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란도트’는 이태리 음악가 푸치니가 남긴 마지막 오페라 작품이다. 중국을 배경으로 사랑에 눈이 먼 한 남자(칼라프)와 지독한 남성혐오주의 공주(투란도트), 그리고 신분을 뛰어넘는 희생의 아이콘(류)이 펼치는 비장미 넘치는 러브스토리이다. 오페라 투란도트라 하면, 파바로티가 부르는 ‘공주는 잠못 이루고’라는 곡을 연상하거나, 어느 해인가 장예모 감독이 중국 자금성에서 올린 작품을 떠올릴지 모른다. 이번엔 뮤지컬이다. 브로드웨이 작품도 아니고, 중국산도 아니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창작뮤지컬이다. 그것도 서울이 아닌, 대구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가 몇 년 동안 다듬은 뮤지컬 <투란도트>가 지난 주부터 서울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되고 있다.
중국 북경이 무대였던 오페라와는 달리 뮤지컬에서는 배경이 바다 속 수중왕궁으로 바뀐다. 이 바다 속 ‘오카케오마레’ 왕국에 나라를 잃은 칼라프 왕자가 표류해오면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끔찍한 트라우마를 가진 투란도트는 세상의 모든 남자를 싫어한다. 아니 증오한다. 그래서 자신에게 청혼하는 모든 남자에게 결코 풀 수 없는 세 개의 문제를 내고, 맞추지 못하면 참수형을 시켜버린다. 공주가 워낙 아름다워, 죽여도 죽여도, 목숨 걸고 청혼하는 남자들이 줄을 선 셈이다. 칼라프도 그 대열에 합류한다. 천 번째 도전자란다! 과연, 칼라프 왕자는 투란도트의 문제를 풀까. 문제를 푼다고 투란도트의 마음을 얻을까. 칼라프는 왜 지고지순한 류의 사랑을 눈치 채지 못할까. 노래 소리와 함께, 드라마는 마지막을 향해 내달린다.
DIMF는 2010년 트라이아웃 공연을 시작으로 몇 차례 무대에 올랐다. 중국 몇 개 도시를 돌며 중국에도 그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마침내 서울무대에 입성한 것이다. 투란도트 역에는 박소연, 리사, 알리가, 칼라프 역에는 이건명, 정동하, 이창민이, 그리고 류 역에는 장은주, 임혜영, 이정화가 캐스팅되었다. 모두 한 목소리하는 뮤지컬배우와 가수들이다.
뮤지컬은 수중 왕궁을 ‘굳이’ 배경으로 삼았던 만큼 무대장치에 심혈을 기울인다. 무대만 보자면 갑자기 “언더 더 씨”가 들려올 듯하다. 푸치니가 중국에 경도되어 만든 작품이니 의상은 중국스러운 게 정상이겠지만, 용궁스타일로 만들자니 조금은 우스꽝스런 패션이 되어버렸다. 이번 <투란도트> 공연에서는 이미 팬들이 이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배성혁 프로듀서는 제작발표회에서 이런 지적에 대해서 계속 수정을 가하고, 언제든지 더 나은 방향으로 고칠 생각이라고 밝혔다.
노래는 오페라 버금가는 고음과 옥타브를 오르내리는 고음 고역대가 속출한다. 음악을 맡은 장소영 작곡가는 제작발표회에서 “작곡을 할 때 아무나 이 곡을 못 부르게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투란도트를 하는 배우는 가창력은 꽤 괜찮은 모양이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장소영이 작곡한 넘버는 푸치니의 오페라 못지않게 작품을 장엄하게, 비장미 넘치게 만든다. 류의 ‘어쩌면 사랑’, 투란도트가 부르는 ‘마음이란 무엇인지’, 칼라프의 ‘부를 수 없는 나의 이름’, 그리고 투란도트와 칼라프가 함께 부르는 ‘그 빛을 따라서’ 등은 뮤지컬 <투란도트>가 오랫동안 기억하게 만들 넘버로 보인다.
뮤지컬 <투란도트>는 3월 13일까지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