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데, 익숙하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에게 느껴지는 특이한 감정이다. 다들 평범과는 거리가 먼 사연을 지닌 인물들임에도 묘하게 우리의 군상과 닮아 있다.
지난 6일부터 오늘(15일)까지 열린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갈라 프레젠테이션 초청작으로 꼽힌 영화 '우연과 상상'(감독 하마구치 류스케)은 일적으로도, 사적으로도 가까워 보이는 두 여자가 택시 안에서 대화를 나누는 첫 에피소드부터 시작된다. 여자는 최근 썸을 타고 있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상대방은 이따금씩 맞장구를 친다. 썸남과 보낸 시간이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고 눈을 반짝이며 설명하던 여자는 먼저 내리고 택시에 남은 여자는 웃고 떠들 때와는 전혀 다른 공허한 눈빛과 함께 택시를 반대 방향으로 돌린다. 그렇게 밤의 택시는 또 다른 반전이 있는 그의 이야기를 태우고 떠난다.
이어 등장하는 두 번째, 세 번째 에피소드들 또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내연남의 부탁으로 저명한 교수의 약점을 잡으려 미인계를 이용하는 학생, 모든 전자 통신 기기가 마비된 가상의 미래에 어린 시절 사랑했던 고교 동창을 찾아 나선 한 IT업 종사자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연이어 그려진다.
모든 주인공들은 베베 꼬인 서사에 몸을 맡기지만 그 누구도 악의를 품고 있지 않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인물들부터 우리와 어딘가 닮은 익숙한 인간 군상으로 공감을 자아낸다. 연애를 하며 자신이 불량품 같이 느껴지는 감정,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상대를 갈망하는 감정, 상처 받은 사람을 연민하는 감정 등 누구나 사랑을 접하며 겪게 되는 일련의 감정들을 나열한다.
이는 전혀 악의가 없던 두 인물이 서로의 인생을 무너뜨리게 되는 이야기가 담긴 두 번째 에피소드도, 그리고 바이러스로 인해 악의 없던 사람이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세 번째 에피소드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는 이유는 악의가 아닌, 단지 유약한 인간의 특성이었을 뿐이다.
작품이 흘러가며 그들은 자신의 유약함으로 인해 분노하고 고뇌한다. 그리고 '만약'이라는 단어를 내뱉는다. "만약 2년 전 그 사람과 헤어지지 않았다면", "만약 아나운서가 됐다면", "만약 내가 교수의 책을 교열하고 네가 편집을 한다면", "만약 시부야에서 온 마지막 전화에 내가 진심으로 마주했다면".
이러한 주인공들의 말들은 얼핏 후회의 감정으로만 점철되어있는 대사처럼 보인다. 하지만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러한 부정적인 의미만이 아닐 것이다. 이는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만약 그 친구를 만난다면'이라는 가정 속에 만남의 재연을 함께 한 두 동창의 이야기에서도 드러난다.
서사의 끝에서 시간 속에 묻혀 잊었던 이름을 기억해내고 불행에서 나아갈 용기를 얻게 되는 두 주인공들의 결말처럼, '우연과 상상'에는 인간의 유약함에도 불구하고 '만약'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이는 어쩌면 '우연과 상상'이 과거를 돌아보는 것만이 아닌, 이전에 보지 못했던 풍경을 떠올리게 하고 우리의 상상력을 확장시킬 수 있는 '마법'의 단어로 자리매김하길 바라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소망일지도 모른다.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초청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