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민 감독 ⓒ농부영화사
박홍민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 [그대 너머에]가 내일(9일) 개봉한다. 박홍민 감독은 [물고기](2013), [혼자](2016) 등 두 작품을 통해 영화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영화평론가 토니 레인즈는 [그대 너머에]에 대해 “한국에서 가장 두려움 없이 자아라는 감옥을 탐험하는 탐험가임을 입증하는 작품”이라고 했다. 과연 그럴까. 영화 [그대 너머에]는 어느 날 한 여자(윤혜리)가 영화감독(김권후)을 찾아온다. 둘은 기억이 혼미해지는 엄마(오민애)와의 관계를 쫓아간다. 애타게 기억을 더듬는 사람, 그 망각의 여정을 따라간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루이스 브뉘엘과 크리스토퍼 놀란의 이종교배의 결과물 같다. 박홍민 감독을 만나 [그대 너머에]와 그 너머 기억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전작들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았다.
Q. [그대 너머에]는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소개된 뒤 몇 차례 상영회를 가졌다. GV에서 어떤 질문을 받았는지.
▶박홍민 감독: “영화가 어렵다는 분들이 있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개미의 의미에 대해 묻거나, 디테일한 것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GV때 설명해 주시는 평론가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시는 것 같다.”
그대 너머에 ⓒ농부영화사
Q. 이번 작품도 그렇고, 전작의 경우에도 현장 통제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궁금하다. 새벽에 몰래 찍은 것인지.
▶박홍민 감독: “로케이션 촬영을 할 때는 변수가 많다. 그래서 리허설을 많이 하는 편이다. 촬영 들어가기 한두 달 전에 찍고 싶은 곳에 가서 핸드폰으로 샷 찍어보고, 연출부와 함께 배우들 동선을 미리 맞춰본다. 이번 작품에 등장하는 장소는 모두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공간이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미리 동네 사람들에게 일일이 알리고 협조를 부탁드렸다. 낮에 찍을 때는 연출부가 통제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NG도 많이 났다. 리허설을 아무리 많이 하더라도 연기를 완벽하게 뽑아낼 수가 없다. 딱 맞출 수 있는 기회는 몇 번 없다. 촬영을 뒤로 미루기도 했었다.”
Q. 그 동안 영화를 찍으면서 가장 고민한 것은 무엇인가. 빠듯한 제작비?
▶박홍민 감독: “제작비나 밥값은 영화 찍기 전부터 예상하고 들어가는 것이다. 아마 돈을 더 많이 들인다고 해도 똑같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제가 신경 쓰는 것은 연출에 대한 고민이다. 찍고 있는 이 장면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질 만한 샷인가. 스트레스도 받고, 생활적으로 리스크가 크지만 현장에서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으려 한다. 퀄리티 문제가 제일 중요하니.”
그대 너머에 ⓒ농부영화사
Q. [물고기]부터 시작하여 [혼자], 그리고 이번 [그대 너머에]까지 감독 특유의 아우라가 있다. 이런 스타일의 영화를 계속하는 이유는?
▶박홍민 감독: “제가 좋아하는 영화는 아방가르드 퓨전영화를 좋아한다. 영화가 어떻게 변화되는 시기에 적응을 하는지 관심을 갖고 있다. 1980년대에 MTV에서 뮤직비디오를 쏟아낼 때의 그 이미지, 에너지가 좋았다. 물론 그 시대에 살지는 않았지만 지금 그 때를 보면 뭔가 다른 것이 있었다. 무언가를 발견하는 기쁨, 새로운 방식에 대한 시도가 있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메타이다. 우리가 세계관을 완벽하게 이해시키는 것도 가치가 있겠지만, 그런 균열들을 좀 깨고 싶었다. 익숙한 것들을 부수고 싶었다. 그래서 영화를 통해 다른 식으로 접근하려고 했다.”
Q. [그대 너머에]에서는 극중 영화제작자와 작가가 감독에게 “감독님 자신이 좋아하는 것 말고, 다른 사람 좋아하는 영화를 찍어보라”고 말한다. 자기반성인가?
▶박홍민 감독: “저도 많은 사람들이 흥미롭게 접근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이 영화 만들면서 개인적인 경험도 많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그동안 영화 제작 지원제도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그때 제작 피디와 말한 것이 있다. 지금 이걸 안 찍으면 이 이야기는, 이 시나리오는 없어지는 것이라고. 그 당시의 정서를 뽑아낸 것이다. 이걸 물화(物化)시키고 싶었다. 창작물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재밌고, 흥미 있게 풀어내는 것이 우선 과제였다.”
그대 너머에 ⓒ농부영화사
Q. 인숙(오민애)의 집, 벽에 붙어 있는 사진 속 이미지가 조금씩 바뀐다. (영화 보시는 분 유심히 살펴보시길)
▶박홍민 감독: “인숙의 상태를 보여준다. 내면의 상태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대 너머에 ⓒ농부영화사
Q. 영화 속 한경호 감독(김권후)은 마지막에 왜 그렇게 되나?
▶박홍민 감독: “맥락을 맞추기 위해 그랬다. 영화적 장치, 설정이다. 어쩔 수 없는 게 있다.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무엇을 의지하고 살아가야하는지 고민하다가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다. 경우는 죽은 뒤에도 영화에 출연하다. 기억의 문제도 그렇고. 죽음도 그렇게 집어넣은 것이다.”
Q. 윤혜리 배우는 처음 보는 배우인데 극중에서 제 역할을 잘 해낸다.
▶박홍민 감독: “윤혜리 배우에게는 이번 작품이 첫 장편이다. 지연 역을 위해 오디션을 많이 보았다. 추천도 받았고. 이돈구 감독의 추천으로 윤혜리 배우를 만나보았다. 시나리오를 건네 줬는데, 이 영화뿐만 아니라 [물고기]와 [혼자]까지 찾아보고는 캐릭터에 대해, 감정에 대해 분석하더라. 윤혜리 배우는 시나리오를 읽고서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차근차근 잘 설명하더라. 감정이 울컥하기도 하고,. 감정 몰입을 잘하구나 생각했다. 촬영초반에는 불안불안했다. 어색한 면이 있었다. 몸이 유연하지 않았다. 난 유연하게 잘 움직이는 배우를 좋아한다. 그래서 리허설을 많이 했다. 김권후 배우와 오민애 배우는 연극을 오래 한 배우이다. 같이 케어를 잘 해주었다. 많이 배웠을 것이다. 장충단 공원 장면 찍을 때 감정이 잘 나오더라.”
Q. 장편데뷔작 [물고기]를 '무려' 3D로 찍었다.
▶박홍민 감독: “[물고기] 시나리오를 써놓고 이런저런 제작지원에 응모했었지만 다 떨어졌다. 그 당시 최대 화두가 3D였다. 관련 세미나나 컨퍼런스에 꼬박꼬박 참석했다. ‘3D’기술에 끌리는 부분이 있었다. 뭐랄까. 과장되고 왜곡되면서, 시선을 통제한다는 의미에서 강압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 때 최성원 감독의 제의가 있었다. [아파트], [폰] 등 여러 작품에서 조명감독 하시던 분이신데 촬영감독을 하고 싶어 했다. 저랑 단편작업도 했었고. 당시 동아방송예술대학에서 3D 지원사업을 하나 받았다. 내가 써놓은 시나리오도 있으니 3D영상 예고편 하나 찍어보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케이한 것이다. 시나리오, 콘티 짜고 테스트하고, 공부해 가면 프리 작업 들어갔다. 그렇게 영화 찍고 후반작업을 1년 가까이 했다. 막판에 시각효과 업체 IOFX와 작업을 하게 되었다. 많은 도움을 받았고 지금도 그 업체와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물고기]는 그로테스크하다. 생과 사의 중간 지점의 판타지 요소도 있다. 이런 것이 3D요소에 들어맞았다. 과장되고, 왜곡된다는 점에서 이 영화와 어울릴 것이라고 보았다.”
Q. 3D작업을 해보니 어땠나.
▶박홍민 감독: “좌우 렌즈가 함께 장착된 원바디 카메라로 작업을 했다. 3D는 초점을 맞추기 위해 조작을 해야 한다. 대상을 앞에 두고 뒤에 펼쳐지는 배경을 좁게 당겨오면서 공간을 축약시키는 방식이다. 눈이 어지러워지는 문제가 있다. 찍어놓은 영상을 다시 만지는 작업을 계속 했다. 개봉될 때까지 업그레이드가 계속되었다. 서울에서 언론시사회 때 3D 버전이 공개되었고, 실제 극장개봉은 2D로만 이뤄졌다. 당시 3D상영관 여유가 없었다. 로테르담영화제와 해외 영화제에서는 3D로 상영되었는데 말이다. 참, 서울에서는 특별전할 때 세 차례 정도 3D버전으로 상영된 적이 있다.”
박홍민감독 ⓒ농부영화사
Q. 두 번째 작품 [혼자]는 어떤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었나. 죄의식인가?
▶박홍민 감독: “죄의식이라기보다는 당시 제 상황이 그랬다. 아시겠지만 운이 좋아 [물고기]로 각종 영화제를 돌았다. 1년은 그렇게 좋았던 셈이다. 그런데 2년, 3년 지나니 하려던 작품이 엎어지기도 하고,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더라. 그렇게 집에만 있었다. 가끔 친하게 지내는 이광국 감독과 박정범 감독이 날 찾아와서 ‘너 왜 이러고 있냐’ 그랬다. 아무 일도 안하고 있으니 다들 걱정했다. 그렇게 지내다보니 정말 큰일 날 것 같았다. 차 피디와 다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뭐 찍을까. 취재를 해야 하는데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다른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피해의식이 심해진 것이다. 안 좋은 기억들이 많이 떠올랐다. 저도 알지 못하는 분노도 생기고. 굴곡진 감정이 있더라. 그런 감정을 정리해서 작업하였다. 그런 고민이 영화 [혼자]에 들어간 것이다.”
Q. [혼자]에서 이주원 배우가 누드로 골목길을 뛰어다니며 고생한다. 이른바 ‘공사’는 어떻게 진행했는지. (나체씬을 찍을 때 배우의 주요부위를 가리는 것을 공사친다고 표현한다)
▶박홍민 감독: “이주원 배우 누드 장면 공사는 이광국 감독이 맡았다. 이 감독은 홍상수 감독 연출부, 조감독 출신이다. 세 작품 이상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여하튼 공사를 잘했다. 방법을 아시더라. 공사는 분장 중에서도 특수분장에 속한다.”
물고기 - 혼자
Q. 감독님 필모그래피를 보니 [괴롭히는 여자]라는 작품이 흥미를 끈다.
▶박홍민 감독: “사실 그 작품은 부끄러운 작품이다. 잘 알고 만든 영화가 아니다. 아는 사람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 성폭력을 당한 뒤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에 관한 이야기이다. 영화를 찍으면서 느낀 게 많다. 서투른 면이 있어서 부끄러운 마음이 있다. 충분히 감정적으로 공감 못하는 부분이 있다.”
Q. 영화관련 학과 출신이 아니다. 영화는 어떻게 찍게 되었나.
▶박홍민 감독: “모교인 한림대(방송통신학과)에 이황석 교수님이 계시다. 독일에서 실험영화를 전공하신 분이다. 영화를 너무 찍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써놓았던 시나리오 들고 교수님을 찾아간 것이다. 교수님이 1주일 정도 제 시나리오를 보시고 분석을 해주셨다. 그렇게 교수님이 인정해주신 셈이니 신이 나서 영화를 찍었다. 혼자 편집하고, 조명 잡고, 학생들을 배우로 캐스팅하여 찍은 것이다. 혼자서 잘 찍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울에 와서 독립영화 작품을 보니 다들 너무 잘 찍은 것이다. 전문적으로 파트도 나눠서 말이다. 그래서 영화를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과는 갈 수도 없고. 그때 동아방송예술대학에 심화과정이 생겨 그곳에 갔다. 그 학교 장비는 유명하다. 탑 클래스이다. 그 학교에서 과대도 하고 편집실 관리도 하고 그랬다.”
Q. 그 때 찍은 작품이 무엇인가.
▶박홍민 감독: “단편 [가위바위보]가 생각난다. 뺏긴 공을 받기위해 내기를 하는데 가위바위보를 7번 연속으로 이겨도 공을 받지 못하는 아이의 이야기인데 어린 시절 느낀 감정이 많이 들어있다. [연애하기 좋은날]은 소소하게 고민했던 것이다.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사랑이야기이다.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문]이라는 작품도 있다. 초현실적인 표현을 담은 작품이다.”
박홍민 감독 ⓒ농부영화사
Q. 앞으로 어떤 영화를 찍고 싶은가.
▶박홍민 감독: “[그대 너머에]를 찍으면서 느낀 점이 있다. 주인공이 생과 죽음 어디에 있든지 활력을 갖고 있는, 상황을 이겨내는 인물을 그리고 싶다. 행여 죽음에 놓여있더라도 말이다. 아직 어린데 잘못하면 제가 어두워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이다. 지금까지의 작품이 저를 둘러싼 메타적인 인물을 다뤘다면 이젠 전혀 다른 인물, 활력 있는 사람으로 상황을 돌파하는 인물을 만들어보고 싶다.”
Q. 감독님의 영화사 이름이 ‘농부영화사’이다. 디지털 시대에 오히려 특별해 보인다.
▶박홍민 감독: “영화를 꾸준히 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그렇게 지었다. 세련되지 않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우직하게 작업하고 싶은 것이다. 겉멋 안 들게, 항상 날 환기시켜줄 수 있도록. 농부는 1차 생산자이기도 하다. 땅에 씨를 뿌리는 심정으로 창작도 그렇게 하고 싶다.”
김권후, 윤혜리,오민애, 이주원이 출연하는 박홍민 감독의 영화 [그대 너머에]는 내일(9일) 개봉된다. 박홍민 감독의 전작 [물고기]와 [혼자]는 OTT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박홍민 감독 ⓒ농부영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