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18일) 밤 KBS 1TV 독립영화관 시간에는 ‘2015 여름특별단편선’으로 윤가은 감독의 ‘콩나물’(2013), 정한진 감독의 ‘잘 먹고 잘 사는 법’(2013), 우문기 감독의 ‘서울유람’(2012), 그리고 고형동 감독의 ‘9월이 지나면’(2013) 등 네 편의 단편이 방송되었다.
고형동 감독의 ‘9월이 지나면’은 대학교 건축과 학생들이 공모전 설계도 제출을 앞두고 벌어지는 소동을 중심으로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의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담고 있는 드라마이다. 여자주인공 역으로는 영화 ‘인간중독’, ‘간신]과 TV드라마 ‘상류사회’로 이제는 유명한 임지연이 맡았다.
건축과 학생들은 공모전에 맞춰 제각기 열심히 설계도를 그린다. 그런데 선영의 설계도가 사라진 것이다. 선영은 지연(임지연)을 의심하고, 승조(조현철)는 그런 지연을 감싸준다. 지연은 선배 승조의 집 벽에 붙어있는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사진과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러브 레터’ 포스터를 보며 선배에게 매료된 듯하다. 승조는 지연에게 안도 타다오 책을 빌려주기도 한다. 설계도가 없어져 속상한 선영은 승조에게 지연을 조심해라고 말한다. “그 애에게 친구가 없는 것은 그럴 이유가 있다”면서. 그래도 승조는 지연을 믿는다. 기타를 치면서 “9월이 지나면” 노래를 불러줄 정도로. 그런데 지연에게서 선영의 없어진 설계도가 나타나면서 긴장감은 더한다. 승조는 조용히 돌려주라고 타이른다. 지연은 밤늦게 설계도를 돌려주러 갔다가 들키고 만다. 그 상황에서도 승조는 지연을 위해 나선다.
고형동 감독은 ‘건축학개론’의 이용주 감독만큼이나 건축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다. 자신의 작품에서 배우들의 입을 통해 존경과 사랑의 말을 구구절절 쏟아내니 말이다.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건축물 중에는 제주도 섭지코지에 세워진 글라스하우스가 있다. 고형동 감독은 영화 ‘러브레터’도 좋아하는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승조가 지연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것을 정적으로 전달한다. 바로 지연이 포스터 속 나카야마 미호 장면을 따라하는 장면이다.
영화는 조용하지만 설계도를 둘러싼 범죄은닉의 긴장감과 학과 선후배 남녀 간의 아직은 표출되지 않은 밀당의 감정이 녹아있다.
‘9월이 오면’에서 조현철 배우가 부르는 노래는 그린 데이의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이다. "지금은 힘들지만, 나혼자 역경을 이겨내야할 것이다. 그런 힘든 시간이 지나고 나면, 만약 9월이 온다면 어쩜 좋아질 것이야"라는 자기암시와 기다림의 정서이다. 물론 그게 물리적인 9월이 아니어도 된다. 봄이 되었든, 제대날짜가 되었든, 이 영화의 크랭크아웃 날짜가 되었든 말이다. 유튜브에서 그린데이의 곡을 찾아 들어보시길. 지난 2013년 우리나라 무대에도 올랐던 뮤지컬 ’아메리칸 이디엇‘에도 당연히 나왔던 곡이다.
아름다운 노래와 아름다운 영화가 떠올라지는, 아름다운 여배우의 아름다운 단편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