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가 6일(수) 개막식과 함께 열흘간의 영화축제를 시작한다. KBS 독립영화관에서는 이에 맞춰 오늘 밤 ‘부산국제영화제 특별단편선’을 내보낸다. 작년 선재상을 수상한 ‘조지아’(감독: 제이 박)를 비롯하여 ‘바람 어디서 부는지’(김지혜 감독), ‘‘파출부’(이하은 감독)가 시청자를 찾을 예정이다.
뉴욕 광고회사에서 CF감독,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경력은 쌓은 제이팍 감독의 <조지아>는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와 이수진 감독의 <한공주>를 합친 놀라운 작품이다. 영화를 보면서 결코 화면을 떠날 수 없는 안타까움과 슬픔을 느끼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가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최고상인 ‘선재상’을 수상한 이유가 있다. ‘조지아’는 디자인 폰트에서 말하는 ‘George体’를 말한다. 물론, 미국 조지아 주를 염두에 둬도 된다. 그게 이 영화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단서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이양희, 이채경 부부가 컴퓨터 앞에서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내 이채경의 말투나 행동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린다. 컴맹인 두 사람은 지금 뭔가 글자를 입력해야하는데 어떤 모양이어야 하는지로 싸운다. 아내는 반드시 ‘노니아’체라고 주장한다. (‘조지아’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찾아보니 ‘조지아’ 폰트는 상업적 사용에서는 유료이다. 무엇보다 영어폰트라서 한글을 입력하면 깨진다. 입력하면 □□□□□□ 식으로 나온다!) 두 사람이 무슨 문제로 이렇게 말다툼을 하는지, 문서입력에 공을 들이는지 점차 드러난다. 아버지가 문구인쇄업체에서 종업원과 나누는 대사에서 드러난다. “아니, 아버님, 무슨 내용 넣으려고요? 스물 자로 넣으세요.” 아버지가 말한다. “이진아집단성폭행후자살 18학생조사없이사건종결” 그때서야 무슨 내용이인지 모르고 영화를 보던 사람들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이 불쌍한 아버지, 어머니의 행보를 따라가게 된다. 재조사를 거부당한 뒤 경찰서에 마주앉은 ‘가해자 학부모’들의 뻣뻣한 태도, 피해자는 이미 이 세상에 없고, 컴퓨터에만 무지한 것이 아니라 법률에도 무지한 딸의 부모는 아무런 도움을 받지도 못하고 분통만 터뜨린다. 게다가, 교실 사물함의 딸의 물건을 가져가란다. 이 장면에서 엄마 이채경의 분노의 걸음걸이, 외침에 관객들은 같이 주저앉고 만다. 가난하고, 불쌍하고, 도움도 받지 못하는 부부. 밤이면 구천을 떠도는 딸이 나타나 우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서 어떻게 되냐고? 두 사람은 플래카드를 걸 수 있을까. “소리 없는 아우성!!!”
이 영화는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선재상(최우수작품상)을 비롯하여 부산국제단편영화제 최우수작품상, 샌디에이고국제단편영화제 국제경쟁부문 최우수작품상, 일본 쇼트쇼츠국제단편영화제 아시아경쟁부문 최우수연기상 등을 수상했다. 오늘 밤 이 영화를 꼭 보시라. 그리고 어머니가 왜 그렇게 ‘조지아’폰트에 집착하는지 제이 박 감독의 인터뷰를 한번 읽어보시길. (by 박재환 KBS미디어)
■■인터뷰■■ 제이 박 감독 ‘영화에 관해 궁금한 것들’
*** 이 인터뷰는 영화를 본 뒤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
Q. <조지아>의 시나리오를 직접 쓰시고 연출을 했다.
▶제이 박 감독: “같이 일하는 피디와 즐겨 하는 술자리 게임이 있다. 세 가지 소재를 제시하면 2분 안에 재밌는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게임이다. 한 번은 3가지 소재가 현수막, 돈까스, 자전거 헬멧이었다. 그걸 토대로 스토리를 만들었는데 너무 좋아서 다들 술은 그만 마시고 바로 영화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Q. 제목이 ‘조지아’인 이유는?
▶제이 박 감독: “영화의 첫 장면을 보시면 디자인 대회 공모전 포스터가 보이는데, 미국 조지아 주(州)에 있는 디자인 학교가 주최를 한다는 정보가 있다. 그래서 딸 진아는 심사위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조지아 서체를 한글로 만드는 도전을 했을 거란 걸 저는 관중들이 간접적으로 추리를 하기를 바랐다. 대회를 이겨 조지아 디자인 학교로 유학을 갈 수 있는 기회를 얻으려고 진아는 많은 노력을 했지만 결국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다.”
Q. 이채경 배우가 올해 일본 쇼트쇼츠국제단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울산단편영화제 최우수여자연기상을 수상했다.
▶제이 박 감독: “영화제 출품을 시작한지가 1년도 안 됐는데 배우상 수상을 4번이나 했다. 단편영화로 연기상을 여러 번 수상하는 경우는 드문 일인데 얼마나 주인공들의 연기가 영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는 것 같다. ‘캐스팅은 영화의 90%다’라는 밀로스 포만 감독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전 작품부터 친분이 있었다. 이 소재에 대한 영감을 받았을 때 저는 바로 이채경 배우를 떠올렸다. 초안 단계부터 완성본까지 대화를 나누며 영화를 만들어 나갔다.”
Q. 이채경 배우 연기 중 가장 애정이 가는 장면은?
▶제이 박 감독: “한 장면을 고르기가 힘들다. 딸의 물건을 챙기러 가는 학교 복도 장면. 흔히 작가는 대본을 쓰며 모든 캐릭터를 사랑하게 되는데 시끌벅적하게 움직이는 학생들 사이로 목적 있게 열심히 걸어가는 어머니 캐릭터의 모습이 멋있으면서도 너무 안쓰러워 보였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다른 장면들에 비해 복도 장면에서 마음이 많이 뭉클해지더라.”
Q. 아버지 역은 이양희 배우가 연기했다.
▶제이 박 감독: “몇 년 전부터 이양희 배우의 팬이라서 대본을 쓰기도 전에 같이 일하기로 했다. 심지어 대본 초안에서 두 주인공의 이름들이 이양희, 이채경이라고 쓰고 시작할 정도로 그만큼 100% 배우들을 신뢰하며 작업했다. 이전에 찍은 <고추>라는 단편에 출연해 이미 친분이 있는 사이이다. 한 번 같이 전화 통화를 하면 기본 1시간은 넘을 정도이다. 보통 전화 통화로는 영화와 예술 얘기를 많이 나누는데 <조지아>의 세트장에서는 오로지 대본과 연기 얘기만 나눈 걸로 기억한다.”
Q. 아버지가 한 대사 중 “합의금은 대체 누구 좋으라는 것이냐”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인물 간의 감정에 가장 신경 쓴 장면은?
▶제이 박 감독: “이채경 배우의 컷들은 대부분 평균 두 테이크만 하고 끝났다. 보통 감독들이 한 두 테이크로 가는 경우는 드문데, 이채경 배우는 항상 홈런을 치니 가능했던 것 같다. 가장 신경 쓴 장면은 아버지 캐릭터가 디자인 가게 직원에게 현수막을 요청하는 장면이었다. 처음으로 관객이 스토리의 ‘정체’를 알게 되는 장면이라 평균 10번 이상 촬영을 했던 것 같다. 만약 이 장면에서 관객이 영화의 중요한 설정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뒤에 아무리 멋있는 장면들이 나와도 와 닿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영화적 설정에 더 공을 들인 것 같다. 예를 들어, 모든 조연들에게 대본에 존재하지 않는 더 넓은 스토리 세계의 공간을 설명하고 영화에서는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는 진아 사건의 타임라인을 만들어서 배우들에게 공유했다. 조단역까지 뚜렷한 배경 스토리를 쓰는 등 영화의 설정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Q. <조지아>의 미장센을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제이 박 감독: “스탭들은 처음 <조지아>대본을 봤을 때 제가 이창동 감독 스타일의 현실주의로 핸드헬드 촬영과 저예산 느낌의 미술을 할 거라고 예상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현실주의만 강조하며 찍는다면 관중들은 <조지아>를 보고 단조로운 슬픔과 분노만 느끼며 극장을 떠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영화 속 부부 역시 인생의 많은 시련을 겪는 만큼 결코 삶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관객 마음속에 심어주고 싶었다. 카메라 뒤에서 그들을 많이 사랑하는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 주인공들의 세상에는 신이 존재하고 그 존재가 그들을 많이 사랑하고 포옹을 하고 있는 느낌 등 관객들이 알게 하고 싶었다."
"전체적으로 <조지아>의 색상을 태극기와 조지아 주의 기에 기반을 두고 작업을 했다. 영화 속에서 한국과 미국, 동양과 서양의 대비가 큰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걸 강조하기 위해 두 기의 공통된 색인 파랑, 빨강, 흰색을 미술과 의상의 주요색으로 정했다. 그리고 부패한 경찰과 가해자 어머니 그리고 가해자 학생들의 의상에는 모두 블랙이 들어가 있다. 또한 저금통, 영어회화책, 사물함 그리고 항상 진아를 머리에 두고 사는 부모의 헬멧 등 진아를 상징하는 물건들은 모두 조지아 주의 노란색이다. 정말 많은 정성과 노력을 들였다.이런 점을 주의 깊게 봐주시면 영화가 좀 더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Q. 광고와 뮤직비디오 감독으로도 오래 활동하신 걸로 알고 있다.
▶제이 박 감독: “장편 감독으로 일하고 싶었는데 먹고 사는 것도 중요하니 어쩌다가 광고 쪽에서 일을 하게 된 것 같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서 장편영화 대본을 썼는데 그걸 만들 수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우선 단편영화를 만들어야 했다. 사실 저는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미국에서 살다와 한국말을 잘하는 편은 아니다. <조지아>의 영화 길이가 거의 30분이고 한국말 대사가 많은 단편이다. 영화의 대본고 쓰고 연출 할 수 있다는 걸, 한국영화 제작자들에게 증명하기 위해 만들었다. 장편영화 대본도 있다. <조지아>를 좋아하신 제작자분들이 계신다면 연락주세요.”
Q. 이 영화를 연출하면서 영향 받은 것들이 있다면?
▶제이 박 감독: “데이빗 린치 감독의 ‘트윈픽스 시리즈’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다. 그 쇼에서 고등학생인 로라 팔머가 세상을 떠났다는 설정인데, 출연도 하지 않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조지아>에서 죽은 딸 진아 역시 스토리의 원동력을 제공하고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오히려 주인공보다도 더 그녀에 대해 많이 알고 이해하게 되길 바랐다.”
Q. 이 영화를 보는 시청자분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제이 박 감독: “기가 막힌 장편영화 대본 거의 완성했습니다. 혹시 우연히 <조지아>를 보고 마음에 든 제작자분들이 있다면 연락 주세요. 그리고 <조지아>의 영화제 행적과 수상 소식을 알고 싶은 분들은 인스타에서 @jayilpak을 팔로우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 제이 박 감독과의 인터뷰는 KBS 독립영화관 송치화 작가와의 서면인터뷰로 진행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