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 왕이 되지 못한 남자
1608년, 광해군이 드디어 왕위에 오르다. 그러나 그는 재위 15년 만에 그는 천륜을 어긴 폐주(廢主)로 조선시대 내내 비난과 외면의 대상이 된다. 그가 어긴 천륜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오늘(6일) 밤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광해군의 폐위의 원인이 되었던 굵직한 사건들을 통해 진짜 광해군의 모습을 찾아나선다. 쫓겨난 왕 광해군에 오늘날 대중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왕이었지만 끝내 왕으로 남지 못한 남자, 광해군은 어떤 왕이었고 엇갈린 평가의 진실은 무엇인지 파헤쳐본다.
■ 나라가 망하더라도 파병해야 한다?
1618년 명나라는 후금과의 전쟁을 치르는데 있어 조선에 원병을 요구한다. 이에 조정 신료들은 '재조지은'을 강조하며 나라가 망하더라도 파병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반면 광해군은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사실상 파병에 반대한다. 사대교린을 기본 외교방침으로 삼고 있던 조선에서, 조선의 군주였던 광해군이 명나라 파병을 반대한 이유는 무엇일까? 반면 조선의 운명보다 파병이 먼저라고 외쳤던 당시 조선 신료들의 발언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 심하전투 '밀지'의 진실?
광해군의 예견대로 조명연합군은 패배하고 살아남은 조선군은 후금에 항복하고 포로가 된다. 그렇다면 이제 조선의 신료들은 광해군의 의견을 따랐을까? 흥미롭게도 광해군은 조명연합군과 후금이 맞붙었던 '심하전투' 패배 이후 오히려 궁지에 몰린다. 이유인즉슨, 광해군이 후금에 항복하고 화친하라는 밀지를 사전에 조선군 도원수 강홍립에게 보냈다는 것! 광해군이 보냈다는 밀지는 과연 사실인 걸까? 명나라를 거부할 수도, 후금의 위협을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조선의 왕, 광해군은 무엇을 선택하려 했던 것일까? 본 편에서는 당시 조선, 명나라, 후금의 실제 군사력을 객관적으로 분석해보고 '심하전투 밀지 사건'을 통해 광해군이 펼친 '외교정책'의 실체를 파헤쳐본다.
■ 광해군, 대동법을 반대하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가짜 왕 '하선'은 신하들의 반대를 무릎쓰고 대동법을 실시한다. 방납의 폐단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된 대동법으로 인해 광해군은 애민군주, 개혁군주로 대중들에게 각인된다. 그렇다면 영화 속 광해의 모습은 사실일까?
하지만 기록에 따르면 광해군은 대동법 확대를 반대했다고 한다. 영화 속 광해와 역사 속 광해의 두 얼굴! 과연 광해군은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
■ 잔인한 폭군, 광해군?
광해군 5년, 역모사건이 터지면서 9살 난 이복동생 영창대군이 교동에 유배된다. 그리고 얼마 후 방안에 갇힌 채 증살된 영창대군. 영창대군의 죽음에 광해군은 슬퍼하지만 정작 정확한 사건조사는 이뤄지지 않는다. 역모사건에 있어서는 200여 차례가 넘게 친국을 주도했던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인 광해군. 이후 어머니 인목대비마저 서궁에 유폐되는데! 영창대군의 죽음과 인목대비 유폐는 훗날 외교문제와 더불어 광해군 폐위에 주요 원인이 된다. 영민하고 사려 깊은 세자였던 광해군, 왕이 된 후 잔인한 행보를 보인 까닭은 무엇일까? 광해군일기에 적힌 광해군의 모습은 모두 사실인 걸까? '폐모살제'와 광해군. 사건의 진실과 더불어 여기에 숨겨진 광해군의 심리를 분석해본다.
왕이 되었지만 왕으로 남지 못한 광해군, 폐위의 원인이 되었던 굵직한 사건들을 통해 진짜 광해군의 모습을 찾아나서는 KBS 1TV '역사저널 그날'은 오늘(토) 밤 9시 40분에 방송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