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플렉스 롯데시네마에서 흥미로운 작품을 상영 중이다. 2019년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된 ‘창극 패왕별희’의 공연실황이 ‘롯데시네마에서 만나는 국립극장 우수 레퍼토리’ 기획전으로 소개되고 있다. 국립극장의 전속예술단체인 창극단은 춘향가, 수궁가, 적벽가 등 전통의 판소리를 창극무대로 올렸고, 언젠가부터 다양한 창극 작품을 내놓고 있다. 그 외연확장의 일환이 바로 2019년 무대에 오른 ‘창극 패왕별희’이다. 진개가(천카이거) 감독의 장국영 영화 [패왕별희](霸王別姬)에 익숙하지만 원래는 수백 년 동안 중국의 대표 경극으로 유명했던 이야기이다. 그 중국의 이야기를 한국 공연인들이 한국공연 포맷인 ‘창극’으로 만든 것이다.
● 항우와 유방
중국 옛 역사를 잠깐 살펴보면 하(夏)상(商)주(周)시대를 지나 그 유명한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다. 하지만 진시황이 죽자 곧바로 제후국들의 패권경쟁이 시작되고 마지막 승부에 오른 인물이 ‘장기판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초(楚)나라의 항우와 한(漢)나라의 유방이다. 항우는 무장의 후예로 카리스마 넘치는 장군이었고, 유방은 보잘 것 없는 평민 출신의 행운아였다. 천운을 타고난 유방은 좋은 부하, 막료, 장군, 게다가 아내(여태후)의 덕분에 항우와 건곤일척의 대결을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천하의 명마 오추마와 천하의 미인 우희(우미인)를 옆에 둔 항우는 좁쌀 같은 유방을 단칼에 처치할 기회를 가지지만, 결정적 실수로 놓아주게 되고, 이후 연전연패 하다 사면초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기원 전 2세기, 즉, 2200년 전 중국 중원에서 펼쳐졌던 역사이다.
● 경극과 창극
중국에는 전통 공연(演戲)이 많다. 오랜 역사, 넓은 땅, 많은 재인(才人)들이 있는 중국답게 각 지역마다 특징적 연희가 있었다. 청나라 건륭제(18세기 말)에 수도에서 모여든 지방 연희들이 교류하며, 융합되고, 결국 오늘날의 종합공연예술인 경극이 다듬어지게 되었다. 장국영의 영화 [패왕별희]에서 경극(북경오페라)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서태후부터 일반 백성들까지 이야기에, 노래에, 가락에, 무대 위 영웅의 손동작 하나에 열광했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정교하게 발전한 경극은 분장, 배역의 등에 꽂은 깃발의 개수, 발을 들어 구르는 제스쳐, 손바닥을 휘젓는 행동 등 그 상징에 특별한 의미를 가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극의 모든 공연자는 남자로 이루어졌었다. 장국영이 그랬던 것처럼. 이번 작품에서도 남자배우가 우미인을 연기한다.
창극은 조선 말기 ‘원각사’의 창립과 함께 자리 잡기 시작한 한국식 연희의 한 형태이다. 여러 가객들이 무대에서 연기를 하며 판소리 조로 극을 진행한다. 그리고 야경꾼 역할의 인물과 극을 해설하는 노파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서양(그리스)연극의 형태도 보인다.
● 창극과 멀티플렉스
‘창극 패왕별희’는 2019년 4월 극립극장(달오름극장)과 11월 예술의전당(CJ토월극장)에서 공연되었었다. 코로나사태로 극장들이 신규아이템을 수급하는 방식으로 각종 무대 실황공연을 영화관에서 만나보게 된다. 제한된 시기에, 제한된 극장에서만 만나게 되던 공연을 극장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기회인 것 같다. 그리고 ‘창극’에 대한 관심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보권(항우), 윤석안(유방), 김준수(우희) 등 국립창극단 멤버들이 열연을 펼친다.
특히 우미인을 연기한 김준수는 국립창극단의 간판스타이다. 2013년 창극 '서편제'의 어린 동호 역으로 첫 주연을 맡은 이래 창극 '배비장전'(배비장 역) '메디아'(이아손 역) '적벽가'(제갈공명 역) '오르페오전'(올페 역) '트로이의 여인들'(헬레나 역) '흥보씨'(흥보 역) '산불'(규복 역) 등에서 주연을 맡으며 창극의 인기를 견인하고 있다.
이들 한국 창극단 연기자가 연기하는 ‘창극 패왕별희’의 제작진 구성이 흥미롭다. 작창과 음악감독은 이자람이, 작곡은 이자람과 손다혜가 맡았다. 그리고 연출은 대만의 우싱궈(吳興國), 극본과 안무는 린슈웨이(林秀偉)가 맡았다. 우싱궈와 린슈웨이는 그동안 세익스피어극, 고대희랍연극을 현대화시키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했기에 이번 한국의 창극 도전이 흥미로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의상장신구 디자인은 예진텐(葉錦添)이 맡았다. 홍콩의 베테랑 미술감독인 예진텐은 ‘와호장룡’으로 아카데미 미술감독상을 수상한 인물이다.
한국 창극인들이 혼신의 열정으로 완성한 ‘창극 패왕별희’를 중국 관객은 어떻게 볼까. 특히 경극 요소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릴지 궁금하다. 창극의 외연확장으로 만족할 한국콘텐츠인지 아니면 해외에서도 통할 아시아적 콘텐츠인지와는 별도로 말이다.
▶출연: 정보권(항우), 윤석안(유방), 김준수(우희), 이연주(여치), 허종렬(범증), 유태평양(장량), 김금미(맹인노파), 최용석(한신), 이시웅(팽월), 이광원(번쾌) ▶2021년 9월 23일 개봉 상영시간:135분 #영화리뷰 #박재환 KBS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