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드라마의 첫 장면에서는 면접을 보는 인범의 머리에서 검은 땀이 흐른다. 인범은 '탈모'가 콤플렉스다. 탈모만 아니었어도 지금쯤 회사원이 됐으리라 생각한다. 왜 많고 많은 소재들 중 하필이면 '탈모'였을까. 그의 첫 마디는 "많은 고민이 있었다"였다.
유 PD. "다른 걸 해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스트레스가 많았다. 이 소재를 잡고 실제로 탈모 때문에 콤플렉스를 가진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더니 불쾌해 하더라. 그래서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이것은 탈모인을 놀리자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콤플렉스 상황에서 스트레스 받는 것이 억울한 이야기를 대신 같이 하고 싶다는 의도에서 만든 건데 정작 당사자들이 불쾌해하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결국, 고민 끝에 '탈모' 주인공의 이야기가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유 PD는 "드라마이기에 고민이 더 많았다. 보는 사람들도 불쾌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내가 하고 싶은 말에 집중을 해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고 털어놓았다. 유 PD는 실제 탈모인과 인터뷰도 했었단다. “30대 탈모인과의 사전인터뷰를 하는데 처음엔 주저하더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듣고 있자니 정말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너도 울고 나도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고개를 숙였을 때 상대방이 자신의 휑한 정수리를 내려다보지 않을까라는 말이 가슴에 남았다고.
"서울 영진구의 한 상가 주변입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지폐가 눈처럼..."
하늘에서 지폐가 쏟아지는 현장에 KBS 박대기 기자가 출동했다. 진짜 뉴스가 아닌, 드라마 '머리심는 날'을 위해서였다. 박대기 기자는 눈사람 리포팅 이후 신선한 재미를 선사했다. 박대기 기자를 캐스팅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의 등장은 극 진행에 있어 별사탕 같은 존재였다. 박대기 기자의 캐스팅하게 된 계기는 주변에서 누가 무심코 "박대기 기자 해봐"라고 던진 말 덕분이었다. 유 PD는 "원래는 그냥 연기자 중에 캐스팅해서 가려고 했다. 박대기 기자도 요즘 어느 정도 진행되는 탈모로 고통받고 있어서 가발을 고민하고 있다고 하더라"고 밝혔다. 이어 박대기 기자의 매력은 노안인데 귀여운 얼굴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박대기 기자가 캐스팅 된 가장 적합한 이유는 드라마의 블랙코미디 톤의 인물로서 잘 어울렸기 때문. 이어 박대기 기자의 현장 에피소드도 전했다. 유 PD는 "현장에서는 스태프들이 배우들을 워낙 많이 보니까 누가 와도 흔들리지 않았는데, 박대기 기자가 오니 모두 몰려서 기념 사진도 찍더라"고 말했다.
드라마스페셜 기자간담회를 하면 항상 "단막극의 매력은"이란 질문이 나온다. 미니시리즈와는 달리 단막극의 매력은 참 풍부하다. 하지만 시간적 제약이 있다. 그래서 전하고 싶은 내용이 많아도 분량조절을 위해 자르고 또 자른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이 자른다. '머리심는 날' 유종선 PD에게도 이런 어려움이 있었을까.
유 PD. "내용적으로는 돈의 행방이 약간 애매하게 느껴질 수 있게 끝났다. 화원이가 인범에게 뺏은 돈까지 다 성형에 써버리고 나중에 그 돈을 아버지가 뺐겼다는 흐름이었는데, 그 흐름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야하는 부분이 조금씩 빠져서 보는 사람들이 헷갈리지 않았나 아쉬웠고 내용이 크게 빠진 부분은 없었다"
만약 시간이 더 있었다면 인범의 과거사, 연애사를 다루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인터뷰 중 밝혀진 것은 인범이를 원래는 이발사를 시키고 싶었다는 것. 그리고 둘의 연애가 시작된 갈비집에서의 장면 등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다루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무능력한 남자친구 때문에 화원은 인범에게 이별을 고한다. 그렇다면 둘은 진짜 헤어졌을까란 의문이 남기도 했다. 이 드라마의 결말을 알고 있는 유 PD는 "그냥 둘이 헤어지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며 웃음을 보였다. 이어 "만났다 헤어졌다 자기 갈길을 잘 갔으면...어렸을 때 연애는 어렸을 때 관계로 묻어두고 같이 성장하기보다는 따로 성장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마지막 장면이다. 탈모만 아니었으면 지금쯤 취업이 됐을거라 생각하는 인범은 머리를 심고 면접을 봤지만, 또 '좌절'. 조금만 얼굴에 손대면 될 것 같았던 화원은 키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면접에서 떨어졌다. 계속해서 성형을 한 화원이 키도 기준에 맞출 것 같다는 생각과는 달리 이 드라마에서는 '페이스북' 탈퇴를 한다. 이는 비교하지 말고 너의 길을 가라는 연출가의 뜻이었다.
반면 인범의 경우는 옥상에서 떨어지는 기호를 구하려다 모발이식한 부분에 다시는 머리가 자라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냥 머리를 밀어버린다. 세상이 정한 기준에 맞추지 않겠다는 뜻과도 같다. 이에 대해 유 PD는 "그 기준점을 보는 세상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게 많아서 그 세상의 비중이 자기 안에서 작아지면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 때문에 엔딩으로 잡았던 것이다"고 전했다.
"너의 탈모는 변함없이 남아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너는 모자를 쓰고 세상을 보는것이 아니라 모자를 벗고 넓은 시야에서 세상을 보게 됐으니 인범아, 너는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