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가 6일(수) 개막식과 함께 열흘간의 영화축제를 시작한다. KBS 독립영화관에서는 이에 맞춰 오늘 밤 ‘부산국제영화제 특별단편선’을 내보낸다. ‘조지아’(감독: 제이 박), ‘바람 어디서 부는지’(김지혜 감독), ‘파출부’(이하은 감독) 등 작년과 재작년 부산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던 세 편의 독립영화가 시청자를 찾을 예정이다. 이중 ‘파출부’는 [시동]에서의 노랑머리로 유명한 최성은 출연한 작품이다.
무더운 여름날, 복날이란다. 재하(최성은)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엄마가 일하던 삼계탕집에 하루 일하러 나간다. 복날 일손이 딸려서 재하에게 부탁이 온 것이다. 재하는 엄마가 어떤 곳에서 어떤 일을 하였는지 궁금해서 그 삼계탕집을 찾아온 것이다. 복날이라서 손님도 많고, 정신없다. 재하는 이곳에서 홀에서 일하는 아주머니, 주방에서 일하는 아주머니, 설거지 하는 아주머니와 하루를 부대끼면서 엄마의 숨결을 느껴 보고, 일의 고단함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벌어지느 작은 일들도 삶의 한 소중한 부분임을 알게 된다.
영화 [파출부]는 누군가를 떠나보낸 뒤, 슬픔과 비극으로 몸부림치는 남은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살았을 때 잘 몰랐던 그 빈 자리를 뒤늦게 채워주는, 그래서 그 사람을 더 훌륭하게, 아름답게, 오랫동안 기억하게 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유별나지 않은 모녀관계를 떠올리게 하면, 특별하지 않은 삶의 공간에서 작은 위안을 얻게 하는 작품이다. 재하를 연기한 최성은 비롯하여 삼계탕집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박희은, 김선경, 김자영)의 연기가 하나하나 그런 보통의 삶, 평범한 가족관계를 일깨워준다.
■■ 인터뷰 ■■ 이하은 감독 - 영화 ‘파출부’에 관해 궁금한 것들
Q. <파출부>를 연출한 계기는?
▶이하은 감독: “실제로 복날 시즌에 삼계탕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 대부분이 실제 함께 일했던 아주머니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캐릭터들이다. 무더운 여름에 불이 팔팔 끓는 주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일하는 모습들이 무척이나 생생한 경험이었고 영화에 제가 느낀 것들을 그대로 담고 싶었다.”
Q. 영화의 제목이 ‘파출부’인 이유는? 영어제목은 ‘a dog days’이다.
▶이하은 감독: “식당에서 서빙으로 분들은 파출부 직업소개소 업체를 통해 일일 근로를 하는 경우가 많다. ‘파출이모’, ‘식당 파출부’ 등으로 부른다고 해서 제목을 [파출부]로 지었다. 영문제목의 사전적 의미는 ‘한 여름, 삼복.’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아주 더운 여름의 분위기를 담고 싶었는데 그걸 직역해서 ‘개의 날’ 보신탕 먹는 날로 해석하시더라. 지어놓고 좀 후회했다.”
Q. 재하가 엄마가 일했던 곳으로 다시 일을 하러간 이유는?
▶이하은 감독: “누군가를 잃은 슬픔, 특히나 가족이 세상을 떠났을 때의 슬픔은 연인과의 이별이나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을 때의 상실감보다 훨씬 큰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슬픔을 마냥 슬픈 신파로 풀고 싶진 않았다. 영화 ‘데몰리션’에서 아내를 차 사고로 잃은 주인공이 보여준 방식을 택했다. 극중 ‘재하’도 갑자기 겪게 된 엄마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기 보다는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일하는 삼계탕집을 찾아가서 일을 해보는 것이 재하가 엄마의 죽음에 대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Q. 영화에서 덧신의 의미는?
▶이하은 감독: “엄마의 흔적이라고 생각한다. 아주머니들의 이야기를 통해, 경험을 통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엄마의 모습들을 발견하게 된다. ‘아, 우리 엄마가 이런 걸 신고 일을 했었구나.’, ‘엄마의 발은 어떻게 생겼었지.’, ‘일 할 때 발이 많이 아팠겠다.’ 등의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마지막 장면에서 덧신을 보는 것은 재하가 엄마가 살아온 삶을 조금은 이해했다는 의미로 담은 장면이다.”
Q. 주인공 재하는 최성은 배우가 연기했다.
▶이하은 감독: “최성은 배우는 같은 학교의 연극원 출신 배우여서 알게 되었다. 재하 역할로 잘 어울리는 이미지라고 생각했다. 실제 성격도 말수가 적고 조곤조곤하게 말을 하는 편이라 만나서 대화를 할수록 재하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성은 배우가 최근 매체에 자주 나와서 반갑고 기분이 좋다.”
Q. 재하와 재하 엄마인 미진과의 사이는 어땠나요.
▶이하은 감독: “친구 같고 자매 같은 사이의 모녀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물론 미진과 재하도 가족이니까 함께하는 시간은 있었겠지만 대다수 현대인들이 그렇듯 사는 게 바빠서 한 집에 살면서도 얼굴보고 밥 한 끼 먹을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속으로는 서로를 항상 생각하면서도 표현에 서투른 엄마와 딸을 생각하며 이야기를 썼다. 나도 삼계탕집에서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기 전까진 엄마가 평소에 일을 할 땐 어떤 모습일지 몰랐었다. 엄마를 엄마가 아닌 이름으로 부르는 모습에서 특히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재하가 마지막에 보라 아줌마에게 ‘없이 살아도 떳떳하게 살아. 너희 엄마가 자주 하던 말이야.’ 라는 말을 들었을 때 엄마 살아온 삶에 대해 떠올렸을 것이다. 비록 바빠서 잘 챙겨주지 못한 엄마였어도 사회에선 멋진 여자였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엄마가 꼭 가정에 충실해야만 좋은 엄마가 아니라는 걸 알리고 싶었던 것 같다. 여담으로 저희 엄마가 [파출부]를 보고 엉엉 우셨다. 재하가 하는 말들이 모두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리셨다고. 제가 그래서 한마디 해 드렸죠. ‘응~ 아니야~’. 저는 저희 어머니가 정말 멋진 여자라고 생각한다.”
Q. 가장 신경을 써서 연출한 장면이 있다면?
▶이하은 감독: “삼계탕집에서 일하면서 느꼈던 것 중 가장 놀라웠던 것이 위계질서였다. 주방과 서빙 포지션의 분업화도 그렇고 주방 내에서도 칼질하는 이모, 불을 다루는 이모, 설거지 이모의 업무가 확실히 분리되어 있고 서로의 영역에 민감하게 반응하시더라. 삼계탕집은 그분들에게 있어서 직장이고 맡은 업무를 하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 같다. 인간미 폴폴나는 삼계탕집 같아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하나의 조직과 체계가 있는 나름 살벌한 곳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각자 일을 하는 모습들도 인서트컷으로 많이 담았다.”
Q. 이 영화가 첫 영화 연출작이다.
▶이하은 감독: “어려운 점은 배우들에게 연기 디렉팅을 하는 것이었다. 처음이라 각 배우마다 스타일이나 연기방식을 캐치하는데 미숙했다. 출연하는 배우가 많기도 했고. 어떤 배우는 감정에 대한 설명을 1단계부터 10단계라고 했을 때 몇 단계인지 라고 아예 수식적으로 디렉션을 원하는 분도 있었다. 반면에 어떤 배우는 제가 감정만 설명해도 탁 알아들으시고 제가 원하는 연기를 하는 분도 있었다. 배우에 맞는 디렉션이 있다는 걸 배운 계기가 되었다. 아쉬운 게 있다면 사운드적인 측면이다. 중간 중간 잡음과 도로 소음이 크게 들리는 장면이 많다. 촬영을 추석 연휴 기간 3일내내 찍었는데, 촬영 장소를 대여해준 가족이 실제로 촬영장 2층에서 머무르셨다. 재하와 보라가 골목에서 대화하는 씬은 자세히 들어보면 그 가족들이 하하호호 대화하는 소리들이 들어가 있다.”
Q. 이 영화를 연출하는 동안 참고한 자료가 있다면?
▶이하은 감독: “근현대 한국소설, 가족드라마 이런 것들을 많이 보았다. 최명희 작가의 ‘혼불’이나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들을 보면 옛날 단어나 생소한 표현이 자주 나온다. 저에겐 그런 것들이 재밌게 느껴졌거든요. 촬영감독과 촬영에 대한 고민을 할 땐 다르덴 형제 작품을 놓고 이야기했다. 이 영화는 카메라가 인물들을 따라가야 할 것 같았다.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세일즈맨’이란 작품들도 보면서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일상에서 흔히 보이는 사소한 행동이 큰 사건이 되는 이야기들이 제겐 흥미로웠던 것 같다. 파출부도 별 거 아닌 취객 아저씨의 진상이 보라의 해고로 이어지고, 보라를 따라간 재하가 엄마가 자주 했던 말을 들으면서 한방 얻어맞게(?)된 것처럼.”
Q. <파출부> 이후로 <제씨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사람과의 관계, 인권을 존중하는 감독의 마음이 느껴지는데, 차기작은?
▶이하은 감독: “의도적으로 인권이나 여성권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 건 아닌데 제 영화들의 주제들이 이렇게 엮이게 된다. 사람을 관찰하고 사람 사는 세상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건 사실이다. <제씨 이야기>도 할머니와 방앗간이라는 소재는 인간극장이나 극한직업 같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영감을 얻었다. 차기작에서도 따뜻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고 이전까지와는 다르게 좀 더 young한 영화를 구상중이다. 귀여운 로맨틱 코미디 이야기다. 어떤 이야기든 사람냄새 나는 영화를 만드는 게 저의 목표이고 지향하고 있는 색이다.”
Q. 마지막으로 <파출부>를 보는 시청자분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이하은 감독: “마스크를 벗은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이 어색한 시대가 되었다. 사람의 눈, 코, 입을 보면서 소통할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되새기며 지내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관객 여러분도 다시 마스크 없는 일상을 되찾게 될 날을 꿈꾸시길 바랍니다.”
* 이하은 감독과의 인터뷰는 KBS 독립영화관 송치화 작가와의 서면인터뷰로 진행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