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3/17) 밤 12시 30분, KBS 1TV <<독립영화관>>시간에는 가슴이 오싹해지는 스릴러 영화 한편이 방송된다. 지난 2008년 독립영화 ‘낮술’로 평단의 호평을 받았던 노영석 감독이 다시 한 번 제작/감독/각본/음악 등 혼자 재주를 다 부린 스릴러 ‘조난자들’이다. 이 영화에는 TV드라마 ‘미생’에서 얄미운 하 대리 역으로 얼굴이 알려진 전석호가 주인공으로 출연한다. ‘조난자들’은 한겨울, 눈 덮인 강원도 어느 산장(펜션)에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찾아온 한 남자가, 고립된 곳에서 전혀 반갑지 않은 인간들을 차례로 만나면서 펼쳐지는 불쾌하고, 불안하며, 위험한 하룻밤 이야기가 펼쳐진다. 상영시간 99분 내내 단 1초도 그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흡입력이 대단한 영화이다.
상진(전석호)은 영화사 대표가 알려준 강원도 산골의 펜션을 가기 위해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동네 청년 학수(오태경)가 필요이상으로 친절을 베풀며 펜션의 위치와 겨울상황을 일러준다. 그리고 “혼자 있으면 심심할 테니 찾아갈 것이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남자, “엊그저께 깜빵에서 나왔어.”고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하지 않은가. 겨우 찾아간 산장. 핸드폰은 잘 터지지 않고, 펜션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엽총을 든 사냥꾼의 품새가 수상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근처 스키장에 왔다는 무례하기 이를 데 없는 젊은이 넷(남자3, 여자1)이 다짜고짜 하룻밤 묵게 방을 내달라고 한다. 상진, 불안하다. 여기 오는 길에 라디오에서는 뜬금없이 “한미연합훈련 키리졸브가 시작되면서 북한은 핵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행위라며 서울과 워싱턴까지 불바다로 만들 것이라고 협박하고 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었다.
불안한 펜션의 밤은 깊어만 가고, 상진은 누군가 칼에 찔러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기겁한다. 게다가 허둥대며 뛰어든 방에서 여자로부터 치한소리를 들으며 학수에게 얻어맞고 손과 발이 묶이게 된다. 누가 살인을 저질렀는지 모르는 상황에 ‘강간미수범 상진’을 잡기 위해 경찰이 도착한다. 그런데 이 경찰, 이상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시체는 늘어만 나고, 누가 범인인지 오리무중이다. 상진은 불안을 넘어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된다.
폭력미학 샘 페킨파 감독의 ‘지푸라기 개(Straw Dogs,1971)’를 보면, 조용한 수학자 더스틴 호프먼이 관능적인 아내와 한적한 고향마을로 이사 온다. 그런데 우호적이지 않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고, 결국은 자위적 차원의 전쟁을 펼친다. 이 영화의 2011년 리메이크 작품을 보면 수학자는 시나리오 작가로 설정이 바뀐다. ‘조난자들’도 어느 순간까지는 ‘스트로우 독스’를 본뜨는 듯하다. 폭력과는 거리가 먼, ‘서울 순남’이 전과자와 엽총, 불량배들 틈새에 내던져져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되고 살기 위해 별 수를 다 써야하는 형국이다. 물론, ‘조난자들’은 이 남자가 ‘순남’이긴 하지만 나중에 ‘람보’가 되지는 않는다. 감독은 이 남자를 둘러싸고 미지의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느끼는 공포심을 증폭시킨다. 그리고 ‘호러영화의 정석’에 맞춰 ‘짜증나는 여자’를 추가한다. 실제 유미 역의 한은선은 나오는 장면마다 전석호뿐만 아니라 보는 사람의 신경을 긁는다.
노영석 감독은 ‘나홀로여행’, ‘낯선 사람’, ‘고립된 산장’, ‘원치 않은 친절’, ‘오해’ 등 익숙한 공포물의 장치에 뜻밖에 ‘북한 위협’이라는 정말로 기발한 설정을 추가했다. 노영석 감독은 전작 ‘낮술’을 천만 원에 만들었단다. 이 작품은 CJ E&M의 신인 감독 육성 프로그램인 버터플라이 프로젝트의 지원을 받아 독립영화로서는 드물게 ‘물경 3억 원’의 거금으로 영화를 완성했다. 전석호는 ‘미생’으로 뜨기 전에 연극무대에서 주로 활동했고,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는 오태경은 오래 전 ‘올드보이’에서 최민식의 아역을 연기했던 배우이다. 미스터리의 정점인 경찰로 등장한 인물은 최무성이다. 노영석 감독의 차기작품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