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12시 10분 KBS 1TV [독립영화관[에서는 독립영화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배우 강진아가 출연한 세 편의 단편영화가 시청자를 찾는다. 그 중 남순아 감독의 [추석 연휴 쉽니다](2020)는 추석연휴를 앞두고 절묘하게 편성된 여성영화의 수작이다.
추석 연휴, 이영(임성미)은 연휴 기간에도 디자인 작업 때문에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그 때 갑자기 쳐들어온 친구 안다정(강진아). 이전 룸메이트였던 다정은 추석연휴 시댁 방문 문제 등으로 남편과 싸우고는 무작정 집을 나와 이영에게 온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반갑기도 하지만 마감에 쫓기는 지금 상황에선 친구의 방문이 마뜩짢다. 다정을 돌려보내려 하지만, 다정은 갈 생각이 전혀 없고 눈치 없이, 끝없이 살갑게 군다. 마감에 쫓기는 이영의 입장은 생각도 않고 밥 먹자면 밖으로 끌고 나간다. 연휴기간이라 모든 식당이 문을 닫았다. 이영은 폭발하고, 다정은 그런 친구가 서럽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추석을 둘러싼 부부갈등은 ‘아침마당’ 단골 소재였다. 언젠가부터 ‘82년생 김지영’이 되어간다. 아마도 다정도 비슷한 경우이리라. 그런데, 이영의 입장은 어떨까. 추석연휴조차 혼자서 파트 타임으로 일하고 있잖은가. 친구보기엔 궁상맞아 보일 것 같아 초조할 것이다. 런닝타임 19분의 ‘추석 연휴 쉽니다’는 기혼과 미혼의 두 여자 캐릭터를 통해 그 나이 또래의 청춘이 맞게 되는 특별한 감정의 골을 밀도 높게 전한다. 이영의 초조함은 이성적으로 즉자적으로 공감하게 되는 청춘의 실상이고, ‘무대포’에 가까웠던 다정의 방문은 시간이 갈수록 감성적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된다. 남순아 감독의 깔끔한 연출력과 임성미, 강진아 배우의 현실적 연기가 ‘추석 연휴’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오늘 방송되는 KBS 1TV 독립영화관은 독립영화가 사랑한 ‘강진아’ 배우 특집으로 <추석 연휴 쉽니다>와 <슈뢰딩거의 냥이들>(서윤수 감독), <작년에 봤던 새>(이다영 감독)가 방송된다. <한강에게>, <소공녀>에 출연해 주목받은 강진아 배우는 연말에 <태어나길 잘했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인터뷰■ 남순아 감독 “영화에 관해 궁금한 것들”
Q. <추석 연휴 쉽니다>의 시나리오를 직접 쓰시고 연출을 했다.
▶남순아 감독: “몇 년 전 추석 연휴때 가족과 갈등을 빚던 엄마 친구가 갑작스레 엄마를 찾아오셨던 적이 있다. 제가 결혼 적령기에 진입하면서 친구들과의 관계 변화에 대해 고민이 많아서 그때의 인상적인 경험과 연결지어 이번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었다.”
Q. 강진아 배우를 캐스팅 하게 된 과정은?
▶남순아 감독: “강진아 배우는 십여 년 전 저의 첫 단편에 출연해주신 적 있다. 다양한 작품에서 언제나 포인트 있는 연기를 보여주시기 때문에 존경하는 배우이다.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일 수 있는 다정 캐릭터를 미워할 수 없이 사랑스럽게 표현해줄 배우가 필요했다. 흔쾌히 제안을 수락해주셨다. 작업과정에서 도움을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Q. 이름이 ‘다정’인 이유가 있는가.
▶남순아 감독: “정말로 다정하면서 동시에 ‘다정도 병이다’라는 말을 떠올릴만한 캐릭터이길 바랐다. 주변에 한 명쯤 있는 오지랖 넓고, 제멋대로 마음 써주고, 섭섭한 것도 많은 캐릭터이다. 임성미 배우가 연기한 ‘이영’과는 정반대의 성격이다.”
Q. 미혼인 이영과 기혼인 다정은 오래전 친구였고, 함께 살았던 사이로 보인다.두 사람은 어떤 관계인가.
▶남순아 감독: “대학에서 만났고, 음악 취향이 같아서 친해졌다는 저만의 설정이 있다. 강아지처럼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다정’의 성격 덕분에 고양이 같은 ‘이영’도 마음을 열었을 거라 생각한다. 지금의 ‘이영’ 집에서 함께 살자는 제안도 ‘다정’이 먼저 했을 것으로 생각했다. 언제나 다정이 먼저 다가가고, 이영은 내키지 않는 듯 하면서도 다정의 뜻대로 따라주는 관계 아니었을까? 어렸을 때는 작은 공통점에도 쉽게 친해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관심사가 달라지면서 점점 관계가 이전 같지 않다고 느꼈으리라 생각했다.”
Q. 다정의 친구로 나오는 이영은 ‘임성미 배우’가 연기한다.
▶남순아 감독: “임성미 배우는 코미디와 정극을 넘나들 줄 아는 배우이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 갑자기 냉정하게 변하기도 한다. 영화 속 ‘이영’ 캐릭터는 예민하면서도 천연덕스럽게 보였으면 했다.그리워하던 친구에게 나는 네가 정말 보고 싶었다고 솔직하게 굴지 못하고 시치미 뚝 떼는 캐릭터를 임성미 배우가 잘 살려주셔서 감사하다.”
Q. 다정이 이영의 집으로 찾아온 이유는?
▶남순아 감독: “남편과 싸우고 홧김에 나왔을 때, ‘가족’이라는 공동체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살아온 다정이 홀로 갈만한 곳이 별로 없으리라 생각했다. 친정으로 갈 수도 있겠지만, 친정에서는 수많은 걱정과 잔소리를 들을 테니까.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가 아닌 자신의 모습이 그리워질 때, 결혼 전까지 살았던 집으로 갈 것으로 생각했다. 또한 이 집에 자신의 지분도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Q. 두 사람의 감정 변화가 느껴진다.
▶남순아 감독: “과거에는 내 분신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친한 친구였지만, 이제는 변한 관계에 대해 서로 다르게 이해하고 있는 캐릭터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그 관계를 마주해 나가길 바랐다. 함께 살던 집에서 하루를 함께 보내면서 둘은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예전 관계의 연명이 아니라 서투르지만 다시 새로운 관계를 맺기 위해 두 캐릭터가 이전과 다른 정직한 얼굴을 내보이는 데 중점을 두려고 했다.”
Q. 연출자로서 지금의 가장 관심사는 무엇인가?
▶남순아 감독: “연출자로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투쟁에 대해 관심이 많다. 최근에는 노년의 삶과 돌봄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다.”
Q. 차기작은?
▶남순아 감독: “얼마 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통해 돌봄 노동을 도맡은 K-도터를 다룬 호러 단편 <유산>이 관객들을 만났다. 그리고 <해피해피 이혼파티>라는 제목으로 부모님의 이혼 15주년을 기념한 단편 다큐멘터리가 제주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계속해서 관객들을 만날 수 있도록 영화제 출품 중에 있다.”
Q. <추석 연휴 쉽니다>를 추석 연휴에 볼 시청자 분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남순아 감독: “<추석 연휴 쉽니다>는 예전엔 가까웠지만, 이제는 멀어진 친구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만들게 된 작품입니다. 저는 이 작품과 함께하면서 멀어진 우리가 시간이 흘러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도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그리운 이들에게 먼저 연락해보시길 바랍니다. <추석 연휴 쉽니다>와 함께 풍요로운 한가위 보내시길 바랍니다.”
[추석 연휴 쉽니다] 2020년, 19분
연출/각본:남순아 출연:임성미, 강진아 촬영/D.I:노다해 프로듀서:김아람 배급:포스트핀
*** 남순아 감독과의 인터뷰는 KBS 독립영화관 송치화 작가와의 서면인터뷰로 진행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