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질 ⓒNEW 외유내강
2005년 황정민은 [너는 내운명]으로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쟁쟁한 후보를 제치고 트로피를 손에 쥔 황정민은 “(많은)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이렇게 멋진 밥상을 차려놔요. 그럼 저는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스포트(라이트)는 저한테 다 받아요. 그게 너무 죄송스러워요”라고. 이른바 ‘숟가락 론’의 시작이다. ‘천만배우’ 황정민이 신작 제작보고회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다 납치당한다. 납치범은 ‘황정민’에게 “드루와~”한 번만 해보라고 협박한다. 오늘(18일) 개봉하는 영화 [인질]의 한 장면이다. [인질]을 만든 필감성 감독에게 황정민과 영화 [인질]에 대해 물어보았다.
▷ 중국에서 실제 발생했던 (배우납치)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중국영화([세이빙 미스터 우])가 원안으로 알려져 있다. 시나리오 쓸 때 어떤 차별점을 두었는지.
▶필감성 감독: “영화를 보기 전에 그 납치사건을 다룬 다큐를 먼저 보았었다. 중국의 한 배우가 하루 동안 납치를 당했다가 풀려났던 사건이 있었다. 그 하루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연기를 업으로 삼은 배우라면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납치범을 자극하는 행동은 할 수 없겠지만 자기의 연기력을 총동원해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세이빙 미스터 우]도 재밌게 보았다. 잘 만든 영화지만 내가 생각한 것과는 방향이 달랐다. 나는 탈출에 포커싱이 맞춰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중국영화는 경찰(공안)이 어떻게 구해내느냐에 중심을 두었다. 어쨌든 그 영화는 의식하지 않고 나의 영화를 만들었다.”
인질 ⓒNEW 외유내강
▷ 납치범 일당으로 나오는 김재범, 류경수, 정재원, 이호정, 이규원은 영화판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얼굴이다. 어떻게 이들을 캐스팅하였는지.
▶필감성 감독: “황정민 배우가 실명으로 등장한다. 이럴 경우 인질범을 맡은 배우로 얼굴이 알려진 배우가 다른 이름으로 출연하면 몰입이 깨질 것 같았다. 그래서 아예 신선한 얼굴을 찾았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실력은 좋은 배우들이다. 제작사인 외유내강도, 황정민 배우도 그런 의도를 지지해줬다.”
▷신인급 배우들과 황정민과의 연기 케미는 어땠었나.
▶필감성 감독: “정식 촬영 들어가기 전 3주 동안 리허설을 했었다. 황정민 배우는 빼고 우리끼리 하려고 했던 이유는 (신인) 배우들의 연기를 못 믿었기 때문이 아니다. 나도 처음이라 현장에서 대배우의 기운에 눌리지 않으려고 그랬던 것이다. 그런데 황정민 배우가 그걸 알고는 같이 리허설하자고 했다.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었다. 그런 과정이 필요했던 것은 황정민 배우의 기에 눌리지 않는 담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배우들이 쫄아버리면 답이 없다. 리허설을 하면서 그런 부분이 상쇄되었다. 다가가서 친해지려고 하는 모습을 보였다. 현장에서 빠른 시간에 몰입할 수 있었다.”
▷ 필감성 감독은 [무사](2000)때부터 충무로 영화판에서 활동했다. 그래서 이번 장편 데뷔작이 그 누구보다도 감격스러울 것 같다. 시사회 때 영화를 본 소감은.
▶필감성 감독: “시사회 때 황정민을 포함해서 배우들과 처음으로 같이 봤었다. 무척 떨렸다. 황정민 선배가 영화를 보고 ‘잘 만들었다. 고생하셨네요.’ 말씀하시더라. 감개무량하라는 것이 이런 것이었구나. 행복했다. 며칠 전에는 일반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시사회에서 관객들 몰래 숨어서 지켜보았다. 반응이 뜨거웠다. 제가 생각한 포인트보다 더 많은 반응을 보여주셨다.”
인질 ⓒNEW 외유내강
▷ 황정민 배우를 직접 등장시키는 영화를 만들면서 주의를 기울인 부분이 있다면.
▶필감성 감독: “납치와 관련된 영화 시나리오를 준비하면서 새로운 지점을 어디에 둘까 계속 생각했다. 이왕이면 배우를 실명으로 써보면 어떨까. ‘황정만’, ‘황정충’ 이런 것 말고 그냥 ‘황정민’으로. 관객들이 모두 알고 있는 배우. 그리고 그 배우가 직접 연기하는 ‘황정민’. 새로운 스파크를 낼 것이라고 확신했다. 시나리오를 썼지만 정작 배우가 보고, ‘뭐야 이거? 장난도 아니고..’이러면 어떡하나. 그런데 시나리오를 보고 재밌다고 하면서 훨씬 과감하게 자기 포인트를 더 많이 반영하고 싶어 했다.”
“황정민은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내놓다. 편의점 앞에서 펼치지는 장면이 그런 경우이다. 납치범들과 처음 만나는 장면이다. 시나리오에서는 그냥 무례한 질문을 받아도 참고 ‘안녕하세요’하면서 돌아서서 화를 참는 것이다. 그런데 황 배우는 시나리오를 보고는 ‘난 안 이러지. 난 쌍욕을 하지. 바로 삐~소리 나온다‘고 그랬다. 에너지가 좋았다. 결과도 좋았다.”
▷ <무사> 이후 차승재 대표의 싸이더스에서 <무기의 그늘>을 준비했었다는데.
▶필감성 감독: “[무사] 연출부 끝내고 [결혼은 미친 짓이다]와 [말죽거리 잔혹사] 작품을 거쳐 차 대표님과 인연이 되어 황석영 원작소설의 영화화를 준비했다. 입봉작으로 준비했는데 성사되지 못했다. [무기의 그늘]은 제작된 적이 없는 영화인 셈이다.”
▷ 많은 배우들 중에 황정민 배우여야 한 이유가 있었다면.
▶필감성 감독: “어느 배우를 할 것인가 생각을 하다가 1초의 머뭇거림도 없이 황정민이 떠올랐다. 납치되어 몸이 묶여 있더라도 상반신만으로도 두려움과 분노의 감정을 표출해 낸다. 때로는 비굴함을 보여야 하는데 짧은 호흡에 순발력을 보이는 배우는 황정민이다. 또 한가지 이유를 대자면 명대사. ‘브라더’, ‘드루와’ 이런 대사가 나오면서 짓누르는 듯한 공기를 바꿔놓을 수도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할 액션 신을 소화해 낼 수 있는 배우는 황정민뿐이다. 무조건 황정민이었다.”
▷ 영화는 원하는 대로 완성되었는지. [15세관람가]인데 여기에 맞춘 편집작업이 있었는지.
▶필감성 감독: “영화 초반에 스타가 납치된다. 희극적인 요소가 있어서인지 예고편이 공개되고 나서 이 영화가 코미디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초반의 그 지점을 지나 납치범들의 아지트로 배경이 바뀔 때 분위기를 단번에 뒤집어 놓을 생각이었다. ‘이거 장난이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도록 확 끌어들이고 싶었다. 연출의 포인트는 무서웠을 수도 있다. 사실감을 주기 위해 표현수위가 셌을 수도 있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 과한 면이 있었던 모양이다. 처음에 청불 심의를 받았다. 이유가 신선한 배우가 펼치는 장면에서 납치상황 자체에서 오는 공포가 심했던 모양이다. 생경한 배우들 때문에 두려움이 배가된다는 것이었다. 제 의도보다 파괴력이 더 컸던 것 같다. 좀 순화를 시키는 편집을 하려고 했다. 모니터 시사를 두 번 했는데 반응이 달랐다. 코로나 전에 한 것과 코로나 사태 악화 후에 한 시사회 반응이 말이다. 한동안 영화를 안 보다가 이런 영화를 봐서인지 훨씬 공포감이 컸던 모양이다. 이건 오락영화로 좋은 반응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놀면 뭐하나. 편집을 또 했다. 순화시키려고 한 것은 아니다. 오락성을 강화하려고 했다. 운 좋게 15세관람가를 받은 것 같다. 월드컵 4강이라도 진출한 것처럼 분위기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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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미디가 아니다“
▷ 코미디로 만들 수도 있는 이야기였다. 어떤 준비과정을 거쳤는지.
▶필감성 감독: “굉장히 사실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준비하면서 납치범 이야기와 피해자의 수기 등을 보았다. 납치사건을 다룬 경찰을 수소문해서 만났다 여러 번 인터뷰를 했다.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납치범의 심리상태가 어떤지 많이 조사했다. 그리고 영화 속 황정민이라는 것도 사실은 내가 생각해낸, 상상의 황정민이다. 그런 시나리오를 읽은 황정민 선배의 해석은 또 다른 측면이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황정민이 만나 시너지를 빚는 것이 이 영화의 포인트이다. 이런 아이러니 덕분에 영화에 생명력이 깃들었다.”
▷ ‘배우 황정민’의 리얼한 배우생활 연기는 어땠나.
▶필감성 감독: “영화 [인질]을 처음 생각할 때 배우가 납치를 당했을 때 자기의 연기력을 이용해서 탈출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시나리오를 썼다고 이야기했다. 선배님은 그런 경우에 어떻게 할 것인가 물어보았다. 그러자 ‘나는 바로 무릎 꿇지. 깨갱이지. 얼마 원하세요 라고 할 거야’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하셨다. 만나서 시나리오 이야기하면서 밥 먹고 술 마시는데 이런 일이 있었다. 길 건너 편에서 어떤 커플이 황정민 발견하고 우리한테 다가오는 것이다. 술이 많이 취해서 ‘너무 좋아해요. 사진 같이 찍자는 것이었다. 황정민 배우 술 마시면 얼굴 색 어떨지 아시잖은가. 황 배우가 ’죄송해요 술 마셔서..‘ 그랬더니 ’응, 술은 나도 마셨는데...‘ 이러는 거예요. 저랑 황선배가 ’이게 뭐지?‘ 그랬던 것 같다. 그때 참는 황 배우의 얼굴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김재범이 연기한 최기완 인물 에피소드는 그 때 일이다.”
인질 ⓒNEW 외유내강
▷ 납치일당의 리더인 김재범 배우의 캐릭터는 어떻게 구상했는지.
▶필감성 감독: “계획을 안 세우는 게 계획이다. 치밀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캐릭터이다. 내일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래야 수사가 더 혼란스러워 진다. 조사를 해보니 납치범이나 사이코패스들 중에 범죄의 이유가 없을 때가 가장 무섭다고 하더라. 계획을 하지 않기에 경찰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유가 없으니.”
▷ 영화가 신파스러운 장면 없이 액션으로 직진한다.
▶필감성 감독: “일단 이 영화는 리얼리티 액션스릴러로 잡았다. 캐릭터의 사연이 도움이 될까 고민을 했다. 인질범은 다들 사연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다 보여주면 영화의 호흡을 떨어뜨리고 전체적으로 느슨해질 것이다. 그래서 ‘이유 없이’ 하고 싶었다. 물론 나름 돈 때문이겠지만. 제삼자가 보면 납득이 안 되는, 그런 충격적인 인질범의 모습을 설정했다.”
● 속편은 마동석?
▷ 조금 가벼운 질문. 글로벌 프로젝트로 [인질]을 만든다면 어떤 할리우드 배우를 납치하고 싶은지.
▶필감성 감독: “가벼운데 제일 어려운 질문이다. (한참 생각하더니) 마동석? 이제 할리우드 갔으니. 아주 흥미로운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바로 (묶은) 줄을 끊으시려나...”
▷ 납치범 일당을 연기한 배우들 캐스팅 기준이 있었다면.
▶필감성 감독: “특별한 기준은 없었다. 그들은 규정될 수 없는 집단이다. 양아치, 범죄자라는 느낌이 아니라, 뭔가 안 어울리는데 모아놓고 보면 그 조합이 어울리는 것을 생각했다. 부조화 속의 조화를 기대했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안 어울리지만 같이 있으면 묘한 시너지를 준다. 그래서 더 무섭다.”
▷ 영화 엔딩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 것인가 고민하였을 것 같다.
▶필감성 감독: “어떤 엔딩을 줄 것인가 큰 고민이었다. 황정민을 위기에서 구하면 이야기가 끝나니까. 그렇게 무사히 돌아갔다 하면 좋겠지만, 그래도 리얼리티를 살리면서 황정민이 나중에 어떤 일을 겪게 되지 않을까 덧붙이고 싶었다. 그러나 너무 영화적으로 하진 말자. 이 정도로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 영화를 찍고 나서 편집단계에서 삭제한 것이 있다면.
▶필감성 감독: “표현수위에서 조금 손을 보았다. 사실적인 폭력 신. 너무 사실적이면 반감을 살 것이다. 그렇다고 그런 장면이 많지는 않다.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그렇게 잔인하지는 않았고, 많지도 않았다. 인질범의 전사와 관련해서 스토리가 조금씩 있었는데 영화의 전체적 긴박감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잘랐다. 촬영현장 편집본이랑 (개봉하는) 본편이 거의 차이가 안 난다.”
▷ 단편영화를 만든 후 10년 만에 장편을 내놓았는데, 한국에서 감독으로 입봉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필감성 감독: “저도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다. 되다가 안 되고. 그런 일이 반복되니 나 혼자 생각해 보았다. ‘왜 이럴까. 신은 나를 너무 사랑하시는 것인가’라고. 결국 내가 얻은 결론은 내가 쓴 시나리오가 배우를 설득시키지 못했고, 제작사를 설득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역시 중요한 것은 시나리오이지 않을까. 시나리오가 탄탄하다면 무엇이든, 누구든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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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정민은 온몸에 촉수가 달린 야생의 연기자이다”
▷ 영화를 찍으면서 본 황정민 배우는 어땠나.
▶필감성 감독: “상상을 했을 때 대단했다. 영화 속 황정민은 뜨거운 배우이다. 온몸에 촉수가 달린 야생의 연기자이다. 현장에서 보면 너무나 열정적이다.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그리고 현장을 너무 사랑한다. ”
▷ 황정민 배우는 영화뿐만 아니라 연극 무대에서도 에너지를 발산한다. 혹시 보신 적 있는지.
▶필감성 감독: “황정민 배우가 나온 연극 [리차드3세]를 봤다. 그 엄청나게 긴 대사를 안 까먹고 풀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걸 즐기시는 것 같았다. 대극장을 쩡쩡 채우는 것을 보고 천상배우라는 것을 느꼈다. 배우의 에너지 자체에 존경심이 절로 났다. 제가 어찌 감히 황정민 선배의 연기에 대해 평을 할 수 있겠는가. 에너지에 전율을 느꼈다.”
▷한국영화 [모가디슈]와 [싱크홀]이 쌍끌이 흥행 중인 가운데 [인질]이 개봉된다. 부담감은 없는지.
▶필감성 감독: “코로나만 아니면 부담이 되었을 것 같다. 다 같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필감성’이 본명이라고 다시 한 번 밝힌 필감성 감독은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대면으로 인사드리고 싶습니다.”라며 인터뷰를 마쳤다.
황정민 배우의 에너지가 샘솟는 필감성 감독의 데뷔작 [인질]은 18일 개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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