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KBS 1TV [독립영화관] 시간에는 오성호 감독의 [눈물]과 [연애경험]이 시청자를 찾는다. 둘 다 젊은 남녀의 현실적 사랑을 담은 꽤나 공감 가는 작품이다. [눈물]은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섹션에서 상영되었고, 이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최우수단편상을 수상한 수작이다. [눈물]을 보고 나면 현진건의 단편소설 [빈처]가 생각날 것이다.
한국현대문학사에서 주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현진건의 단편 [빈처]는 1921년 발표된 소설이다. 외국에서 공부한 인텔리겐치아 남편은 하는 일 없이 독서와 창작을 한답시고 집에만 있는 무명작가이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6년간 내조한다. 돈 나가는 세간은 이미 다 팔아치웠고, 이제 남은 모본단 저고리라도 처분하여 아침거리를 장만하려 한다. 가난하지만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장인 생일날 만난 처형은 부유하고, 행복하다. 처형이 사다준 신발을 받아 든 아내가 기뻐한다. 꿋꿋이 옆에서 지켜봐주는 그런 아내가 고마울 뿐이다. 아내와 남편의 눈에서 눈물이 난다.
[빈처]는 1921년 작품이다. 소설 속 저 룸펜이 언젠간 노벨문학상을 받을지라도 오늘날 시선으로 보자면 마냥 ‘내조와 사랑’을 갖다 붙이기엔 가혹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도 저런 커플은 많다. 코로나 사태까지 덮치면서 청춘의 취업난은 연애 난으로 이어진다. 함께 캠퍼스 낭만을 만끽하고, 손잡고 공무원 준비를 하다가도 이런저런 현실적 이유로 헤어지게 마련.
오성호 감독의 [눈물] 속 홍민(곽민규)과 미진(손예원)은 3년간 사귀어온 연인이다. 첫 장면은 함께 샤워하는 장면. “3주년이야. 선물하고 싶어. 브라 하나 사줄게.”란다. 그리고 그럴싸한 선물 하나 살 형편이 못되는 홍민의 지질한 모습이 이어진다. 미진이 사주는 티셔츠 하나에도 부담을 느끼고, 뭔가 계속해서 오버해서 자기도 해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한다. 하지만 카드는 말썽이고, 둘의 갈등은 정점으로 향해간다. 옷가게에서, 회전초밥 집에서, 그리고 롯데월드 앞에서 폭발한다. “뭐하는 xx야, 너 같은 거지xx는 욕을 x먹어야 알아들어!”하며 욕설을 섞어가며 격하게 다투기 시작한다.
둘의 데이트를 지켜본 관객이라면 홍민에게 욕을 쏟아 부으며 미진에게 “헤어져!”라고 소리치고 있을지 모른다. 아마도, 청춘의 한 시절에 좌절하고, 절망하고, 실패하고, 넘어진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홍민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지질함은 자신감 결여에서 오는 열등감의 발로라는 것을 본인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남자를 계속 지켜보는 여자는 짜증이 쌓이고, 실망이 거듭되면서,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게 된다. 그러면 헤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후? 남자는 더욱 지질하게 매달리거나, 흑역사를 한 줄 더하는 것. 여자는? 더 나은 사람 만나든지, 또 다른 지질함의 주체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청춘은 단련될 것이고, 조금 늦춰진 운명의 짝을 만나게 될지 모르겠다. 이 영화에서는 늦은 밤 버스에 나란히 앉은 홍민과 미진을 보여준다. 미진은 살포시 홍민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본 것 이상으로 둘은 사랑하거나 상대의 미래를 믿고 있는지 모른다. [빈처]에서처럼.
오성호 감독의 26분짜리 단편영화 [눈물]을 오늘밤 보는 청춘 중에는 아마도 통곡하는 사람도, 관조의 미소를 짓는 커플도 있을 것이다. 오성호 감독은 자신의 단편 [눈물]에 대해 가수 김광진 노래 ‘아는지’의 한 구절을 가져와 ‘가슴이 아프고 또 아픈 거’라고 말한다. 영화를 보고 이 노래를 듣는다면 홍민과 미진의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으려나.
올해 개봉된 독립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의 홍성은 감독은 자신의 작품에 곽민규 배우에게 연기(목소리)를 맡긴 것에 대해 “KAFA(한국영화아카데미) 동기인 오성호 감독의 [눈물]에서 지질이인데 큰소리치는 그런 스타일의 인물을 잘 연기해서 진상고객 역할을 맡기고 싶었다.”고 말한다. 정말이지 저런 남친을 계속 사귀고 싶을까. 정말로 사랑은 위대한 모양이다! [눈물]은 오늘밤 12시 10분에 방송된다. #박재환 #영화리뷰 #독립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