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아님! 장률 감독의 '경주' 제작보고회
친한 형의 장례식 소식에 오랜만에 한국을 찾은 북경대 교수 최현(박해일)은 문득 7년 전 형과 함께 갔던 경주의 찻집이 생각났다. 그 찻집에서 형과 함께 봤던 춘화 한 장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 춘화가 있던 찻집을 찾은 최현은 아름다운 찻집 주인 윤희(신민아)를 만나게 된다. 대뜸 "춘화 못 봤냐?" 묻고는 뜻하지 않게 변태로 오인받는다. 찻집을 나선 최현은 과거의 애인 여정(윤진서)을 불러 경주로 오게 한다. 반가워하는 최현과는 달리 내내 불안해하던 여정은 곧 돌아가 버린다. 다시 찻집을 찾아온 최현을 지켜보던 윤희는 차츰 호기심을 느끼게 되고, 윤희의 저녁 계모임 술자리까지 함께하게 된 최현과 윤희 사이에 기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한다.
내달 개봉하는 박해일, 신민아 주연의 영화 '경주'의 줄거리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영락없는 홍상수 스타일 같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영화는 '망종',''이리','두만강' 등 '경계인의 아픈 이야기'를 장인의 솜씨로 풀어나가던 연변조선족 출신 장률 감독의 신작이다. 어제 바로 이 영화의 제작보고회가 서울 자양동 롯데시네마 건대점에서 열렸다. 장률 감독으로서는 제작보고회까지 할 만큼 대중 앞으로 한걸음 더 성큼 다가온 셈이다.
방송인 김태훈의 깔끔한 사회로 진행된 이날 제작보고회에는 장률 감독과 박해일, 신민아가 참석하여 영화 '경주'에 대한 호기심을 키웠다. 기존의 장률 감독 작품과는 확연히 차이가 날 것 같으면서도 무언가 특별한 비밀이 꽁꽁 숨겨져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날 제작보고회는 7년 전 춘화를 찾아 경주로 떠난 ‘최현’(박해일)의 1박 2일 영상과 장률 감독이 직접 전하는 캐릭터 영상들이 공개되었고 이어 영화 속 경주의 몇몇 장소들을 두고 토크쇼가 진행되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나는 '찻집 아리솔’이라는 키워드에 대해 신민아는 “경주 도시 자체가 묘한 매력을 가진 곳이다. 경주에 머무르면서 윤희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기존에 보여준 이미지가 밝고 건강했기 때문에 자칫 장소와 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경주에 머무르는 것 자체로 동화되었다.”고 말한다.
‘키친(2009)’ 이후 5년만에 영화에 출연하게 된 신민아는 “고민이 많았다. 다른 방식으로 일해보고 싶고 관객들에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이 작품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률 감독님의 ‘두만강’을 보고 음악도 전혀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관객들에게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감독님과 작업하면 어떨까 궁금했다. 시나리오 보고 어렵고 모호했던 부분을 알고 싶었고 감독님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장률 감독은 “오래 전 관광차 경주에 들렀을 때 찻집 ‘아리솔’에 가서 우연히 춘화를 보게 되었다. 그때의 인상이 크게 남았었다.”라며 영화 <경주>의 제작 배경을 밝혔다.
최현의 엉뚱한 모습을 유쾌하게 풀어낸 박해일은 “작품마다 감독님의 모습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데, 장률 감독님만의 것이 있겠다 싶어서 여러 패턴으로 연기했다. 감독님이 그 부분을 잘 잡아내신 것 같다.”라고 말했다.
박해일, 신민아는 영화 <10억> 이후 5년 만에 한 작품에서 재회했다. 박해일은 “신민아씨에게 여배우로서 성숙해가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답변했고, 신민아는 “박해일씨는 항상 진심이 다가오는 배우라고 생각한다”라고 대답해 서로에 대한 신뢰감을 표시했다.
영화의 내용과 일부 공개된 영상들을 통해서 전작과는 확연히 달라진 것 같다는 질문이 계속되자 장 감독은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에 나왔던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대사가 문득 생각난다. 하지만 나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경주'와 이전 작품과 다른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전 작품도 상업영화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홍상수 스타일에 대한 질문에는 "나도 홍상수 감독 영화 좋아한다. 이 영화를 다 보시면 어떤 답이 나오지 않겠는가. 사람에겐 이런 면이 있고 저런 면이 있잖은가. 이전 작품이 진지했다면 이번 작품은 엉뚱한 면을 많이 보여줬다. 실제 나를 아는 사람은 나를 엉뚱한 사람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장률 감독은 "경계인만 찍는다는 이미지를 지우고 더 많은 관객과 소통하고 싶다.”며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 영화가 공개되기 전까지는 이 작품의 진위(?)와 깊이(!)를 예단하기는 힘들 것 같다.
이날 토크쇼를 통해 노래방 장면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냈다. 김태훈, 신소율, 백현진, 그리고 영화감독 류승완이 등장하여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고 소개했다.
7년 전 춘화를 찾는 수상한 남자 '최현'(박해일)과 기품 있는 외모와 달리 엉뚱한 여자 '공윤희'(신민아)의 설레는 만남을 그린 영화 <경주>는 오는 6월 12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