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가을이면 - 올해는 10월 1일부터 10일까지 - 파도가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와 새하얀 모래밭, 그리고 넘치는 인파가 장관이 부산해운대 일대에서는 정말 페스티벌이라는 느낌을 안겨주는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열린다. 올해로 20회 째를 맞는 부산영화제는 이제 한국 영화인만의 잔치가 아닌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전 세계 영화인의 축제가 되었다. 20년의 세월을 쉼 없이 달려온 부산영화제는 그야말로 대마불사의 신화로 보였다. 그런데, 작년 세월호 인양을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이 상영되면서 부산영화제가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언론에 보도되기로는 ‘형식상’ 부산국제영화제의 조직위원회를 이끄는 서병수 부산시장이 딴지를 걸고 나선 것. 그리고 1회 때부터 청춘을 다 바쳐 부산국제영화제를 일군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흔들었다는 것이다. 이후 겉으로 보기에는 부산시와 부산영화제의 힘겨루기가 시작되었고 이용관 위원장은 사퇴의사까지 밝히며 조직 정상화, 아니 부산영화제의 위상유지에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그 아슬아슬하면서도 위태위태한 줄다리의 결과 공동집행위원장 체제를 선보였다. 지난 7월 6일, 부산국제영화제는 부산시청사에서 임시총회를 열고 공동집행위원장제를 승인하고 부조직위원장을 신설하는 변화를 시도했다. 이에 따라 공동집행위원장에 강수연, 부집행위원장에 이명식 전 부산영어방송 본부장이 선임되었다.
어제(6일) 오후 5시,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실 대회의실에서는 ‘사단법인’ 부산국제영화제조직위원회가 마련한 강수연 공동집행위원장과의 상견례를 겸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용관 위원장과 나란히 자리에 앉아 소회를 밝혔다. 강수연 집행위원장은 지난 한 달 동안 영화제 현안에 대한 업무파악으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강수연은 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제2의 영화인생을 시작하면서도 배우로서의 자긍심은 잊지 않았다. “제가 계획한 인생 중 배우 말고는 없었다. 영화제 집행위원장이나 다른 일은 제 머릿속에 없었다. 영화제를 통해 작가들을 발견하고 좋은 영화가 나오는 것에 보탬이 되면 배우로서도 보람될 것이고 영화배우 강수연으로서도 도움 되지 않을까라는 판단 하에 집행위원장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화제를 하다보면 상영금지된 영화나 배급, 검열, 정치 상황 등에 문제가 있는 여러 나라의 영화를 선보였었다”라고 설명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세계에서 인정받는 것은 영화를 완성도로 골랐기 때문이다. 이 방침은 변함없을 것이다. 정치나 검열, 자국의 조치에 상관없이 예술적 완성도로 영화를 선정할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미 대한민국의 영화제가 아니고 아시아 최대의 영화제다. 세계가 주목하는 영화제가 됐다. 영화제가 성향, 정치, 상업 등 어떤 편향에 치우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해 ‘다이빙벨 스캔들’이 재연될 우려는 없을까. 강수연 위원장은 “(영화를 둘러싼) 그런 상황은 앞으로 계속 있을 것이다. 영화 선정 기준에는 어떤 것도 없다. 예술적 완성도다. 그 외에 어떠한 것도 영화 선정하는데 개입되지 않을 것이다.”고 단언했다.
위원장이 둘인 것에 대해 “집행위원장이 둘이라 혼선이 있을 것으로 아는데 그런 것은 없다. 영화 프로그램은 아시아 유럽 중남미 모두 책임제로 운영한다.”면서 “집행위원장이 둘이고 셋이고는 중요하지 않다. 몸 바쳐서 일하고 있다. 영화제는 실질적으로 영화제 식구들이 만든다고 생각한다. 이들과 상의하고 힘을 실어주는 게 집행위원장의 자리다. 셋이면 더 좋지 않냐. 둘이 의미가 있겠나. 내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20년간 부산국제영화제를 그야말로 무에서 유, 그것도 찬란한 현재의 부산영화제로 우뚝 세운 이용관 위원장은 강수연 공동위원장의 합류에 대해 “천군만마를 얻었다. 당시 자포자기이 심정이 없지 않았다. 시장님하고 다시 소통을 하면서 강수연 위원장님을 말씀드리게 됐고 수락을 해줬다. 과거는 이제 다 털어버리자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강수연 위원장님과 성공적으로 영화제를 해내겠다.”고 새 출발을 다짐했다.
이 자리에서 이용관 위원장은 강수연 공동위원장과 향후 영화제 운영방안에 대해 “강수연 위원장님이 10년의 큰 그림을 그렸으면 한다. 앞으로 10년 걸릴 마스터플랜을 제시하려한다. 내년 사업계획에사 강수연 위원장님과 부위원장님이 해나가고 저는 서포트를 할 것이다.”고 밝혔다.
이용관 위원장은 1990년대 초반부터 한국에 멋진 국제영화제를 출범시키려고 노력했다. 국제영화제라는 것은 깐느나 베를린 같은 영화선진국에서나 가능한 것 아니냐는 주위의 만류와 우려 속에 열정 하나로 ‘서울’이 아닌 ‘부산’에 국제적인 영화제를 태생시킨 인물이다. 물론, 당시 그에게는 전양준 영화평론가(현재 부집행위원장), 김지석 교수(현재 수석프로그래머), 박광수 감독 등 영화에 대한 애정과 영화제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한 인재들이 있었고, 김동호라는 불세출의 문화행정전문가가 있었다. 김동호 위원장은 2010년까지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묵직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김동호 BIFF명예집행위원장은 현 정부에서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 내내 이용관 위원장은 특유의 친화력을 내보이며 현 상황이 안정화, 정상화되었음을 강조했다. 강수연 위원장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는 배우시절부터 보여준 강단 있는 모습, 부산영화제의 안정화와 최고의 영화제를 만들기 위한 결기가 넘쳐났다. 강수연 집행위원장의 임기는 2018년 7월까지다. (영화/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