옛날 노래가 흘러나오면서 ‘여자주인공의 임신이 몰고 온 한국사회의 현주소’라는 진부한 이야기일 것임을 예고한다. 얼마나 많이 보았고, 얼마나 많이들 공감하였고, 얼마나 짜증을 내었던 이야기인가. 남자란 놈은 도망가고, (예비)시댁은 벌써부터 상전이고, 엄마아빠는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리다니.
남궁선 감독은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임신부가 주인공이 영화를 만들기로 했단다. 남궁 감독이 보기엔 한국의 영화와 TV드라마에 등장하는 ‘임신한 여자’ 이야기는 ‘모성을 향한 고난의 여정’아니면 ‘중절을 향한 고난의 여정’이란다. (그게 아닌 경우도 있나?) 어쨌든 남궁 감독은 “미래에게 그 어떤 선택이나 결과도 너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영화 <시동>과 드라마 [괴물] 등에 출연하며 강렬한 존재감을 뽐낸 최성은은 시간과의 싸움(낙태)을 현실적으로 펼친다. 그 과정에서 산부인과 담당의사 ‘옹중’ 역을 맡은 백현진의 존재감이 빛난다.
미래는 처음 뱃속의 아이에게 카오스라는 태명을 지어준다. ‘카오스’에서 ‘코스모스’가 생성된다는 것이다. 임신한 사람, 임신시킨 사람(?)은 그 진정한 의미를 알 것이다. 미래의 갈등을 공감하고 선택을 응원하면서, 갈수록 ‘여성중심’의 모계사회(Matrilineality)가 되고 있는 한국사회의 모습을 보게 된다. 원하든 원치 않든, 미래의 결정권자는 여성이다.
▶[십개월의 미래] ▶감독: 남궁선 ▶출연: 최성은 백현진 서영주 유이든 권아름 ▶2021년 10월 14일 개봉 12세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