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금요일(3일) 밤 방송된 KBS드라마스페셜
‘당연히’ 여자가 웃기지 않다는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여자의 직업이 ‘개그우먼’이라면 곤란하다. ‘웃기는 여자’의 주인공 고은희(문지인 분)는 신인딱지를 오래 전 뗀, 6년차 개그우먼이다. 하지만 개콘 메인무대에는 서 보질 못한다. 피디의 사전 오디션(개콘제작시스템에서는 이것을 ‘숙제검사’라고 한다)에서 항상 퇴짜 맞는다. 아이디어가 신선하지 않고, 코너가 웃기기 않다는 것이다. 개그맨 동기 오달숙(홍윤화)은 ‘웃기는 외모’로 이미 코너에 올랐는데 말이다. 고은희는 용하다는 점집에서 ‘이름’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름만이라도 웃기게 짓고 싶어 한다. ‘고릴라’로. 그래서 법원에 가서 개명신청을 하지만 여기서도 퇴짜를 맞는다. 장난치냐고. 웃기지 않은 여자 고은희는 이렇게 법원에서 바른생활맨 오정우 판사(김지훈 분)와 엮이게 된다. “왜, 내가 내 운명 개척하고자 이름 바꾸겠다는데 당신이 못하게 말리냐”고. 물론 고은희도 잘 안다. 이름 바꾼다고 자기 코미디가 갑자기 웃겨진다거나, 자기의 운명이 확 바뀌지는 않으리란 것을. 하지만, 개그우먼만이 알고 있을 그 ‘웃기지 않은 사연’을 육법전서나 끼고 살았을 판사나으리가 어찌 알리오.
드라마스페셜 ‘웃기는 여자’는 로맨틱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준다. 연기경력 6~7년 째 접어든다는 문지인은 처음으로 드라마 주인공을 맡아 러블리한 매력으로 시청자를 고은희라는 캐릭터에 빠져들게 한다. 당연하지만 우리는 ‘상위 1%’, ‘오피니언 리더’, ‘톱 클래스’가 아니다. 고은희 또한 빵빵 터지는 개그맨이 아니다. 그래서 아이디어 짜고, 똑같은 처지의 친구 양양희(이도연)와 (개그맨실이 있는 KBS연구동의) 옥상에 올라 ‘학예회 프로그램’ 짜는 듯 한 개그아이디어를 짜는 것이 귀엽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다. 결정적으로 콧수염에 모자, 지팡이의 찰리 채플린 흉내를 낼 때는 짙은 삶의 페이소스까지 느끼게 한다. 웃겨야 사는 여자, 웃기는 여자가 되어야할 고은희를 통해, ‘우등반/S급’에 들지 못하는 자신의 한계에서 고민하는 청춘의 모습을 보게 된다.
유세윤이나 장동민처럼 신경세포 하나하나에 번뜩이는 개그감이 충만한 개그맨이 있는가하면 유머감보다는 운동본능이나 습득감각이 지배하는 김병만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노력과 도전이고, 당연히 좌절이 있었을 것이다. 고은희가 개콘 본방 무대에 오를 일이 영원히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준비하는 그 과정, 고뇌하는 그 순간의 아픔과 열정이 인간을 아름답게 만들고 인생을 위대하게 만들 것이다. 로맨틱 코미디답게 판사님이랑 잘 되면 그것은 인생의 보너스이거나, 드라마에나 존재하는 해피엔딩일 터이고.
‘웃기는 여자’에서도 증명되었지만 드라마스페셜의 또 하나의 매력은 짧은 드라마시간을 꽉 채우는 캐릭터의 존재감이다. 문지인의 러블리한 매력과 함께, 이도연, 홍윤화, 임도윤(아나운서 윤미라 역)의 철벽호흡, 그리고 이들과는 딴세상에 존재할 법조계 삼인방 - 김지훈, 정윤민, 손성윤-의 스마트함이 ‘웃기는 여자’를 빤짝빤짝 윤이 나게 만든다. (박재환, 2015.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