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의 경성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독특한 상상력의 소유자 이해영 감독이 내놓은 기묘한 미스터리극이다.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보여준 감독 특유의 감각은 이 폐쇄적인 요양학교라는 공간에서 더욱 짙게 묻어난다. 박보영이 연기하는 주란(시즈코)이 계모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이 학교는 숲속에 고립된 채 소녀들만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영화 초반은 탐미적이다. 녹음이 우거진 교정, 분홍빛 잠옷, 소녀들 사이의 미묘한 유대감과 질투는 마치 다리오 아르젠토의 '써스페리아'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매일 맞아야 하는 정체불명의 주사와 사라지는 소녀들, 그리고 주란에게 일어나는 신체적 변화는 극의 공기를 급격히 냉각시킨다.
감독은 1938년이라는 시대를 단순히 배경으로만 쓰지 않는다. 제국주의 일본이 조선을 병참기지화하며 인적 자원까지 수탈하던 비극을 '마루타'라는 소재와 연결한다. 놀라운 점은 후반부의 전개다. 허약했던 소녀가 강인한 힘을 얻어 복수하는 과정은 마치 '캡틴 아메리카'의 슈퍼 솔져 프로젝트를 보는 듯한 장르적 쾌감을 선사한다. 역사적 비극 위에 마블 히어로급 상상력을 덧입힌 이 파격적인 시도는 유관순이 헐크가 된 것만큼이나 강렬하다. 비록 장르의 급격한 전환이 낯설 수 있으나, 그 과감한 변주야말로 올해 한국 영화가 보여준 가장 대담한 상상력이라 할 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