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9일) 밤 12시 35분, KBS 1TV에서 방송되는 ‘KBS독립영화관’ 시간에는 박흥식 감독의 2012년 작품 ‘경의선’이 방송된다. 올 여름 개봉되었던 ‘협녀’를 연출한 박흥식 감독과는 동명이인이다. ‘경의선’에는 김강우와 손태영이 출연한다. 손태영의 첫 영화 주연작이다.
‘KBS독립영화관’에서 보내주는 영화답게, 한밤에 방송되는 영화답게, 그리고 세모에 내보내는 영화답게 진한 여운을 안겨준다. ‘경의선’은 서울에서 신의주까지 달리는 기차이다. 물론 분단 이후 그 기차는 임진강역, 그리고 가끔 도라산역까지만 운행한다.
영화 ‘경의선’에서는 극한의 상황에 내몰려 감정이 하얗게 산화해버린 듯한 남자와 여자가 등장한다.
먼저, 여자. 손태영이 연기하는 여주인공은 독일에서 박사학위까지 딴 여자이다. 지금은 시간강사. 이 여자의 감정은 엉망이다. 베를린에서 사랑했던 선배, 지금도 사랑하는 선배는 교수가 되어 같은 학교에서 만나지만 유부남이다. 주말을 함께 하고 싶었지만 선배의 아내에게 들키고 만다. 한순간에 화냥년이 된 여자. 정처 없이 헤매다가 신촌역에서 기차에 오른다. 잠에서 깨어보니 마지막 역 임진강역에 와있다.
김강우는 지하철 기관사이다. 매일매일 수많은 노선을 오가며 수백 만 시민의 발이 되어주는 지하철 기관사. 서울과 임진각 역을 매일 오간다. 언젠가부터 한 역에 지하철이 멈출 때 ‘샘터’ 잡지를 건네주는 여자가 있다. 지하철매점의 아가씨는 한쪽 다리를 전다. 김강우는 그 친절한 여자의 이름도 모른다. 그런데 어느 날, 김강우가 운전하는 지하철에 한 여자가 뛰어든다. 자살한 것이다. 김강우는 특별휴가를 받는다. 악몽에 시달린다. 임진강역에서 내린다.
그 남자, 그 여자는 막차가 끊긴 임진강역에서 만나 함께 내리는 눈을 맞으며 걷는다. 조금씩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린다.
손태영이 연기하는 시간강사 이야기도 서글픈 이야기이다. 캠퍼스에서, 교수연구실에서, 그리고 저 먼 나라에 유학 가서. 젊은 시절을 아름답게 수놓았을 사랑의 이야기도 현실에서는 불륜과 ‘시강’의 벽으로 막힌 셈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속 시원히 털어놓을 수도 없고 말이다.
아마 ‘경의선’을 보고나면 지하철 기관사를 다시 보게 될지 모른다. 노조파업 관련뉴스가 아니라면 이들 직업의 애환을 모를 것이다. 가끔씩 나오는 지하철에 투신했다는 끔찍한 뉴스를 대할 때마다 기관사의 악몽이 떠오른다. 실제 지하철 투신자살자 때문에 겪는 지하철 기관사의 트라우마는 끔찍하단다. 영화에서 김강우가 말한다. “사람이 뛰어들면 일단 차를 세우고, 시신을 수습한다. 그리고 다시 차를 몰고 종점에 가야한다. 그리고 다시 사고가 났던 역으로 돌아온다. 사고경위서를 쓰고, 경찰에서 목격자 진술서를 써야한다.” 그리고 사흘간의 휴가를 받는단다. 정신과 의사의 상담을 받고. “자신은 다행이었단다. 뛰어든 사람의 눈을 보진 않았으니. 자살하는 사람의 눈을 순간 본 기관사 중에 결국 자살한 사람도 있단다.”
사람은 누구나 아프고, 슬픈 추억과 기억을 갖고 있다. 사랑은 잔인하면서도 상대적이다. 그런데, 그 아픈 사랑과 사람 때문에 다른 사람을 더 아프게 한다면. 얼마나 잔인한가.
김강우가 지하철을 몰다 컵에 소변을 보는 장면도 있다. 거의 매 2분마다 신경을 곤두서며 플랫폼으로 들어선다. 사고가 날까. 그렇게 신경을 집중적으로, 오랫동안 써야하는 직업이 흔할까.
전국의 지하철 기관사에게 다시 한 번 고마움을 느낀다. 절대 지하철에서 자살하지 맙시다!!!!
참, 박흥식 감독은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했단다. 손태영의 대사와 연구실 이야기가 '리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