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6시부터 내 삶이 시작된다"
'천재 해커', '더 지니어스 시즌2', '프로그래머', '콩두컴퍼니 창립자' 등 이두희를 수식하는 여러 단어 중에서도 그는 자신을 '직장인'이라고 소개했다. 그냥 직장인이라기에는 좀 많이 유명한 직장인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작년 겨울(13.12.7~14.2.22), tvN '더 지니어스 시즌2'에 출연하면서 화려한 조명을 받았던 이두희는 현재, 처음으로 입사한 회사에서 '이래도 될 정도로 편해도 되는지' 걱정하며 안정된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KBS 2014 IT콘서트 'IT는 재미있(it)다', 온게임넷 '예스게임톡' 등 전문 분야와 관련된 다양한 강연과 '더 지니어스 시즌2'에 이어 또 한 번 EBS '두뇌게임-천재들의 전쟁이야기'에 도전한 이두희는 머리 쓰는 일을 기꺼이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조금 많이 유명한 직장인, 이두희와의 즐거웠던 인터뷰를 공개한다.
Q.방송 출연 후 젊은 층들에게 많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알려지게 되면서 변한 점은?
한참 더 지니어스 시즌2 열풍일 때에는 젊은 친구들이 많이 알아봤다. 깜짝 놀랐다. (Q.불편하지는 않았나?) 불편하지는 않다. 나는 항상 다니던 패스트푸드점이었는데 방송에 나간 후에는 사진 요청을 많이 받는다. 사실 요즘은 일찍 집에 가도 할 일이 없어서 자발적 야근을 자주 한다. 혼자 집 앞 패스트푸드점에서 먹고 있으면 SNS로 멘션이 온다. '맛있게 드세요' 하고.
Q.대학 시절 전과를 희망했다고 들었다.
그 당시에는 경영대가 멋있어 보여서 전과하고 싶었다. 지금은 내 전공에 만족한다.
Q.프로그래머로써, 학교의 학생으로써 학교에 많은 유산을 남기고 온 것 같다. 스누이브* 같은 것. 예전에 운영하던 서비스들을 아직도 운영되고 있나?
안 그래도 프로그램 유지보수를 잘하지 못해서 혼나고 있다. 항의 메일도 온다. 사실 약간 힘들다. 그래도 성격이 남한테 일을 주지 못해서 다 끌어안고 간다. 내가 짠 코드고 내가 시작한 서비스라서 내가 안고 가려고 한다.
*스누이브(SNUEV) : 서울대 강의 평가 홈페이지, 스누이브가 서비스된 이후 다른 학교에서도 '교수 강의 평가'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Q.지금은 방송, 강연 등 대외적인 활동으로 자주 접하지만 원래 하는 일은 프로그래머다. 사실 인터뷰 요청했을 때 직장인이라고 하셔서 좀 웃었다. 이렇게 유명한 직장인은 드물다. 매체에서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는지.
매체에 나오는 내 모습이 살짝 과장된 게 있다. 다들 나를 해커로 알고 있지만 사실 내 직업이 해커는 아니다. 실제로 직업이 화이트 해커라든지, 언더그라운드 해커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그 정도의 레벨은 아니고, 그냥 취미로 만들 거 없는 날 해킹을 하는 정도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해킹은 실제와 다른 게 많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해커를) 좋게 봐주시는 분들도 있지만, 해커는 불법을 저지를 수 있는 칼을 쥐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안 좋은 인식이 있는 분들도 있다. 그래서 요즘 내 직업은 프로그래머라고 주장하고 있다.
Q.이윤지의 어마어마한 팬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윤지의 결혼 소식을 들었을 때 심경은 어쨌는지.
맞다. 이윤지 씨의 어마어마한 팬이다. 얼마 전에 결혼 소식을 접했다. 친구 전화를 받고 있다가 (결혼) 기사를 접했다. 전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1분 동안 굳어 있었다. 전화하는 친구가 "왜 그래"했는데 "끊어봐 이따 전화할게"하고 끊었다. '치과의사가 되어야 하나?' 생각했다. 아이돌 좋아하는 친구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예전에 이윤지 씨 소속사 컴퓨터가 고장 난 적이 있어서 휴가 쓰고 컴퓨터를 고쳐준 적이 있는데 '내가 왜 그랬지?' 생각했다. 순수한 호의에 이윤지 씨 사진 선물로 받고 정말 좋아했는데… 결혼… 진심으로 축하드리지만…, 진심으로 가슴이 아프다.
Q.'더 지니어스 시즌3'가 슬슬 시작되고 있다. 시즌2에 시즌1 참가자들이 출연했던 것처럼 시즌3에도 시즌2 참가자들이 나올 확률이 높다고 생각되는데, 시즌3에 게스트로 참가한다면 어떤 플레이를 하고 싶은지.
출연 섭외가 안 왔다. 대신 얼마 전에 EBS 두뇌게임이라는 프로그램을 촬영했다. 아직 방영은 되지 않았다. 어떻게 편집이 되어 나갈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에서 정말 머리를 썼다. 처음에 연합을 몇 번 주장했다가 PD님이 "여기서 연합은 없다"고 하셨다. 개인 대 개인으로 머리 싸움을 했다. 개인적으로 머리를 쓰는 게 재미있었다. 져도 억울하게 진 게 아니라 머리를 못 써서 진 거라 인정할 수 있었다. 더 지니어스 시즌3에 나가게 된다면 머리를 쓰고 싶다.
Q.'더 지니어스 시즌2'를 통해 많은 인연을 만났다. 그중에서도 특히 홍진호와의 인연이 쭈욱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포털사이트 연관 검색어에도 홍진호의 이름이 꼭 붙어있다. 원래부터 '콩까', '콩빠'였는지.
진호형을 팬으로서 좋아하지 않았다. 인간적으로서는 진호형을 좋아하지만, 팬으로서는 임요환 팬이었다. 3연벙 사태 때는 너무 즐거웠다. 홍진호를 개인적으로 만나고 난 후에는 인간적으로 그렇게 훌륭할 수가 없다. 나도 주변사람을 잘 챙긴다고 생각했는데, 홍진호는 사람을 정말 잘 챙긴다. 나도 처음 겪는 사람인데, 문제의 소지가 생길 싹을 아예 만들지 않는 사람이다. 인간적으로 진짜 많이 배우고 싶은 사람이다.
Q.디아블로를 하다가 재수를 했다고 알고 있다. 요즘도 게임을 하는지.
요즘은 LOL에 빠졌다. 탑 포지션에 가고 있다. 할 줄 아는 게 탑 캐릭터 '쉬바나' 밖에 없다. 롤은 죽으면 욕먹더라. 욕 안 먹으려면 안 죽는 캐릭터가 필요했는데 쉬바나는 잘 안 죽었다. 5명이 때려도 쉬바나는 죽지 않더라. 다리 다쳤을 때 쉬면서 열심히 레벨을 올렸는데,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새벽에 한두 판씩 하고 있다.
Q.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는지.
게임으로 스트레스를 풀지 않는다. 오히려 스트레스가 쌓이지. 대신 자동차 운전 서킷을 간다. 영암. 인제는 최근에 열었고. 자동차 서킷은 게임을 현실로 하는 느낌이다. 내 차를 가지고 시속 200km로 달려도 불법이 아니다. 서킷에서는 그렇게 달리면 박수를 받는다.
Q.홍진호와 함께 게이머 매니지먼트 ‘콩두 컴퍼니’를 설립한 취지는?
프로게이머들을 굉장히 좋아했다. 서경종도 좋아했다. 축구를 했던 프로선수들은 30살 이후에 할 수 있는 게 많은데 이스포츠는 그런 게 없었다. 프로게이머들이 30살이 되어도 먹고 살 수 있는 일을 만들어 주자. 그래서 콩두 컴퍼니를 시작했다.
Q.'콩두 컴퍼니' 소속 게이머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나.
개인방송을 하고 있다. '콩두 컴퍼니'는 개인방송을 잘할 수 있도록 스폰서를 붙여주고 있다. 스타 방송할 때에는 어플 광고를 붙이거나 해서 도움이 될 수 있게 한다. (Q.이를 테면 해외 프로게이머들이 하는 트위치* 같은?) 그렇다. 해외에서 하는 트위치 같은 시스템을 도입하고 싶다.
*트위치(Twitch TV):해외 프로게이머들이 게임 방송을 하는 스트리밍(streaming) 서비스. 구독(subscribe)과 기부(donate)를 통해 수익을 올린다.
Q.사실 많은 게임 팬들은 스타 파이널 포로 시작한 ‘콩두 스타즈 파티’ 다음 시즌은 언제쯤인지 제일 궁금할 것 같다.
8월 17일. 중국에서 할 예정이다. 사실 콩두 스타즈 창업을 같이 하긴 했지만, 지금은 콩두 일을 많이 돕지는 못하고 있다. 8월 초쯤에는 일손이 모자랄 것 같아서 내가 많이 도울 것 같다.
Q.'콩두 컴퍼니'에 소속된 게이머들만 보면 다들 이름이 쟁쟁하다. 그들이 모이는 것만 해도 e스포츠계에서 이슈가 될 것 같은데, 구상하고 있는 새로운 콘텐츠가 있는지.
지금은 중국대표와 한국대표가 국가전처럼 게임을 하는 그림을 구상하고 있다. 그다음 대회도 그런 스토리를 만들어갈 것이다. 이번엔 김택용이 나갈 예정이다.
Q.OGN '예스게임톡'이나 KBS 'T타임' 미니 강연 등 강연을 할 기회가 많이 생기고 있다. 주로 어떤 얘기를 하나?
사실 강연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루어 놓은 업적이 없다. 난 일개 직장인일 뿐이다. 지니어스 한참 나가고 강연요청이 많이 들어왔는데, 나는 실제로 할 수 있는 말이 없어서 요청을 다 거절했다. 업계에선 "내가 이만큼 했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대중적으로는 말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해봤자 싸이월드 방문자 추적기 정도? 사람들이 은근 많이 사용했더라. 멋있는 거 말고 이상한 걸 만들었다. 요즘은 강연 오라고 하면 "나는 이렇게 살았다" 이렇게 얘기한다. T타임에서도 나는 이렇게 살았다고 얘기했다. 생각보다 컴퓨터를 어려워하는데 막상 부딪혀보니까 그렇지 않더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Q.그 강연을 봤다. 컴퓨터 정말 어렵다. 블루스크린이 떴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블루스크린만 보면 모든 의욕이 사라진다.
그냥 윈도우를 쓰지 않으면 된다. 나는 윈도우 안 쓴 지 11년 정도 된 것 같다. 맥만 쓴다. 맥OS가 프로그램을 개발할 때 도구들이 편하다. 윈도우는 프로그램을 깔다 보면 충돌이 나는데, 맥은 기본적으로 프로그램 개발 가능한 상태로 셋팅되어 출시된다. 굉장히 좋다.
Q.해커, 프로그래머, 방송, 강연 중 자신에게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강연은 내 얘기를 했을 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강연만 나가고 싶다. 나는 프로그래머로서 개발하는 게 제일 재밌다. 어제는 오랜만에 새벽 2시까지 코딩을 했다. 정말 재미있었다. 내가 쓴 코드가 동작할 때 희열을 느낀다.
Q.서울대 빌게이츠의 강연 일화나 지금까지 이두희가 만들었던 프로그램(스누이브, 멋쟁이사자처럼, 자소설)도 그렇고 문제를 제기하는 일에 거침이 없는 것 같다.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껄끄럽다거나 두렵진 않은지.
요즘엔 껄끄럽다. 예전에는 굉장히 까칠했다. 한창때는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직언을 많이 했다. 그때는 학생이라는 보호막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 같다. 학교 나오니까 몸을 사리게 됐다. 그 성향이 극단적으로 치달았던 게 스누이브였다. 교수의 권위에 도전하는 걸 아예 IT 프로그램을 만들어 판을 만들었다. 그때는 "교수는 평가되어야 한다"라는 말을 많이 했다. 미친 거다. 스누이브 덕분에 다른 학교들에서도 교수 평가가 도입되었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런 모습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서울대 나왔으면 그냥 기득권에 묻어가면 되는데, 왜 굳이 반 기득권이 되려고 하냐고 하고, 심지어 자퇴도 하고.
Q.서울대를 자퇴한 게 아쉽지는 않은지.
전혀 아쉽지 않다. 학교를 자퇴한 건 후회하지 않는다. 배울 것 다 배우고 쓸 것 다 썼고. 그 어떤 박사과정 학생보다 많은 것을 했다고 생각한다. 단지 학위가 없을 뿐이지. 그 학위를 따기 위해서 1년 반~2년을 소비하는 게 내 인생에서 너무 아까웠다.
Q.언제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 같다. 아직 도전하지 않은 것 중에 해보고 싶은 게 있는지.
지금 프로그래밍 교육을 하고 있다. 아예 프로그래밍 지식이 없는 비전공자들을 대상으로 3달간 교육해서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는 수준으로 가르치고 있다. 2013년에는 30명 정도, 지금은 16개 대학교에서 140명 정도 뽑아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멋쟁이 사자처럼'이라는 동아리인데 이름을 너무 막 지었다. 사실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 1기 때는 1명, 지금은 10명 정도 포기했지만, 대부분 사람이 잘 따라오고 있다. 사실 컴퓨터 학원 같이 차리자는 오퍼도 많이 오고 있는데 거절하고 있다. 온라인화해볼까 생각 중이다.
Q.굉장히 바쁘게 사는 것 같다.
바쁘다. 회사에서 나인투식스 하고 있고, 6시 이후부터 내 삶이 시작된다. 콩두 돕고, 프로그래밍 교육도 하고, 밤에 게임도 한 판 한다. 한 판 하고 아쉬우니까 두 판하고, 1대 1 되면 아쉬워서 한 판 더 하고. 게임은 프로게이머 친구들이나 업계 사람들이랑 같이 한다. 다 실력이 비슷비슷하다. 다 못한다. 서경종도 롤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나보다 못한다. 그런데 확실히 프로게이머라서 배우는 게 진짜 빠르다. 내가 석 달에 걸쳐 배웠던 걸 일주일 만에 마스터 했다. 굉장히 빨리 습득한다. 아직은 내가 잘하는데 곧 따라잡힐 것 같다.
Q.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이두희에게 홍진호란?
왜 홍진호랑 계속 묶는지 모르겠다. (웃음) 진호형은 배울 게 진짜 많은 형이다. 사실 많이 배우고 있다. 9월에 'EBS 두뇌게임' 방송이 나가면 알겠지만 내 인간관계 문제 해결 능력이 하위 4%였다. 진호형은 (인간관계 문제 해결을) 진짜 잘한다. 주변 사람들이 전부 칭찬한다. 그런 걸 많이 배우려고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