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은 세계적인 기준으로 보자면 꽤나 청렴한 나라이다. 지난 2012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상영된 홍콩 렁록만/써니 럭 감독의 작품 ‘콜드 워’(寒戰)는 홍콩이 깨끗한, 아니 깨끗해진 이유를 잘 보여주고 있다. 바로 ‘염정공서’(廉政公署, ICAC)라는 공무원 감찰기관의 활약상을 극도의 스릴러 드라마로 보여주었다. 그 두 감독이 ‘콜드 워’를 준비하며 염정공서가 하는 여러 일들을 조사하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단다. 바로 홍콩에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의 위기처리 대응방식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1999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뒤, 그리고 갈수록 중국의 입김이 세어지는 상황에서 홍콩에서 초특급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어떤 식으로 처리되는지를 지켜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감독은 이런 이야기를 동아시아적 정치/군사위기 상황으로 가상하여 ‘적도’(赤道)라는 영화를 완성시켰다. 홍콩의 초특급 위기상황이란 어떤 것일까? 한국에서 건너간 메르스 대전염일까. 아니다. 북한 핵탄두와 한국 기폭장치의 홍콩반입을 가정한다. 김정은을 타깃으로 한 할리우드 액션물과는 또 다른 현실감을 안겨준다. 한번 심각하게 ‘적도’를 보자.
공공의 적 - 한반도
영화는 동시다발적 군사위기사태 발생으로 시작된다. 북한 핵관련시설에 침입한 국제테러단체가 핵무기를 탈취한다. 동시에 남한의 첨단무기시스템이 도난당한다. 핵 기폭장치이다. 그런데 탈취당한 이 두 무기가 결합하여 홍콩에 반입되었고 홍콩 땅에서 무기 암거래상가 이뤄질 것이라는 정보가 입수된다. 이번 사건의 주범은 ‘적도’(장첸)라는 코드네임을 가진 극도의 위험인물이다. 홍콩의 반테러기관(장가휘)은 서둘러 압수작전에 나선다. 핵의 위력이나 기폭장치의 작동방식에 대한 정보가 필요할 것이고 한국의 국정원요원(최시원)과 무기전문가(지진희)가 홍콩으로 급파된다. 홍콩 관계당국은 핵물리학자(장학우)에게 무기의 위험성에 대한 자문을 요청한다. 전문가는 이 무기를 잘못 다루었다가는 한순간에 홍콩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다행히 도난당한 무기는 곧바로 회수된다. 회수된 무기는 한국에 돌려져야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돌발변수가 나타난다. 중국본토에서 건너온 고위직 인사(왕학기)가 딴지를 건다. 무기는 중국이 가져가야한다는 것이다. 폭탄을 둘러싼 빼돌리기와 추격전이 홍콩시내에서 아슬아슬하게 펼쳐진다.
‘콜드 워’와 ‘핫 워’
이 영화의 감독은 ‘렁록만’과 ‘써니 럭’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다. 표준 중국어로 하자면 량러민(梁乐民)과 류젠칭(陆剑青)이다. 홍콩이 펼치는 부패와의 전쟁을 다룬 ‘콜드 워’에서도 특수한 상황을 설정하여 ‘최종결정권자’가 누구인지를 드라마틱하게 다룬다. 이 영화에서도 유사한 방식을 취한다. 홍콩 땅에 떨어진 핵무기를 둘러싸고 누가 작전의 최고책임자이며, 누가 회수의 키를 쥐었느냐는 것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한국은 대통령(여자대통령, 김해숙)까지 나서 “국가의 운명이 달린 문제”라며 요원에게 힘을 실어주었고, 중국은 정확한 정체를 알 수 없는 공안기관 최고위직 인사(왕학기)가 홍콩 공무원을 쥐락펴락한다. 그리고 두 감독은 ‘콜드 워’ 때와 마찬가지로 대반전과 함께 속편을 위한 떡밥을 충실하게 던져놓는다. 진짜 ‘적도’의 정체가 누구인지, 그리고 중국공안 최고책임자마저 어쩔 수 없는 게임의 법칙을 풀어놓는 것이다.
지진희는 국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다 총을 맞고, 한류스타 최시원은 국정원 요원 모터사이클을 타며 액션을 향연을 펼치다 산화한다. 우리 무기를 도난/탈취 당하고 홍콩 땅에서 회수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 꽤나 시사적이다.
이 영화는 보이는 것 이상의 재미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국관객에게는 주로 한국배우가 조연이라 것이 아쉽다는 평가이고, 홍콩관객은 중국의 높으신 분들이 홍콩의 운명을 논하는 것에 대해 불만이다. 중국관객은 한국이 저지른 골칫거리의 국제적 문제에 대해 파고든다. 어쩌면 이 모든 음모론은 미국 CIA의 사주로 벌어진 사태라고까지 해석한다. 어떻게 보았든 핵을 둘러싼 음모론은 백가쟁명이다. (박재환,2015.6.1.)
적도 (赤道/Helios) (2015년 5월 28일 개봉/ 15세이상 관람가)
감독: 렁록만(梁樂民),써니 럭(陸劍靑) 배우: 지진희, 최시원, 장학우, 장가휘, 여문락, 왕학기, 장첸, 윤진이, 이태란, 김해숙
수입/배급: 판씨네마㈜ 홍보:무비앤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