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초,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 개봉된 우민호 감독의 <남산의 부장들>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안기부장의 총에 맞아 죽기 전의 한국 상황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대통령 암살 열흘 쯤 전에 부산과 마산에 일어난 ‘시민 소요’이다. 안기부장은 직접 부산에 내려가서 현장을 둘러 보고 와서는 심각성을 이야기하는데 경호실장은 빨갱이들의 분탕질이라며 탱크로 밀어버리면 된다고 말한다. 광주에서 민주화 항쟁이 일어나기 반년 쯤 전에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난 일련의 ‘빨갱이들의 소요사태’를 지금은 ‘부마 민주화항쟁’이라고 말한다. 40년도 더 지난 이야기이다.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그때 일을 기록하는 사람이 있다. 이번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상영된 다큐멘터리 <10월의 이름들>이 그러하다.
<10월의 이름들>은 부산지역 언론사인 국제신문이 지난 2018년부터 3년간 연재한 기획물을 바탕으로 국제신문 기자가 다큐로 만든 작품이다. 지난 9일(토) 롯데시네마 센텀시티3관에서는 영화상영에 이어 이동윤 감독과의 GV(관객과의 대화)가 열렸다. 영화를 끝까지 관람한 관객들은 이동윤 기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동윤 감독은 국제신문 소속 기자이다.
“시간을 내주서 감사하다”고 인사한 이동윤 감독은 객석에 앉아있는 공동제작사(바림)의 스태프에게도 박수를 부탁했다.
이 감독은 “이 작품은 국제신문의 선배기자 여섯 분이 특별취재팀을 구성하여 2018년부터 3년 정도 취재, 작성한 부마항쟁 기획기사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분량도 꽤 되고, 취재기간도 오래 걸린 기획물이다. 부마항쟁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지만 항쟁 참여자에게 적절한 보상이 없는 게 현실이었다. 작년 연말 기획기사가 끝나면서 영상화 작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고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을 소개했다.
이 감독은 “다큐 제작 제안을 받고는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촬영하고 편집하는 과정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영화와는 달리 다큐멘터리는 디테일하게 시나리오를 짤 수가 없고, 변수가 많아서 부담이 되었다.”면서 “신문 기사가가 워낙 팩트 정리가 잘 되어 있어, 인물들의 감정 선에 초점을 맞춰 다큐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 작품에는 1979년 당시 대학생, 재봉사, 금형기술자, 전투경찰, 노동자, 버스기사, 광고기획자, 사진기자였던 인물이 자신이 겪은 부마항쟁을 증언한다. 이 감독은 오래된 세월로 인해 그들의 기억이 뚜렷할까 걱정했단다. “섭외를 하면서 이분들이 그날의 기억을 잘 못하면 어쩌나 불안했다. 그런데 그분들의 스토리텔링이 너무 명확하고 말이 선명했다. 그래서 그분들의 오래된 이야기부터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들의 어린 시절. 젊은 시절로 가보자면 과거의 흔적을 되짚어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을 택했다.”
이 감독은 영화를 찍기 전에 스태프와 몇 가지 약속을 했었다고 한다. “태도와 믿음의 문제이다. 절대로 인터뷰할 때 클로즈업하지 않는다고. 감정적으로 동요할 경우에 카메라를 끊고 가자고. 그 때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던 많은 일들을 어떻게 이어붙일지에 대해서는 한쪽에 치우치지 않게, 밸런스를 맞춰, 이야기가 지루하게 흐르지 않도록 리듬을 갖자고 그랬다.”
영화의 마지막은 항쟁 당시 사진기자였던 김탁돈씨가 출연자들의 인물사진을 하나씩 찍어주는 장면이다. “김탁돈 기자님이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항쟁 당시 찍어둔 사진이 40여장 밖에 없어 아쉽다는 것이다. 더 많은 사진을 찍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며 한탄하셨다. 그 이야기 듣고 항쟁 참여자의 사진을 찍어주실 수 있겠느냐고 부탁드린 것이다.”
‘10월의 이름들’은 부마민주화항쟁을 다루면서도 전체적인 톤은 담담하고 조용하다. 마지막엔 출연자들이 밝은 웃음을 짓는다. 이에 대해 이 감독은 “이 작품에는 대통령 얼굴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거창한 의도가 있다기보다는 다큐에서 그런 장면이 나올 경우 그 이미지만 남고 나머지 이야기가 기억에 안 남더다. 정치적 판단을 내린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톤다운한 셈이다. 그 점을 어떻게 평가받지 모르겠지만 저는 선생님들의 목소리, 얼굴에 집중하고 싶었다.”며 “이 영화가 개인적으로 부마항쟁을 사적으로 바라보는 영화로 기억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번 작품이 너무나 거시적인 이야기를 다뤄 힘들었다는 이동윤 감독은 “개인적으로 강아지 덕후이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보이후드’ 만들었던 방식으로 주인공을 강아지로 바꿔 ‘퍼피후드’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마지막으로 이번 영화를 만들면서 힘들었던 것에 대해 “아무래도 부마항쟁 당시의 사료, 사진, 자료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당시 시위가 게릴라성으로 이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제작기간이 길지 않아 담을 수 있는 현장이 많지 않아 아쉬웠다”고 말한다.
부산국제영화제 자료에 따르면 이동윤 감독은 현재 국제신문 기자이며, 2019년 부산영화평론가협회의 영화비평공모에서 우수상을 수상하며 영화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단다. 그때 쓴 글은 ‘정지우 감독론’이었다단다. 단편 다큐멘터리 <평화의 소녀>(2017)와 <반여동 우리집>(2019)으로 부산국제단편영화제에 초청되었고, 단편 극영화 <콜링>(2018)으로 근로자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10월의 이름들>은 감독의 첫 장편 다큐멘터리이다. 영화매니아답게 이번 BIFF기간에는 휴가 내서는 영화의전당을 맴돌며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있단다. 무슨 영화 봤는지 물어보니 ‘홍상수감독 신작’과 ‘황금종려상 수상작 티탄’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