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포세대’를 지나 ‘오포세대’, 나아가 ‘삶포세대’라는 말이 나올 만큼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해진 요즘, 절박한 취준생 심리를 드라마틱하게 잡아낸 드라마가 방송되었다. 지난 금요일 KBS‘드라마스페셜’ 시간을 통해 방송된 ‘머리심는 날’(연출 유종선, 극본 백은경)이다.
두 평 남짓한 서울의 고시원에서 기거하며 여기저기 입사원서를 넣고 있는 인범(최태환)은 번번이 면접에서 떨어지는 이유를 실력보다는 외모, 특히 대머리초기증세의 탈모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어떻게든 머리를 심는 수술이라도 받아야할 것 같다. 여자친구 화원(하은설)의 형편도 엇비슷하다. 친구는 항공사 스튜어디스로 2년 전에 이미 입사성공했다. 화원은 아무리 봐도 제가 꿀릴 것은 없는데. 있다면 얼굴에 손을 조금, 아주 조금 의느님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인범과 화원은 그런 실질적인 이유로 목돈이 필요하다. 어려운 취준생들이 연애를 지속하기란 쉽지가 않다. 인범과 화원처럼. “어디서 돈벼락이라도 떨어지지 않나”라고 생각할 때 정말 하늘에서 5만원 지폐가 눈처럼 쏟아져 내린다. 이럴 수가!. 주위의 사람들은 정신없이 흩날리는 지폐를 주워담는다. 인범과 화원도 예외없이! 두 사람은 허둥지둥 모텔로 직행해서는 각자 얼마인지 세어본다. 저 돈마저 나에게 주어진다면.. 수술받을 수 있는데. 그런데 그렇다고 말을 못한다. 갑자기 맞은 돈벼락과, 갑자기 사라진 돈의 행방을 쫓으면서 비밀스런, 그리고 우스꽝스런 현실이 드러난다. 돈에 웃고 돈에 우는 서민, 취직을 위해 목숨 거는 청년의 비굴함과 초조함이 시청자의 공감을 이끈다.
KBS드라마스페셜 단막극답게 이야기는 깔끔하게 진행되고 배우들의 연기는 진솔하다. 인범과 화원의 연기에서는 취준생의 생활력이 묻어난다. 극중에서 꼴이 정말 우스운 화원의 아버지 이한위의 코믹한 연기와 나머지 두어 번 얼굴 비치는 조역진의 코믹함도 드라마의 재미를 더한다.
인범과 화원이 자신의 ‘외모’에 좌절할 때, 돈벼락 소동의 또 다른 한 축인 기호(장성범)의 사연도 처량하다. 어깨를 다쳐 더 이상 운동을 할 수 없게 된 운동선수이다. 기호의 선택은 또 다른 동정심을 유발한다. 넘치는 포기 시대의 극단적 선택이 전혀 없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머리심는 날’은 희망의 날이지만 외부에서 이식한 머리카락이 제대로 착근되기 전까지는, 한 올 한 올 희망이 빠지기 시작하는 날이 될 수도 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힘든 과정을 이겨나가야지. 인범이 돈벼락을 맞아 머리숱이 풍성해지고, 화원이 로또라도 당첨되어 얼굴이 김태희가 된다고 해서, 그리고 기호에게 아이언맨 슈트라도 생긴다고 취직이 잘 될까.
소시민의 꿈처럼 돈벼락이 떨어지고, 머리를 심고, 취직이 되고, 연애도 제대로 하고, 단막극대신 100회 대하드라마도 펑펑 찍을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언제나 찾아오려나. 힘들기는 다들 똑 같은 셈이다. 이 작품이 오포세대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고,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청년 인범과 그의 친구들이 어려운 현실에 맞닥쳤을 때, 내려놓고 낮추고 거울을 통해 자신의 희망찬 출발점을 발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머리심는 날’은 청춘의 비애와 2015년 대한민국의 서글픈 현실이 60분 동안 압축적으로 펼쳐진 한 편의 잘 만들어진 블랙코미디다.
참, 이 드라마에는 언젠가 눈 오는 날 눈사람이 된 KBS 박대기 기자가 특별출연한다. 마지막에 흘러나오는 음악은 ‘9와 숫자들’이 부른 “유예”라는 곡이다. (박재환 2015.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