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 해 동안 극장을 찾은 관객은 모두 2억 명이란다. 극장가는 유례없는 활황세를 이어가지만 영화저널은 침체내지 거의 사망단계이다. 영화평론가나 영화기자의 글은 마치 고고학자의 발굴보고서만큼이나 그들만의 소견이거나 이해할 수 없는 미문으로만 치부되고 있다. 그런 영화저널(매체)의 암흑기 속에서 영화주간지 '씨네21'은 꿋꿋하게 영화 팬들의 곁을 지키고 있다. 지난 주 ‘씨네21’ 창간 19주년 기념호가 나왔다. 창간 19주년 커버스토리는 <<씨네21과 함께한 한국영화 데뷔작 베스트19: 1995~2013>>라는 기사였다. 한 해만 더 기다렸다가 내년 20주년 특집기획기사로 활용했으면 더 좋았을 아이템 같기도 하다. ‘씨네21’은 필진과 기자 30인에게 설문을 돌려 매해 1위의 작품과 2순위, 두 작품을 선정하게 하였고 그 결과 지난 19년간 매년 최고의 베스트 데뷔작을 선정한 것이다.
‘씨네21’이 창간되던 1995년 그해 최고의 데뷔작으로는 이민용 감독의 《개같은 날의 오후》가 뽑혔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하유미를 돕기 위해 아파트 주민들(전부 여자!)이 그녀의 남편과 몸싸움을 벌이다 졸지에 살인현행범이 되고 경찰이 출동하자 이들 아녀자들은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 농성을 계속하는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페미니즘 사고고발’ 드라마였다. 그리고 그 다음해 1996년에는 놀라운 감독 데뷔작이 선정되었다. 지금은 발표하는 작품마다 해외영화제에 먼저 출품되고, 인정받는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다. 물론, 이 영화는 지금의 홍상수 영화와 크게 구별되지는 않는 그만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홍상수 영화'의 시발점이다. 1996년 홍상수에 밀려 두 번째 놀라운 데뷔작으로 선정된 작품은 김기덕 감독의 《악어》이다. 한강에 투신자살한 사람을 건져 유가족에게 몸값 흥정을 하는 '괴물'같은 남자로 조재현이 출연했던 영화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1997년 최고의 감독데뷔작은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이다. 막 제대하여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사건'에 꼬이는 한석규의 풋풋한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아있는, 그리고 송강호가 날건달도 잠깐 출연하는 문예작의 최고봉이었다.
그 뒤를 이어, 《8월의 크리스마스》(허진호), 《해피엔드》(정지우),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류승완), 《소름》(윤종찬), 《YMCA야구단》(김현석), 《지구를 지켜라》(장준환), 《범죄의 재구성》(최동훈), 《용서받지 못한 자》(윤종빈), 《천하장사 마돈나》(이해영,이해준), 《은하해방전선》(윤성호), 《추격자》(나홍진), 《똥파리》(양익준), 《김복남살인사건의 전말》(장철수), 《무산일기》(박정범), 《로맨스 조》(이광국), 그리고 작년 최고의 데뷔작품은 김병서, 조의석 감독의 《감시자들》이 매년 최고의 데뷔영화로 선정되었다. 작년 2위의 데뷔작은 양우석 감독의 《변호인》이다.
지난 19년동안 폭발하는 성장세를 보여준 충무로의 힘을 느끼게 해 주는 리스트라 아니할 수 없다. 지금도 열심히 작품 활동을 하는 감독이 있고, ‘소포모어 징크스’로 주춤해져버린 감독들도 있다. 그들의 다음 작품은 더욱 찬란한 영화가 되기를 영화팬을 기대한다. 대한민국 대표 영화주간지로서의 명맥을 유지하는 씨네21의 의미 있는 기획기사였다.
참, ‘씨네21’ 창간호는 1995년 5월 2일자로 발행되었다. 그때 이 주간지는 2천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