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25번째 작품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이 1일 개봉된다. 수많은 마블의 슈퍼히어로 계보에서 ‘샹치’는 낯선 이름에 속했다. 하지만 '샹치'도 곧 유명해질 것이다.
‘샹치’(Shang-Chi)는 만화책 시절의 마블이 1973년 내놓았던 코믹북에 처음 등장한다. 미국에서 불기 시작한 쿵푸 열풍에 힘입어 코믹북에 등장한 아시아계 캐릭터이다. 악당 푸만추의 아들이라는 업보를 가진 인간 영웅이다. 푸만추의 손가락에는 열 개의 반지가 끼워져 있다. (타노스의 글로브에 박힌 스톤처럼) 열 개의 반지에는 모두 각각의 능력이 있다. 즉, 10개나 있으니 푸만추의 능력은 가공스럽다. 샹치는 이런 아버지와는 다른 길을 가겠다고 작심한다. 그리고는 어벤저스 멤버가 되어 지구/우주 평화를 지킨다.
샹치, 아버지와 나
영화 초반부에 엄청난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샹치의 아버지(양조위) 모습을 보여준다. ‘주웠는지, 훔쳤는지 모를' 열 개의 링을 차지한 원우는 엄청난 힘으로 천년의 세월을 이어가며 인간 세계를 악으로 지배한다. 이번 작품에서 그의 이름은 원우(Wenwu,웬우)이다. 원우는 울창한 수풀에 둘러싸인 비밀의 마을에 들어갔다가 한 여인을 만난다. 평화로운 숲 속에서 우아한 무예를 펼치던 두 사람은 곧바로 사랑에 빠진다. 그렇게 악당 원우는 ‘조직’ 텐링즈를 떠나 그곳에서 행복하게 산다. 샹치와 시에링 남매를 낳고 행복한 은둔 생활을 즐기는 듯 하지만 아내가 죽으면서 행복은 끝난다. 원우는 다시 텐링즈의 우두머리가 되고, 샹치는 비밀의 숲을 떠나 미국에 안착한다. 샌프란시스코의 호텔에서 발레파킹을 하며 ‘평범한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
푸만추, 만다린, 원우
[샹치와 텐링즈의 전설]의 제작 소식이 전해지고 중국에서는 격한 반응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샹치의 주인공을 맡을 ‘시무 리우’의 외모 때문이 아니라 극중 악당 때문이다. 오랫동안 샹치의 아버지는 ‘푸만추’로 알려졌고, 또 다른 이름은 ‘만다린’이었다. 엄청난 파워팩을 손에 쥔 빌런을 ‘만다린’이라는 이름으로 부는 것을 용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이언맨3]에 잠깐 등장하는 악당이 ‘만다린’(가짜)이다. 마블은 이번에 영리한 선택을 한다. 푸만추도, 만다린도 아닌 전혀 다른 이름 ‘원우’를 등장시킨 것이다. 이 역할은 양조위가 맡았다. 양조위는 영화 개봉 전에 자신의 배역에 쏠린 우려의 시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애초에 원우를 빌런의 관점에서 연기한 적이 없다. 그가 지금의 그가 된 이유들을 생각하고 연구하면서 캐릭터를 연기했다.” 뭔가 원작과 다른 방향으로 진행될 것임을 예고한 셈. 원우는 ‘문무’(文武)의 중국어 발음이다. ‘문과 무’를 겸비한 대단한 초인을 예고한 셈이다. 우아하기로는 현존 홍콩 최고의 배우 양조위가 이 역할을 한다. 기대하시라, 새로운 빌런을!
텐 링즈와 용의 탄생
만화책에 등장하는 텐 링즈는 손가락에 끼는 반지이지만, 영화에서는 팔찌로 확대된다. 양조위가 자신의 양쪽 팔에 황금색 팔찌를 끼고 절대무공을 선보이는 장면을 보면 [쿵푸허슬]에 잠깐 등장하는 재단사(조지릉)가 생각날지 모를 일이다. (샹치의 방에는 [쿵푸허슬] 포스터가 붙어있다!) 만화책에 따르자면 각각의 링에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그런 스펙을 세분화 하지 않는다. 하나로 뭉쳐 엄청난 파워와 가공할 기능을 선사한다. ‘텐 링즈’ 로고는 영화 초반에(그리고 예고편에) 잠깐 등장하는 원우의 군사깃발에 등장한다. 이 로고는 ‘아이언맨3’에도 등장한다. 원래는 깃발엔 몽골어가 쓰여 있다. 그래서 영화 개봉이후 몽골 정부당국의 항의를 받았다고. 그래서, 이번 영화에서는 한자(전서)로 대체된다. 별 대단한 문자는 아니다.
샹치, 일어서다
‘샹치’의 중국어 표기는 ‘상기’(尙氣)이다. 극강의 내공을 펼치는 무공인이 기를 끌어올리는 것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주인공의 이름에서부터 기존의 우주적 슈퍼히어로와는 결을 달리하는 동양적 기와 혼의 캐릭터임을 느낄 수 있을 것같다. 아마도 디즈니가 ‘쿵푸 팬더’와 ‘뮬란’을 만들며 노정한 실수를 만회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블 제작진과 데스틴 다니엘 크리튼 감독은 '중국적 요소'를 다루는데 극도로 조심한다. 그래서 신뢰할만한 비주얼을 꾸린다. 샌프란시스코 도로에서 펼치는 ’버스 액션‘장면은 성룡(재키 찬)의 아크로바틱 쿵푸에 기댄다. 그리고 바람에 춤추는 대나무 숲은 ’와호장룡‘의 우아함을 불러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쿵푸‘(工夫)의 요체는 ’무예습득의 지난한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컴퓨터로 뚝딱, 인터넷으로 60초만에 다운로드 받는 온택트 e-러닝과는 다르다. 새벽부터 밤까지, 봉에 맞아가며, 땀을 흘려가며 절기를 몸에 익히는 것이다. 샹치도 그런 수련 과정을 거친다. 절대 파워 텐 링즈를 거저 얻는 것이 아니라, 한 단계씩 과정을 밟은 끝에 얻게 되는 영광의 축적인 것이다.
오리지널 ‘샹치’(코믹북)에서 동양권에서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은 아마도 ‘살부’(殺父) 이야기일 것이다. 루크 스카이워크가 아니면서 제 아버지를 아들이 죽인다는 것은 ‘충과 효’의 기본 바탕을 뒤흔드는 작태이다. 이 영화에서는 어떻게 되냐고? 마블의 고민과 양조위의 선택과 샹치의 깨우침이 그 장면에서 이뤄진다. 영화는 한 남자의 고뇌와 성장이 담겨있다. 선과 악의 다툼이며 동시에 인지상정의 갈등이다.
마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원작 만화책과 케빈 파이기의 의도를 뛰어넘는 수작이다. 어쩌면 지금껏 마블 매니아가 아니었던 사람들, 동양식 무와 협의 세계를 즐기는 영화팬에게는 최고의 선물일 듯하다. 영화를 보고나면 장이머우(장예모)가 마블 영화를 만들 날도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 것이다.
▶원제: Shang-Chi and the Legend of the Ten Rings ▶감독: 데스틴 다니엘 크리튼 ▶출연: 시무 리우(샹치), 양조위(원우), 아콰피나(케이티), 장멍얼(시에링) 양자경(지앙난) 패라 천(지앙리) ▶2021년 9월 1일 개봉 12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