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멘토링’이나 ‘기능재부’란 말이 곧잘 언론에 등장한다. 어떤 한 영역에서 확고한 자리를 잡은, 정신적 지주로 삼을 사람이 있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고, 사회의 건강한 선구조 모습일 것이다. KBS아나운서 가운데 이런 사회적 재능기부 활동에 적극 나서는 사람이 있다. 정용실 아나운서이다. 정용실 아나운서는 1991년, KBS 18기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하여 올해로 방송생활 23년째를 맞은 중견 아나운서이다. 요즘도 일요일 오전, 1TV에서 방송되는 ‘한국 한국인’이라는 품격높은 대담 프로그램과 매일 저녁 1라디오의 ‘생방송 글로벌 대한민국’의 진행을 맡고 있다. 정 아나운서는 지난 달 《혼자 공부해서 아나운서 되기》 라는 책을 펴냈다. 책 제목으로만 보자면 ‘공영방송아나운서’ 합격의 비책이라도 담긴 입시지침서 같다. 과연 그럴까. 그 비법을 들어볼 요량으로 정용실 아나운서를 만나보았다.
아나운서가 마지막 꿈은 아니잖아요
“아나운서 되기에 초점을 맞춘 책은 아닙니다.” 정용실 아나운서는 우선 자신의 책에 대해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이 책은 정 아나운서가 KBS 입사 이후 겪었던 많은 시행착오와 지난 23년 동안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와 인연을 통해 품었던 어떤 생각을 전해주고 싶었단다. 좀 더 사람 냄새나는 방송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었고 혹시라도 방송을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나침판이 될 만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정 아나운서에게는 이번 책이 첫 번째 책은 아니다. 이미 《서른, 진실하게 아름답게》, 《도시에서 행복하게 사는 법》(공저) 두 권의 책을 낸 작가이다.
정용실 아나운서가 이번에 《혼자 공부해서 아나운서 되기》 책을 낸 것은 그동안 맡아온 프로그램과 조금은 관련이 있다. 정 아나운서는 입사 이후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주부, 세상을 말하자’ ‘소비자 고발’ 등을 진행했다. 특히 ‘주부, 세상을 말하자’를 맡으면서 여성문제에 천착하기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으로 ‘미래의 여성지도자상’을 수상했고 여성가족부가 진행한 여성멘토링 프로그램의 대표 멘토로 나서게 되었다. ‘얼굴마담’이나 ‘이름 알리기’의 한 수단에 머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한 두 번하고 그만둘 줄 알았겠죠. 그런데 난 그게 재미있었고,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하여 꾸준히 진행했어요. 지금도!” 정 아나운서는 여성가족부와 모교(연세대 신방과)의 멘토링을 수년 째 이어오고 있다. 무언가 닮고 싶은, 롤 모델이 되는 사람 ‘선배 아나운서’로서 정 아나운서는 기꺼이, 즐거이, 소명감을 갖고 이 일을 해오고 있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뭐가 가장 필요한지 알겠더라. 그것을 한편으로는 정리하고. 내가 방송현장에 있을 때 전해줘야 할 것 같았어요.”
《혼자 공부해서 아나운서 되기》는 꼭 ‘아나운서 되기’를 위한 책은 아니다. 물론, 책의 많은 부분은 23년 아나운서 경력의 소유자가 펼치는 좋은 아나운서, 좋은 방송 아나운싱에 대한 노하우가 담겨있다. 그런데, 실제 정 아나운서가 전달하고 싶어한 것은 책의 전반부에 서술한 열정과 노력에 대한 고민이다.
정 아나운서는 최근 시내 대형서점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한 여대생을 만났다. 이 학생은 정 아나운서의 신간을 들고 있었다. “여태까지 진로적성에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구체적이고 도움을 되는 책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단다.
정 아나운서는 아나운서를 지망하든, 무엇이 되려고 하든 ‘희망의 3지망’을 적어보라고 권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희망의 문이 단 하나뿐인 것이 아니란 것을 인생 선배는 잘 알기에 내린 결론이다. 그래서 정용실 아나운서는 청소년이 어떻게 꿈을 꾸고, 어떻게 인생이라는 거대한 바다를 헤쳐 나갈 것인지에 대한 실제적인 도움의 말을 전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필사의 탐독
책 이야기로 자연스레 넘어갔다. 정 아나운서의 집 거실은 이미 다른 언론매체에 몇 차례 소개되었을 만큼 책이 많고, 책 읽는 분위기가 된 곳이다. “책을 진짜 좋아한다. 이번 달에만 벌써 7권 읽었다.” (인터뷰는 지난 2월 12일 진행했었다) 정 아나운서는 지난 2011년 《즐거운 책읽기》 프로를 잠깐 진행했었다. 정 아나운서가 그 프로그램을 맡기 전부터, 입사 이후 다양한 프로그램을 맡으면서 책에 빠져들었다. “책을 많이 읽으면 인생이 바뀐다. 책을 열심히 읽는다. 17년째다.”라며 웃는다.
정 아나운서는 말, 언어에 대한 관심이 높다. 좋은 표현. 멋진 표현으로 시청자를 감동시키고 싶어 한다. 그리고 남의 말을 잘 듣고 잘 전달해 주고 싶은 욕심이 끝이 없다. 우리말에 대한 욕심, 아름다운 표현에 대한 욕심이 넘쳐난다. “그걸 방송에서 다 못해서 글로 썼어요.”고 말한다.
책을 많이 읽고, 방송 준비를 열심히 하고, 시간 나는 대로 청소년 멘토링을 하고. “항상 책을 쓸 만발의 준비를 하고 있어요.” 정 아나운서는 이미 다음 번 책을 구상하고 있단다. 방송에 관한 것일 수도 있고 사랑과 여성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단다. 왜 책에 몰입할까. “책을 쓰는 것이 인생을 정리하는 것이래요. 그리고 글쓰기가 사랑하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하네요. 오직 한 대상에 빠지니. 다른 생각을 안 하니깐. 엔돌핀도 나오고 몰입하면 희열이 생긴다. 행복해지는.” 정 아나운서는 방송에 몰입하는 그 순간만큼 글을 쓰면서 어떤 충만감을 느낀단다.
내게 멘토가 되는 사람
정용실 아나운서는 지금 진행하고 있는 《한국 한국인》의 전 진행자였던 선배 아나운서 ‘김동건 위원’을 존경한다. “그분에게 방송을 많이 배웠죠.”
정 아나운서가 바라는 아나운서상은 따뜻한 인간미가 느껴지는 진행자이다. “내 안에는 따뜻함이 있다. 인간에 대한 애정. 연민이 많다. 인터뷰 프로그램에서 저의 진가를 보여줄 수 있다. 사람의 속에 있는 이야기를 끌어내는 재주가 있다.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사람이 하나같이 ‘방송이 아니고 너랑 이야기하고 가는 것처럼 편안했다’고 말한다. 때로는 ‘내가 오늘 이런 이야기까지 할 줄은 몰랐다’며 기뻐한다. 사람을 제대로 인터뷰하는 것은 어렵다. 지금도 노력중이다.”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정 아나운서는 방송 전에 많은 준비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 만나기 전에 한 뭉치의 자료를 미리 읽고 준비한다. 자료를 충분히 보고, 이미 혼자 충분히 울고, 그 사람을 만난다. 그 사람의 속에 숨어있는 속 깊은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이다. 최근 출연한 이어령 교수 편을 보면 정용실 아나운서의 재주를 실감하게 된다.
최근 KBS신입사원 공채가 있었다. KBS아나운서에 대해 물어보았다. “KBS아나운서의 역할은 다른 방송사와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BBC가 영어를 대표하듯, KBS가 한국어를 담당해야한다. 해외에서도 우리 방송을 들으면서 ‘코리언’은 KBS를 들어야만 정확하다고 느꼈으면 좋겠어요.” 정 아나운서는 미국에서 있을 때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인 NPR을 들으며 감탄했단다. “NPR 아나운서의 말은 받아쓰기만 해도 하나의 완결된 문장이에요. 그런 완전한 문장을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글을 쓰는 연습, 언어훈련을 합니다. 발음, 표현, 문법적인 완성도 등등.”
인터뷰 말미에 쓸데없는 질문을 해보았다. 정용실 아나운서의 부군은 KBS 한창록 피디이다. 서로의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하거나 멘토 역할을 해주는가 물어보았다. “가능한 노터치! 좋게 조언하는 것은 도움을 주지만 자칫하면 선을 넘어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 있다고 봐요.”라고 방송 23년 프로다운 답변을 한다. “그 사람의 방송관이 있고, 나의 방송관이 다를 수도 있어요.”라며 “남편은 시사적이고 난 사람에 관심이 많아요.”라고 덧붙였다. 한창록 피디는 ‘KBS스페셜’, ‘생방송 시사투나잇’, ‘생방송 세계는 지금’ 같은 프로그램을 맡았었다. (박재환, 2014.3.7.)
[사진 KBS홍보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