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지상파에서 사라진 전설적 TV프로그램이 있다. ‘배달의 기수’라는 국방홍보영화이다. 지금은 대부분 희화적으로 이 프로그램이 거론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군과 민의 소통과 시대정신을 상징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남북 대치상황에서 전방과 후방이 따로 없다는 절박함이 묻어나는, 꽤나 진취적인 국방부 홍보영상물인 셈이다. 그런데 요즘은 국군이 등장하는 영화를 만들 때 국방부의 협찬을 받기도 어려울뿐더러, 충무로에서 먼저 손을 내미는 경우도 드물다. 몇 년 전 ‘알투비’라는 공군‘협찬’영화가 기억될 뿐. 오늘 꽤나 의미 있는 영화가 개봉된다. 김학순 감독의 ‘연평해전’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지난 2002년 6월 29일, 대한민국이 온통 월드컵 분위기에 휩싸였을 때 서해안 연평도 바다에서 벌어졌던 남북한 군사충돌의 전 과정을 담는다. 영화는 충격적인 영상기교나, 블록버스터급 CG가 없다. 담담할 정도로 조용히, 묵직하게 그날의 격전의 30분으로 관객을 몰아넣는다.
이 영화는 ‘잔재주’나 ‘불꽃놀이’가 없다. 소박하지만 관객에게 그날의 군인과, 그날의 전투를 보여주는 돌직구 스타일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아주 짧게 NLL의 역사를 소개한다. 625전쟁이 일어나고 휴전협정을 거치면서 지금의 NLL이 확립되고 지금도 연평도 앞바다에는 북과 남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이다. 그리고 광화문 광장의 가득 매운 붉은악마 응원모습과 월드컵 경기모습이 휙휙 지나가고 해군기지를 보여준다. 윤영하 대위가 새로운 정장으로 부임하고, 비슷한 시기에 의무병 박동혁 상병이 전입온다. 그리고 윤영하 대위는 20여 명의 부하장병들과 함께 참수리 고속정357호를 타고 바다에 나가 작전을 펼치고 기지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대한민국 곳곳에서는 “대~한민국”함성과 함께 월드컵 열기가 달아오르고 말이다.
당시 정부는 월드컵기간에 남북간 긴장을 최소화시키는 - 군사충돌을 적극 회피하는 - 방침을 세웠고, 북한은 그것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NLL선을 침범하며 우리 측의 반응을 떠보기를 반복한다. 영화에서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몇 가지 사실을 전해준다. 이른바 대북통신감청부대가 캐치한 북한군사동향이다. 북한이 ‘Fire!'하기로 방침을 정했지만 군 수뇌부는 여전히 교전규칙을 반복 하달할 뿐이다. 그리고는 알다시피 30여 분간의 군사충돌이 벌어진다. 결과는 참수리357호의 국군 여섯 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을 입었다. 참수리357호는 침몰했고 북한의 ’등산곶684‘는 북한으로 예인되었다.
당시의 우리군의 대응방식이 적절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분명, 당시 우리나라 전투기가 발진했고 북한의 진지에서는 포문이 활짝 열렸었다. 나중에 알려졌지만 북한의 실크웜 미사일과 스틱스 미사일의 전자파가 탐지되었단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후 교전규칙이 바뀌고 원점타격이니 3배수보복이니 하는 군사전략이 수립된다.
‘연평해전’은 그동안 국가가 감추고 싶어했거나, 언론이 책임을 방기한, 그리고 월드컵의 단꿈에 빠진 국민이 애써 외면한 그날의 희생자와 그 가족에게 조그마한 위안을 안겨준다.
2002년 6월 29일을 복기해보면 그날 저녁 8시 대구월드컵경기장에서 한국과 터키의 3-4위전 경기가 열렸다. 그날 아침부터 광화문광장에는 응원단이 모여들어 응원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 시각 서해안에서는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와 확전의 공포가 총집결해 있었던 것이다.
‘연평해전’ 영화에 대한 완성도나 드라마의 조밀도 등에 대해서는 한마디씩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의 전투로 군사전략이 바뀌고, 남북대치의 실제적 위태로움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다면 이 영화는 2015년의 진정한 배달의 기수가 아닐까. (영화/박재환)
연평해전 (2015년 6월 24일 개봉/ 12세관람가)
각본/감독: 김학순 주연: 김무열, 진구, 이현우
제공/배급: NEW 공동제공:IBK기업은행 제작: ㈜로제타시네마 홍보:영화사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