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국영이 다시 돌아왔다. 그것도 커다란 극장 스크린에. 찬란했던 홍콩영화의 한 때를 기억하고, 스타 장국영에게 환호했던 세대라면 반가울 수밖에. 그런데 이 영화가 장국영의 유작이라는 사실을 알면 묘한 기분이 들 것이다.
1956년 태어난 홍콩스타 장국영은 2003년 4월 1일, 거짓말같이 팬 곁을 떠나갔다. 그리고 해마다 4월이면 그의 영화가 조용히 영화팬을 찾는다. 극장이든, 영화채널이든, OTT에서든. 올해는 조금 우려곡절 끝에 그의 영화 [이도공간]이 그의 부재를 아쉬워하는 팬들에게 돌아왔다.
장국영이 몰락해 가는 홍콩영화계의 불쌍한 3류 에로 영화감독으로 출연했었던 [색정남녀]가 바로 나지량 감독의 데뷔작이다. 이 영화를 공동감독했던 이동승 감독의 [창왕](더블 탭)에 이어 다시 [이도공간]을 함께 작업했다.
[이도공간]은 당시 세계적인 흥행성공을 거둔 [식스 센스]의 숨결이 느껴진다. 워커홀릭 수준의 정신과 의사 짐(장국영)은 귀신을 본다는 환자 얀(임가흔)의 진료를 맡게 된다. 가족이 모두 이민간 뒤 혼자 홍콩에 남은 임가흔은 새로 이사한 아파트에서 또 다시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지게 된다. 장국영은 모든 것이 마음속에서 생겨난 환영이라며 상담을 시작한다. 장국영은 ‘귀신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불안정한 심리상태에서 자기 스스로 만들어낸 망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사람이다. 결국 이런 장국영의 헌신적인 치료로 임가흔은 자신의 불행했던 과거가 그려낸 악몽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런데 이번엔 의사 장국영에게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장국영은 몽유병 증세에, 귀신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는 임가흔과 장국영의 사례를 거치면서 점점 이들의 불안했던 과거를 재조명한다. 임가흔처럼, 장국영에게도 학창시절 연인(여자친구)의 죽음이 존재한다. 그 소녀는 장국영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고 마지막까지 장국영을 저주하며 건물에서 뛰어내린 것이다. 장국영은 이 일을 까마득하게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날 그 죄책감이 되살아난 것이었다. 장국영의 눈앞에 비참하게 자살한 옛 여자 친구의 환영이 자꾸 나타나자 그는 마침내 그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된다. 높은 빌딩에 올라가 뛰어내려 자신의 고달픈 삶을 마감하기로 한다. 그의 앞에 나타난 피투성이 소녀를 향해 한탄을 한다. “난 지난 몇 년간 전혀 행복하지 못했어.”라며 한 많은 관계를 정리하려고 한다.
장국영이 뛰어내렸을까? 영화 마지막은 장국영은 결국 소녀의 원한에서 벗어나서 임가흔의 사랑에 안착한다. 이 때문인지 장국영의 팬들은 그가 영화에서처럼 마지막에 생각을 돌려놓지 않은 것에 대해 안타까워한다. 장국영의 삶은 그의 영화들만큼 매력적이다. 죽음조차도 말이다. 분명한 것은 내년 4월이 되면 그의 팬들은 또 다시 장국영의 영화를 찾을 것이다. 극장이든, DVD든, 넷플릭스든. 그의 숨결이 조금이라도 느껴진다면 만족할 것이다.
장국영은 [창왕]에서도 죽음을 희롱했다. 유작이 되어버린 [이도공간]을 찍으면서는 죽음과 자살이라는 어두운 골짜기를 지나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이 영화는 비난 아닌 비난을 받아야했다. 홍콩의 제작사는 마스터 필름을 불태우기까지 했단다. 한 시절 홍콩(왕가위)영화를 수입소개했던 모인그룹의 정태진 대표가 힘들게 테이프(베타캠 비디오)를 모아 디지털 포맷으로 변환한 후 이번에 극장 상영이 성사된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장국영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2021년 7월 21일 재개봉 12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