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KBS 1TV <<독립영화관>> 시간에는 보기에 따라 굉장히 잔인한 영화 ‘보호자’가 방송되었다. 영화 ‘보호자’는 유원상 감독의 2014년 작품이다. 평범한 가정의 초등학생 딸이 유괴되면서 그 가족이 겪는 불안과 공포를 극대화한 작품이다. 놀라운 것은 전화기 넘어 들러오는 유괴범의 요구사항이다. “딸을 무사히 돌려받고 싶으면 다른 아이를 유괴하라!”라는 것이다. 이제 자신의 딸을 되찾기 위해 아버지는 ‘옳고 그름’을 생각할 틈도 없이 극한의 선택에 내몰리게 된다.
아담한 꽃집을 운영하는 전모(김수현 분)는 아내와 딸, 아들과 함께 여느 가정처럼 행복하게 산다. 어느 날 학원에 갔어야 할 딸애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걸려오는 전화 한통. “당신 딸, 내가 데리고 있다.” 아버지는 꽃집을 하기 전에 소방대원이었고, 119로 출동하면서 많은 경우를 보아왔고 들어왔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아내에게 “돈을 요구하는 유괴범의 경우, 아이가 살아서 돌아오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 경찰에 신고하면 절대 안 돼”라고 말한다. 그리고 아빠와 유괴범의 잔인한 게임은 시작된다. 유괴범은 처음에 2천만 원을 요구했지만 목적은 그것이 아니었다. 다시 걸려온 전화 한 통. “어디어디 가서 누구를 유괴하라”라는 것이었다. 경황없는 아빠는 자신의 딸을 살리기 위해 어이없게도 그 지시를 따른다. 영화 ‘보호자’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그런 잔인한 게임을 이어간다. (스포일러 주의!!!!!!) 유괴범은 지금 똑 같은 유괴극을 동시에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 아이를 납치해서 A에게 주고, 저 아이를 납치해서 B에게 맡겨놓은 상태이다. A와 B는 자신의 아이를 유괴당한 채 , 남의 아이를 자신이 유괴한 입장이 되고만 것이다. 경찰에 신고할 엄두도 못 내고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유괴범은 더욱 잔인한 선택을 강요한다. “아이를 돌려주겠다. 대신, 아이를 돌려주고 당신이 유괴한 아이는 내가 죽이겠다.”고.
멜 깁슨의 영화 ‘랜섬’(96)은 미국 재벌의 아들이 유괴당하면서 펼쳐지는 악몽을 다루었다. 유괴범이 아들의 몸값으로 요구한 금액은 2백만 달러. 이 영화에서 아버지가 처한 상황도 최악이었다. 멜 깁슨의 선택은 아들의 몸값을 유괴범에 대한 현상금으로 내놓는다. 누구든(목격자든, 공범이든) 그 놈이 누구인지 알려만 주면 4백만 달러를 주겠노라고.
아이를 두고, 그것도 자신의 아이를 유괴당하고선, 유괴범과 전략싸움을 펼친다는 것은 애당초 이길 수 없는 게임일 것이다. 섣부른 판단이 상황을 최악으로 몰고 갈 여지가 많을테니. 그리고, 유괴당한 아이가 그런 상황에서 어떤 돌발사태를 펼칠지 모르니.
유원상 감독은 최악의 경우를 상정한 유괴극을 창조해내었다. 영화를 보면 유괴범(배성우)이 이런 어이없는 폐륜적 범죄를 펼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각자의 아이를 유괴당한 절박한 상황의 ‘A’와 ‘B’는 전직이 소방대원이었다. 아마도 이들은 각기 다른 곳에서 일할 때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것이다. 화재진압을 위해 출동했다가 불구덩이 속의 아이들을 다 구해내지 못한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유괴범의 아이가 그런 불행한 사건의 희생자였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소방관은 ‘용감한 소방대원’으로 칭송받는 것이 못마땅하였던 모양. 그래서 이런 어이없는 복수극을 펼치는 모양이다. 그런 유괴범의 사연이 얼마나 기구한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영화에선 괴물, 사이코로 묘사될 뿐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입장에서는 이런 어이없는 유괴극에서 만약의 경우에 대비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판단이 멈춰서는 순간, 그래도 믿을 것은 경찰이요, 전문가의 도움이란 것.
최근 미국에서 재미(?)있는 뉴스가 났다. 최근 미국 메릴랜드에서 벌어진 일이다. 열 살 어린이를 혼자 길거리에 내보냈다고 그 부모가 경찰에 연행되었다는 것이다. 어린애를 부모 보호 없이 학교로 걸어가게한 것이 죄란다. 부모는 아이에게 독립심을 키운다고 항변했단다. 그런 일이 논란이 될 정도로 미국사회가 위험한 모양이다. 한국사회도 점점 아이에게 위험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박재환, 2015.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