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쇼]와 비슷한 시기에 개봉된 [생방송 에드TV]는 둘 다 한 남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월드와이드하게 훔쳐보는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 이야기이다. 단, 20세기 말까지 미국의 케이블TV에서 훔쳐볼 수 있는 남자의 행동에는 제약이 있었다. 이제 세상은 이미 그 어떤 한계상황을 돌파했다. 숀 레비 감독의 [프리 가이](원제:Free Guy)를 보면 실감하게 된다. 다른 세상 속 인물을 훔쳐보는 단계를 지나 이제 그 인물과 교감을 펼치게 된다. 이게 가능하냐고? 물론, 이전에도 가능했고, 지금은 게임을 통해 더 실감나는 세상이 되었다. 세상은 이미 온택트 되었으니.
가이(라이언 레이놀즈)는 눈이 뜨면 어항 속 금붕어에게 아침인사를 하고 출근 준비를 서두른다. 옷장 속에는 똑같은 푸른색 유니폼만 있다. 도로는 총과 무기를 든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총을 쏘고 있고, 곳곳에서 범죄행위가 일어나고 있다. 가이는 그 혼란을 뚫고 은행에 도착한다. 앗, 그 전에 커피가게에서 언제나 똑같은 최상의 커피를 사 마신다. 은행수납원의 업무는 똑같다. 언제나 은행강도가 들이닥쳐 총을 쏘아댄다. 오늘도 어제와 같고, 내일은 오늘과 같은 삶의 연속이다. 그런데 그런 무변(無變)의 일상에 한 여자가 걸어 들어온다. 선글라스를 쓴 몰로토프 걸(조디 코머)이다. 첫 눈에 반해버린다. 말을 걸어본다. 여자의 반응, “당신, 내가 보여요?” 이제 판타스틱 랜드의 가이는 뜻밖의 캐릭터를 만나 새로운 세상, 새로운 삶을 찾아 모험을 시작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이 게임의 규칙을 파악해야 한다. 열심히 반복 플레이를 하다 보면, 하이-레벨이 되고, 더 많은 권한으로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단, 이 세상이 셧다운 되기 전에 말이다.
● 세상은 창조하는 자의 것
숀 레비 감독은 묘한 상상력을 가졌다. 박물관이 문을 닫으면 전시물들은 어찌될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밤이 되면 박물관 전시물들은 자기들끼리 살아서 돌아다닌다. 이번엔 게임 속 인물이 궁금해진 모양이다. 문제는 CPU와 그래픽카드의 진화 속도만큼 게임 속 인물의 학습능력도 빛의 속도로 진화했다는 것. 일반적으로는 ‘HAL’이나 ‘율 브린너’(웨스트월드)의 반란을 생각하겠지만 여기서는 또 다른 진화의 모습을 그린다. 무한의 디지털세상 속에서 게임에 최적화된 인물이 자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게임 속 NPC(Non-Player Character)의 혁명이 이뤄지는 것이다. 그동안 첨단과학에서 잉태된 AI의 재앙을 다룬 것이 대세였다면 이젠 너무나 친숙한 게임에서 달라지는 미래를 지켜보고, 함께 그리는 것이다. 물론, 걱정 안 해도 된다. 미래는 미래를 그리는 사람의 손과 키보드에 달려있을 것이다.
● 디즈니의 빅 픽처
[프리가이]는 20세기 폭스가 오래 전부터 준비했던 작품이다. 몇 번씩 엎어지고, 연기되더니 결국 숀 레비+라이언 레널즈 프로젝트로 완성되었다. 그동안 폭스사는 디즈니에 인수되어버렸고 말이다. [프리 가이]에는 각종 게임 캐릭터가 쏟아진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은 반가울 것. 그리고 후반부에 뜻밖의 카미오(캐릭터)가 등장한다. 영화를 보면서 “와, 블랙홀 디즈니 행보에 좋은 점도 있구나!”라고 감탄하게 된다. 라이언 레널즈는 여전히 활기차다. [킬링 이브]에서의 그 맹랑한 조디 코머가 영화의 신선도를 확 끌어올린다.
유저의 시간과 돈과 에너지와 열정을 쏙쏙 빨아먹으며 확장시킨 디지털 ‘세컨드 월드’는 오늘도 평화로울 것이다. 키스만 하는 세상, 비주얼한 코인만 잔뜩 쌓이는 세상은 "최상급 형용사" 평화로울 것이다"의문부호" 아니, 그렇게 프로그래밍될 것이다. ▶ 2021년 8월 11일 개봉/ 12세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