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너무 덥군요. 아프리카에서 촬영할 때부터 더 더운 것 같습니다. 이렇게 화상으로 만나니 좋은 점도 있네요. 에어콘 바람 맞으며 즐거운 시간 되었으면 합니다.” 코로나로 인한 대면인터뷰가 사라진 지 어느새 1년. 인터넷 화상인터뷰 화면에 나타난 김윤석 배우가 이렇게 인사말을 건넨다.
28일 개봉하는 류승완 감독의 신작 [모가디슈]는 ‘모가디슈’ 제작사뿐만 아니라 한국영화 전체가 응원하는 올 여름 ‘텐트폴’ 영화이다. 코로나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면서 충무로와 극장관계자는 우울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 류승완 감독의 실력과 배우들의 노고가 결실이 맺어지기를 그 어느 때보다 간절히 기대한다.
▷ 감독 데뷔작 ‘미성년’ 이후 2년 만에 다시 배우로 돌아왔다. 코로나시기를 어떻게 느끼는지.
▶김윤석: “‘모가디슈’ 하기 전에도 작품을 찍었고, ‘모가디슈’ 끝내고도 다른 작품 찍었다. 열심히 작품하고 있다. ‘모가디슈’ 촬영은 작년 2월에 끝냈으니 1년 반이나 지났다. 이런 시기가 올 줄이야 상상도 못했다. 누구나 힘든 상황이 오면 돌파구를 찾는다. 슬기롭게 힘을 합쳐 역경을 이겨낼 것이다. 이 영화를 극장가 최고의 성수기에 개봉하기로 결정하면서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겠나. 다행히 시사 반응이 괜찮았다.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 카체이싱 장면 "엄청나다"
▷ 영화를 본 소감은.
▶김윤석: “생각한 것 이상으로 잘 나왔다. 후반작업을 거친 완성작을 보고나서 배우들이 말을 잊을 정도였다. 사운드가 그렇게 입체적으로 세팅되고 디자인 되었는지 몰랐다.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다. 내가 저기서 4개월 동안 영화를 찍었는지 살았는지 실감이 안 난다. 촬영이 이루어진 곳은 숙소를 기준으로 모두 한곳에 있었다. 수백 명의 외국인 배우들이 합을 맞추고 만든 작품이다. 자화자찬 같지만 굉장히 보람을 느낀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것 같다.”
▷ ‘모가디슈’의 액션신은 남달랐다. 카체이싱 장면 촬영은 어땠나.
▶김윤석: “액션 중 제일 힘든 게 격투 씬 찍는 것이다. 다행인 게 이번 작품에서 젊은 두 배우가 살벌한 액션을 보여준다. 감독님께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카체이싱 장면은 정말 대단했다. 영상에 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가 필요한지 모를 것이다. 카체이싱 장면을 따로 연습 하지는 않았다. 내가 몬 차는 자동기어였다. 91년 벤츠지만 고물이었다. 시동이 꺼지기도 하고, 창문이 열렸다가 안 열리기도 하고. 계기판도 엉망이었다. 카체이싱 장면에서 카메라 무빙이 굉장했다. 똑같은 차가 두 대씩 동원되었다. 용접으로 천장 뜯어내고, 다시 뚜껑 덮어서 계속 찍었다. 소위 프로가 아니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당연히 위험한 장면은 스턴트맨이 한다. 보면서 제가 몸이 움찔움찔했다. 정말 실감나게 나왔다. 보람 있는 순간이었다. 그 장면은 한 1주일정도 찍은 것 같다.”
▷ 모가디슈를 두고 굉장한 도전이었다고 말했는데, 어떤 지점이 도전이었나.
▶김윤석: “시나리오를 볼 때 궁금했었다. 작은 도시 하나를 세팅해야할 것 같은 스케일이었다. 그런데 현장 도착하니 정말 반경 5킬로 정도는 전부 미술세팅을 한 것이다. 그것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캐스팅이다. 몇 개월 동안 아프리카와 유럽에서 오디션 진행하고 수백 명을 동원하는 기적을 일궈냈다. 스페인어, 불어, 영어, 그리고 그들이 쓰는 모국어들까지.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이뤄냈는지. 대규모 군중 씬은 연습 없이는 합을 맞추기 어렵다. 그걸 해내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다.”
▷ 1991년 소말리아 대사였던 강신성 대사의 소설 [탈출]을 보셨는지. 만나는 보셨는지.
▶김윤석: “만난 적도 소설도 안 읽었다. 영화 [바이러스] 찍은 뒤 크랭크업 되자마자 모로코로 잡혀갔다. 1991년의 일은 잘 몰라도 시나리오에 충실하고 감독의 디렉션에 충실하자고 생각했다.”
▷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은 알았나.
▶김윤석: “이게 실화인줄 몰랐다. 소말리아는 지금도 내전 중이다. 여행금지 국가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군용기 타기 위해 이태리 대사관으로 들어가는 과정이 실화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 허준호 배우와의 연기합은.
▶김윤석: “준호 형이 처음 저를 만나서는 대뜸 팬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작업을 잠깐 쉬었을 때 [황해] 보았다고. 면가 연기를 보고 다시 영화를 하고 싶어졌다는 것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인데 늘 미소 짓고, 항상 뒤에서 현장을 지켜본다. 바리스타가 되어 커피도 만들고. 든든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 모습이 극중 림용수 대사의 모습이었다. 강단 있고, 말수가 적다. 나설 때는 나서는 그런 모습이 실제 배우와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 모가디슈 촬영현장 “엄청났다”
▷ 김윤석 배우도 감독을 해보셨으니 현장에서 보는 느낌이 남달랐을 것 같다.
▶김윤석: “일단 [모가디슈]에 출연하며 배우로 달리진 것은 없다. 한 번 더 느낀 것은 배우가 참 편하다는 것이다. 이 정도 프로덕션을 하려면 준비과정만 몇 년을 해야 할 것이다. [미성년]과는 결이 다르다. 이 어마어마한 프로젝트를 하루하루 준비하고, 지휘하다니. 각 파트의 스태프와 소통하며 한 치도 어긋나지 않게 만든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이다. 감탄하고 존경한다. 하루하루가 배움의 날이었다.”
▷ 소말리아 모가디슈가 배경이지만, 영화는 모로코에서 로케이션 촬영이 진행되었다. 여행은 좀 하였는지.
▶김윤석: “펜데믹 상황이라 촬영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영화의 99%가 우리가 머물던 숙소 반경 5킬로 내에서 이뤄졌다. 작고 아름다운 시골마을이었다. 한 대사가 소말리아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뛰어가던 대통령궁은 카사블랑카이다. 소말리아엔 가지 않고 카사블랑카와 공항 씬 찍는 장면 말고는 촬영지를 벗어난 적이 없다.”
▷ 1991년의 남북한 대치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는지. 감독과는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김윤석: “그때는 내가 대학생이었으니 잘 안다. 해외여행이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최고의 냉전시대였다. 배우로서 준비한 것 중 하나가 영어다. 작품에서 영어대사가 많이 나오는데 해외에서 배운 영어가 아니다. 참고서로 배운 영어이다. 회화보다 문법이 더 중요한 시대였다. ‘성문종합영어’ 보고 배운 사람이 회화를 한다는 느낌을 주려고 했다. 감독님이 주문한 것은 ‘생존’이다. 그 머나먼 곳, 오지에서 내란이 일어나고. 길거리엔 총 든 사람뿐이다. 24시간 총소리가 들리고, 길거리엔 시체들이 즐비하다. 말이 통하는 두 집단이 오로지 생존하기 위해, 살아서 탈출하기 위해 손을 잡는다는 것이다. 생존 이외에는 이념도 체제도 중요하지 않다. 그 점이 최고로 중요했다.”
▷ 시사회 때 맡은 역할과 닮았다고 했는데. 한신성 대사에 담긴 김윤석의 모습은?
▶김윤석: “장르적으로 보아 탈출을 다루는 영화에는 중심에 히어로가 있다. 영웅적인 행동으로 사람들을 위험에서 이끌고, 이겨나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 나오는 한신성 대사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육체적으로 강인하지도 머리가 비상한 것도 아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소말리아에서 근무하게 되었고, 유엔 가입이라는 임무가 주어진 것이다. 그에게는 몇 달 뒤 본국으로 돌아가는 일, 잘 되면 승진하여 편한 나라도 부임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 자리에 오기까지 28년 동안 헌신한 가장의 모습이다. 직원도 몇 명 안 된다. 안기부 파견요원까지 있으니. 나와 닮았다고 한 것은 사람이 부족하고, 후회하는 모습이 닮았다는 이야기이다.”
▷ 조인성 배우와 연기는 어땠나.
▶김윤석: “조인성 배우는 이전에 [비열한 거리] 볼 때부터 좋아했다. 같이 작업해 보고 싶었다. 인간적인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꾸미지 않고 담백한, 그러면서도 믿음을 주는 연기를 펼치는 배우이다. 만나보니 사람 자체가 그랬다. 이성적이고 담백하다. 인간적으로, 배우로서 즐거운 경험이었다.”
▷ 남북한 사람들이 늦은 밤에 좁은 방에 앉아서 다함께 밥을 먹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김윤석: “감독님이 그 장면 좋아하신다. 정전이 되고 촛불만 켜놓았다. 얼마나 더웠을까. 북한 대사관에서 피신 온 아이까지 한곳에 모였다. 배가 고파 침을 꿀꺽 삼키는데 자기네 대사가 신호를 주지 않으니. 두 쪽의 상황이 얼마나 다른가. 그런 느낌을 주려고 했다. 김치가 놓여있고 깻잎 반찬을 두고 한 마음이 된다. 다들 좋아하는 한국음식이다. 아이러니한 상황이기도 하지만 많은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 코로나시대 대작 영화이다. 극장에서 봐야하는 이유가 있다면.
▶김윤석: “불특정 다수가 같이 앉아서 한 공간에서 스크린을 함께 쳐다본다. 같이 공감하는 부분도 있고, 각자 다르게 생각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극장에 최적화된 작품이다. 사운드나 영상이 극장에서 볼 때 최고의 감동을 안겨줄 것이다. 극장이 두 시간 동안 최고의 피서지가 될 것이다.”
▷ 1991년의 소말리아는 참 힘들었다. 김윤석 배우의 1991년은 어땠나.
▶김윤석: “1988년에 첫 연극 작품을 한 뒤 당시에 연극에 미쳤었다. 학교 가지도 않고 연극에 푸욱 빠져 있었을 때였다. 순수하게 연극을 사랑했다. 끼니를 굶어도 연극이 좋았던 때다.”
▷ 해외 진출할 생각은 있는지.
▶김윤석: “사실 외국에서 캐스팅 제안이 들어왔었다. 펜데믹으로 그 프로젝트가 중단되었다. 서로 교류하면서 작품을 만들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본다. 그런 기회가 된다면 도전해 보고 싶다.”
▷ 모가디슈 이후로 촬영한 작품은.
▶김윤석: “얼마 전에 이순신 장군 세 번째 작품 [노량]을 끝냈다.”
● 나도 한때는 영화감독이었다
▷ 다시 연출을 할 것인가.
▶김윤석: “계속 생각 중이다. 생각만 하면 머리에 쥐가 날 정도이다. 솔직히 말해 정해진 게 없다. 뭔가 꽂히는 것이 생기면 또 고생고생하며 파고들어가야죠.”
▷ 류승완 감독에게서 부러운 점이 있다면.
▶김윤석: “순수하게 영화를 위해 모두를 협력하게 만드는 능력. 순수하게 영화만을 위해서 열정을 가진다는 것이 믿음을 준다. 그런 열정이 부럽다.”
▷ 연극을 하다 영화로 왔다. 류승완 감독도 영화판 들어와서 고생이 많았다. 그런 이야기는 나눴는지.
▶김윤석: “‘내가 더 고생 많이 했다’ 같은 이야기는 안하지만 ‘뭐 했을 때 뭐했다’ 그런 이야기는 주고받았다. 고생이라는 단계를 밟고 온 사람은 그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 류 감독과는 금세 마음을 틀어놓는 관계가 되었다.”
▷ TV 아침드라마에 출연하여 인기를 끌기도 했다. 드라마 생각은 없는지. (김윤석은 2006년 MBC 아침드라마 [있을 때 잘해]에서 찌질한 남편 역으로 ‘나쁜 놈’으로 인지도를 높였다)
▶김윤석: “그 이야기는 제발 잊어 달라. 예전에는 대본 기다리다가 쪽대본으로 촬영을 이어가기도 했다. 이제는 표준근로계약서도 있고, 영화 찍는 것처럼 사전제작에 가깝게 작품 만들기도 한다. 드라마 충분히 할 수 있죠. 도전하고 싶은 작품이 있으면 할 것이다.”
▷ ‘모가디슈’를 어떤 영화로 홍보하고 싶은가.
▶김윤석: ”최고의 피서선물이라고 생각한다.“
▷ ‘모가디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김윤석: “후반부에 모든 사람들이 이태리 대사관으로 가기 위해 차량에 방탄 장비를 만드는 장면이 많이 기억난다. 만일을 위해 아이들의 몸에 각자의 혈액형을 적는다. 차량에 탄 후 대사가 하는 말은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무사히 만납시다’였다. 인간으로 그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과 비교하자면.
▶김윤석: “그분들은 싸움을 잘하고 우리는 못한다. 그 영화에서는 서로 싸운다. [모가디슈]에서는 그런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함께 탈출을 도모한다. 어떤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스스로 운명을 만들어간다는 것이 서로 다른 것 같다.“
▷ [모가디슈]가 시사회 이후 호평이 쏟아졌다. 이 시국에 관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을까.
▶김윤석: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평들도 좋고, 예매도 잘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감사하다. 그런데 갈 길이 멀다. 녹록한 여건이 아니니. 28일 개봉된 후 일반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좋은 평가를 해 주었으면 한다. 관객들의 입을 통해 화제가 되고 오래오래 생명력을 가졌으면 한다. 올 여름 최고의 피서지는 [모가디슈]가 상영되는 극장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코로나 사태가 종식되면 꼭 하고 싶은 일로 “가족여행을 가고 싶다.”는 김윤석 배우는 “날씨도 무지 더운데 기자 여러분에게 뭔가 기사를 쓸 수 있는 영화를 하나 내놓은 것 같다. 영화계가 어려운 시기에 힘을 합쳐 양보하고 개봉한 영화이니 많은 응원바랍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