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태 배우는 독특한 전력을 가졌다. 부산대학교 노어노문학과(러시아어)를 나와 LG전자에서 러시아시장 TV영업을 담당했단다. 2011년, 35살의 나이에 SBS <기적의 오디션>에 참가하며 연기자의 길로 나섰다. 그동안 60여 편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경력을 쌓아왔다. 올해 들어 JTBC드라마 <괴물>에서의 이창진 역과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장덕수 역으로 얼굴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를 만나 <오징어 게임>과 ‘달고나’의 러시아 시장 진출 가능성에 대해 물어보았다.
Q. <오징어게임>을 몇 번 보았는지, 자기 연기에 대해 평가를 해본다면.
▶허성태: “혼자서는 8번 정도. 가족 지인과 함께 20번 정도 본 것 같다. 글로 본 작품을 연기하면서 궁금했었다. 몇몇 장면에서 감독님이 어떻게 표현해줄까 궁금했는데 눈에 펼쳐지는 게 정말 대단했다. 황 감독님 대단하시다. ‘오징어 게임’ 스태프들이 고생을 많이 한 게 대견스럽고 고마웠다. 제 연기에 대해서 말하자면 77점 정도 주고 싶다.”
Q. ‘오징어 게임’이 거의 신드롬 수준이다.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허성태: “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집과 촬영 현장만 오간다. 달라진 게 없다. 키우는 고양이 똥오줌 치우고, 다음 작품 준비 중이다. 쌍문동 성기훈(이정재)씨랑 <헌트> 즐겁게 찍고 있다.”
Q. 이 작품이 이렇게 세계적인 인기를 끌 것이라 예상했는지. 어떤 이야기 나눴는지.
▶허성태: “저는 ‘오징어게임’이 넘버원은 모르겠지만 해외반응이 뜨거울 것이라고는 예상했다. 찍으면서 ‘달고나 키트’를 상상했었다. 외국인이 보기엔 우리 고유의 전통이 있고, 아기자기한 놀이의 특색도 있어 그들이 따라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작품을 함께 했다는 것이 뿌듯하다. 할리우드에서 연락 없냐는 사람도 있고, 갑자기 내게 사과하는 친구도 있다. 내가 이렇게 될 줄 몰랐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 생활에서 달라진 것은 없다. 약간 두렵기도 하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Q. 이정재 배우가 감독으로 데뷔하는 <헌트> 촬영장 분위기는 어떤지.
▶허성태: “<오징어게임>이 공개되고 나서 <헌트> 촬영장에 가면 쌍문동감독님께 인사드리면 ‘글로벌 배우님 오셨네’ 그런다. 이정재 선배님 인스타에 정우성 배우와 ‘함께 딱지치기 할까요’ 사진 찍어 올릴 때 바로 왼쪽에 제가 앉아있었다. 분위기 좋았다.”
Q. 한미녀 역을 맡은 김주령 배우와의 연기 호흡은 어땠는지.
▶허성태: “서로 부딪히는 부분이 많아 걱정이 많았는데 촬영 들어가기 전에 이야기 많이 나눴었다. 제작사 대표님, 감독님, 배우와 함께 우려되는 것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큰 문제없도록 스무스하게 진행했다. 김주령 배우와는 촬영 때마다 서로 ‘당신 마음대로 해라’며 마음 놓고 연기하자고 그랬다. 남편분이랑 영상통화도 하고 그랬다.”
Q. 김주령 배우와의 격정신은 어떻게 준비했나.
▶허성태: “걱정을 많이 했다. 처음 해보는 것이라. 감독님이 마음 편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대화도 많이 나눴고. 제가 특별히 더 할 것은 없었다. 감독님이 제 몸매가 ‘어좁’이라며 체중을 좀 늘리라고 주문했다. 원래 73킬로 정도였는데 한 달 만에 92킬로까지 찌웠다. 단기간에 체중 늘리는 게 더 어렵더라.”
Q. 해외반응은 어땠나. 러시아 쪽 반응이 있는지.
▶허성태: “정말 많은 나라에서 반응을 보여주셨다. 제가 한국어, 영어, 러시아를 볼 줄 안다. 디엠으로 ‘당신 러시아말 할 줄 아냐’는 사람도 있다. ‘대디’, ‘아이 러브 유’, ‘큐트’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남미 쪽에서는 자꾸 빨간 하트를 보내주시는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Q. <오징어 게임>에서 가장 즐겁게 촬영한 장면과 가장 고생하며 촬영한 장면은?
▶허성태: “덕수 패거리가 나오는 장면 찍을 때가 재밌었다. 성격이 소심한데 게임에서 승리해서 포효하는 장면이 있다. 어지러워 쓰러질 정도였다. 3번 정도 쉬고 촬영했다. 그리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게임할 때는 정말 무서웠다. 미동이라도 하면 총을 쏘아대니.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안 되는 장면이었다. 실제 연기할 때 체력적으로 좀 힘들었다.”
● “그 동안 즐거웠다”
Q. 드라마 <괴물>에서 이창진이 ‘엉망진창이네~’하는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이번 작품에서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는지.
▶허성태: “덕수 패거리 가운데 곽자형 선배에게 ‘그동안 즐거웠다’라고 말하는 장면. 그것은 애드리브였다. 초반에 그 선배가 유리할 때 나한테 한 말인데, 그것을 고스란히 라임처럼 받아치는 대사였다. 그렇게 하면 재밌을 것 같아서 배우와 감독님에게 말씀드리고 그렇게 찍은 것이다. 곽자형 선배는 <남한산성>에 용골대로 같이 나왔었다.”
Q. 실제로 오징어게임에 참여하시게 된다면 어느 단계까지 갈 자신이 있는지.
▶허성태: “난 그런 게임 싫어한다. 목숨을 담보로 게임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Q. 촬영현장이 즐거웠던 것 같다.
▶허성태: “박해수 배우는 너무 웃긴 친구이다. 나는 유머러스한 사람을 좋아한다. 알리는 엊그제도 만나 집에서 같이 밥을 먹었다. 덕수 패거리로 나온 배우들은 신인, 무명배우들이다. 그래서 내 인스타에 태그 달고 소개해 준다.”
Q. 허성태 배우는 최근 드라마 <괴물>의 이창진과 이번 장덕수 캐릭터로 악역 이미지가 강하게 남았다. 혹시 그동안 한 역할 중 인간적으로 착한 연기는 없었는지.
▶허성태: “하하. 있다. <싸이코패스 다이어리>의 장칠성과 <빅 포레스트>의 장길남이 아주 착했다. 다 장씨였네.”
Q. 가족들 반응은 어땠나.
▶허성태: “난리가 났다. 조카들은 싫다고 그런다. 많이 무서웠나보다. 어머니는 시장에서 이불 장사하는데 난리가 났단다.” (허성태 배우의 어머니는 부산진시장에서 장사를 하신단다)
Q. 필모그래피를 보니 2012년 <광해, 왕이 된 남자>의 단역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얼굴 알아보게 비친 첫 작품은?
▶허성태: “영화 <밀정>과 드라마 <터널>이 저를 알아보기 시작한 작품인 것 같다.”
Q. 직장생활을 하다가 배우가 되려고 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는지, 마음을 움직인 작품이 있다면,
▶허성태: “사실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장난 삼아나갔었는데 곽경택 감독님과 심사위원분들이 좋게 봐주셔서 내심 충격을 받았었다. 이걸(연기) 내가 해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다섯 심사위원분들이 통과시켜준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 같다. <해바라기>의 김래원과 <아저씨>의 원빈 연기를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배우가 된 계기를 준 게 아니고, 평소 그런 류의 영화를 좋아한다.”
Q. “<오징어게임>을 러시아 버전으로 만든다면 어떤 게임이 포함될까. 특별출연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허성태: “러시아에서는 어떤 게임을 하는지 잘 모른다. ‘마뜨료쉬까’ 인형이 유명하니. 몇 십 개에서 몇 백 개까지 있다. 백 개짜리를 갖다놓고 누가 빨리 조립하는가로 게임해도 될 것 같다. 특별출연 시켜주신다면 열심히 할 것이다.”
Q. 게임에서 우승해 상금 456억을 탄다면 어떻게 쓸 것인가.
▶허성태: “어릴 때 친구끼리 그러잖은가. 큰 빌딩 사서 1층에 오락실, 2층에 당구장. 전원주택 크게 지어서 수영장과 농구장도 마련해서 친구들과 즐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다 못 쓸 것 같다. 나머지는 어머니 드릴 것 같다.“
Q.데뷔 10년차 배우이다. 연기를 대하는 자세는.
▶허성태: “<오징어 게임>이 전환점인 것 같다. 조/단역에서 주/조연으로 가는 것 같다. 부담 없이 제 연기를 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다른 어떤 색깔을 보여드릴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Q. 곧 공개되는 <고요의 바다>도 넷플릭스 작품이다. 연기자로서 넷플릭스 작품 촬영장이 특별했는지. 전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는데 혹시 인센티브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허성태: “인센티브는 전혀 없다. 촬영할 때 작업방식의 차이는 전혀 없다. 실제 작업하는 것은 모두 한국의 연출팀과 호흡을 하는 것이니. 그런데 연출자에게는 메리트가 있는 것 같다. 표현할 깊이와 폭이 조금 더 허락된 부분이 있다. 참, 작업환경을 말하자면 티 테이블에 먹을 것이 조금 더 많다는 것? 떠먹는 요구르트도 있었다.”
Q. 기념품으로 받았다는 굿즈는 어땠나.
▶허성태: “굿즈는 정성이 많이 느껴졌다. 술잔 세트도 있다. 쿠션, 슬리퍼도 있다. 그런 굿즈는 처음 받아본 것 같다.”
Q. 작품이 그렇게 흥행해도 인센티브가 없다니 뜻밖이다. 국내 공중파TV나 다른 OTT에 비해 넷플릭스에 대한 소감은?
▶허성태: “그런 것은 제작사가 처음 계약할 때 넷플릭스랑 잘 이야기 해야 할 내용인 것 같다. 넷플릭스는 한국의 크리에이터와 제작자들이 자존심과 프라이드를 가지고 새롭게 접근할 수 있는 매체임에는 분명하다. 촬영현장에 넷플릭스 관계자가 왔었다면 우리 <오징어게임>의 제작부, 연출부, 촬영부, 조명부 등 모든 스태프들의 능력을 다시 봤을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훌륭한지, 이런 환경에서 이런 아웃풋을 냈다는 것이 놀라울 것이다. 나는 스태프들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정말 월드클래스였다. 넷플릭스 관계자들이 정확하게 인지하셨으면 한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Q.'오징어 게임' 이후 작품이나 광고계의 러브콜은 있는지.
▶허성태: “작품은 있는데, 광고는 없다.” (찍고 싶은 광고가 있다면?) “‘오징어땅콩’이 딱일 듯하다. 자동차 광고도 좋다. 운전하는 것 좋아해서. 국민차 광고 이런 것도.”
Q. 차기작 소개.
▶허성태: “다음 작품은 정의로운 작품이다. 제목은 아직 밝힐 수 없다. 그리고 ‘쌍문동’ 이정재 배우의 감독데뷔작 <헌트>에서는 전사로 나온다. 또 다른 차기작 <소년들>은 이미 찍었다. 설경구 배우가 출연하는데 찌질하고 웃긴다. 재밌게 나올 것이다.”
Q. 허성태 배우 앞에 붙이고 싶은 수식어가 있다면. 배우로서의 목표는.
▶허성태: “‘사람냄새 나는 배우’이고 싶다. 그리고 길게 연기 잘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오일남’ 같은 역할 할 수 있을 때까지 연기하고 싶다.”
Q.인스타그램 한다. 팔로워가 얼마나 늘 것 같은가?
▶허성태: “멤버 중에 꼴지이다.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목표는 200만? 하하. 누가 이 아제를 팔로워 하겠는가. 이건 스치는 바람일 뿐이다. 그리고 나한테 큐트하다는 반응을 보인 것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진심으로 ‘오징어게임’, 한국 전통놀이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그 게임에 참여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고 마무리 인사를 했다.
배우 허성태와의 인터뷰 기사를 마감하고, 인스타그램을 찾아가보니 현재 팔로워 수가 141만 명이다. 키우는 고양이 두 마리 사진도 올라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