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희, 그녀의 집 화장대 거울에 얼굴을 가져다 되면 찰리 채플린이 된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개그우먼이 되는 것이 꿈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무명이다. 함께 데뷔한 동기들은 승승장구하는데, 은희는 무대 뒤에서 그저 무대 위 친구들을 바라볼 뿐이다. 개그를 소재로 한 드라마라고 해서 그저 웃긴 것만은 아니다. 노력을 해도 안되는 유전자를 가진 무명 개그우먼 은희의 한마디가 시청자들을 울리기도 한다.
지난 3일(금), KBS 드라마스페셜 시즌 1 마지막 작품 '웃기는 여자'가 방송됐다. 100분이란 시간 동안 내용이 잘 전달된 것인지, '재소환'하자는 기사도 올라왔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아직 다 전하지 못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웃기는 여자' 연출을 맡은 김형석 PD를 만났다. 김형석 PD는 KBS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 '연애결혼' 그리고 드라마스페셜 '큐피드 팩토리', '영덕 우먼스 씨름단' 등을 연출한 KBS PD다. 드라마 '연애결혼' 이후 김 PD는 배우 김지훈과 다시 호흡을 맞췄다. 그는 김지훈에 대해 "정이 가는 배우"라고 했다. 김 PD의 첫 미니시리즈에 출연한 인연, 김지훈은 대본을 보지 않고 출연 결정을 해 김 PD를 당황하게 만들었다고. 김형석 PD는 이번에 개그우먼 고은희와 판사 오정우의 사랑이야기, 또 은희가 웃기는 개그우먼이 되기 위한 과정도 그려냈다. 이번 드라마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위안'과 '행복', '위로'를 주는 '웃픈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웃기는 여자 '고릴라', 원래 이름은 고은희였다. 점집에 간 은희는 개명을 하면 일이 잘 풀릴 것이란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의 머릿 속에 깊이 박힐 이름 '고릴라'로 개명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은희가 개그우먼의 꿈을 포기했을 때 병상에 누워있는 아버지에게서 한 장의 서류를 받게 되고 그 안에는 아버지가 직접 쓴 '고릴라'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고릴라, 우스꽝스러운 동물을 말하는 것이 아닌 친근할 '닐(䁥)' 벌릴 '라(羅)'라는 한자로 '말로 사람들을 친근함으로 잘 다스린다'라는 뜻을 가진 뜻 깊은 이름이다.
여배우가 고릴라로 변신한다는 것,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문지인에 대한 질문에 김 PD는 "예쁜 배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매력있는 배우"라며 입을 열었다. 문지인은 SBS 공채 탤런트로 2009년 데뷔했다. 이번 단막극을 통해 시청자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찍었다. 김 PD 말에 의하면 단막극이 방송된 후 주변에서 문 배우에 대해 묻는 전화가 많이 왔다고. 이어 차기작을 함께 한다면 "사랑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여성 시청자들이 푹 이입될 수 있고 여성 시청층을 실어 나를 수 있는 배역"으로 캐스팅하고 싶다고 밝혔다.
Q. 고은희-> 고릴라, 왜 진짜 이름을 바꾸려고 했을까.
김 PD. "이름을 바꾸려고 했던 것은 자기 대사에도 있다. 잘난 유전자가 없기 때문에 노력을 해도 안되는 사람이다. 뭘해도 안되니까 뭐라도 해보고 싶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큰 효과가 있지는 않다고 본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하드웨어가 완벽치 않지만 뭐라도 해보고 싶은 제스쳐다. 그게 더 슬픈 것이다.
드라마의 마지막 부분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오 판사와 은희가 서로 껴안으면서 행복한 결말로 막을 내리고 바로 에필로그가 이어진다. 이 에필로그에서는 아직도 검은 쫄쫄이를 입은 은희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직까지 백숙공주의 침대 지지대를 지탱하고 있는 스텝이 아닌가라는 의심과는 달리 과거 검은 쫄쫄이를 입었던 시절을 개그로 승화시켜 관객 앞에 나선 것이다. 이 장면을 통해 은희가 릴라로 개명해 '웃기는' 개그우먼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드라마스페셜 시즌1의 마지막 작품으로 방송된 '웃기는 여자', 방송이 나가자 '재소환' 기사들이 올라왔다. 어떤 내용을 부가적으로 넣고 싶냐는 질문에 "고은희라는 개그우먼의 성장기, 주변 인물들의 성장 이야기가 있으면 깔끔한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라며 "조금 더 개그우먼으로서 성장하고 두 사람의 사랑도 예쁜 이야기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드라마에서 문지인의 개그우먼 친구로 홍윤화, 이도연이 함께 출연한다. 이 배우들의 캐스팅은 문지인이란 배우를 중심으로 조화를 잘 이룰 수 있는 캐릭터를 찾다 캐스팅됐다고. 드라마에 출연한 홍윤화와 이상준은 SBS 개그우먼, 개그맨으로 극 중 잘나가는 여자 개그우먼 그리고 은희를 괴롭히는 진상선배를 열연했다.
Q. 홍윤화-이상준, 개그맨들이다. 에피소드는 없었는지?
김 PD. 백숙공주, 의기양양 세트만 만들고 침대에서 지지하는 것만 생각하고 갔다. 실제로 두 사람이 없었으면 엄청 재미없고 힘들었을 것이다. 역시, 개그우먼, 개그맨은 다르다. 그냥 방송에서는 스쳐가는 것이지만 거기에 모션 하나만 해도 실제로 웃기더라. 대사가 없었는데 즉석에서 짜서 하는데 재미있었다.
극 초반에 은희와 달숙(홍윤화)은 아나운서 친구의 부탁으로 소개팅 자리에 참석하게 되고 연예인이 온다는 말에 남자들은 은근히 기대했지만 개그우먼이 자리에 앉자 크게 실망했다. 또, 은희와 말숙이 편의점 앞에 앉아 이야기하던 중 지나가던 두 커플이 말숙을 알아보고 외모 지적을 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김 PD는 "외모지상주의"라며 "그런 부분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웃기기는 하지만 웃픈 이야기, 항상 즐겁지만은 않은 그들의 모습들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