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의 무게는 적당한 정도가 없다. 죄책감은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가속이 붙는 존재이기에, 쏜 순간 돌이킬 수 없는 대포알처럼 그 누구의 의지로도 멈출 수 없다. 영화 '캐논볼'은 그러한 죄책감의 속도와 무게가 담겨 있는 작품이다.
영화 '캐논볼'(감독 정승민)은 예상치 못한 사고로 형을 잃은 현우(김현목 분)가 담임 선생님 연정(김해나 분)의 동생인 희철(강봉성 분)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현우는 담임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찾아가지만 연정의 마음은 편하지 않다. 반대로 소문내겠다고 협박하냐며 따져 묻는 담임 선생님에게 현우는 연정의 동생에 대해 궁금하다고 덤덤히 물어본다. 현우가 자신의 동생이 살해하게 된 피해자의 동생이라는 것을 알게 된 연정은 마음이 불편하고 현우가 바다를 보러 가자는 요구를 하자 그런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영화 '캐논볼'에 나오는 두 인물의 공통점은 '남겨진 자들'이라는 점이다. 가해자의, 혹은 피해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사건이 일어난 그날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건이 일어난 후 끝없이 찾아오는 기자들, 위로하는 사람들 등 각자 처한 위치에서 끝없는 고통 속에 갇혀 있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이유로 다른 종류의 죄책감에 얽매이던 두 인물, 전혀 반대편의 선에 서있다고 생각했던 두 인물은 서로를 연민하게 된다. 바다 여행을 끝내 떠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은 서로 또한 이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의 피해자였음을 깨닫는다.
현우는 5년 만에 가게 된 바다에서 조개껍데기를 가져온다. 조개껍데기는 현우에게 마치 세상의 끝처럼 보이던 바다에서 발견한 존재다. 바다의 수평선이 세상의 끝 같아 보이지만 막상 닿으면 다른 세상이 열리는 것 같다는 현우의 말은 이 조개껍데기에 담긴 의미와도 맞닿아있다.
죽음은 영원하지만 남겨진 사람들은 유한하다. 시간이 지나도 모든 괴로움은 그 자리에 남고 과속하는 죄책감을 이길 순 없다. 하지만 '캐논볼'은 인생을 살다 한 번쯤은 마주치게 되는, 언제 끝날지 기약 없는 고통을 안고 사는 사람들에게도 마주할 힘이 있다면 그 고통의 속도와 무게를 벗어나 다른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고 말한다. 현우가 가해자 앞에서 원망 대신 꺼낸 조개껍데기가 그 증거일 것이다. 8월 25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