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김태형 감독의 [제8일의 밤]은 불교와 퇴마의식, 인간의 원죄와 종교적 구원을 다룬 야심적 오컬트풍의 작품이다. 석가모니에 의해 봉인되었던 요괴가 되살아나 7개의 징검다리를 건너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려고 한다. ‘요괴’를 볼 수 있는, 그리고 그를 다룰 수 있는 특별한 사람이 퇴마의식에 나선다. 그런데 사바세계의 백팔번뇌를 짧은 시간에 우겨넣다보니 한계에 봉착한 모양이다. 감독에게 직접 ‘제8일의 밤’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지난 주 진행된 화상인터뷰를 통해서이다.
▷ 요괴를 쫓는 퇴마의 이야기를 하며 불교 소재를 동원했다. 이런 이야기를 처음에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는지.
▶김태형 감독: “원래 이야기는 나의 특이한 경험에서 시작되었다. 오래 전 잠이 들려고 하는데 내 뒤의 방 모습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두 눈으로 보지 않았지만 마치 뒤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어떤 이야기를 할까 메시지를 담을까 고민하다가 불교철학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많은 생각을 하였고 그에 맞춰 이야기를 진행하게 된 것이다.”
▷ 요괴의 두 눈이나, 일곱 개의 징검다리를 건넌다는 것 같은 이야기는 어떻게 구상했나.
▶김태형 감독: “상상의 소산물이다. 제작발표회에서 말한 불교경전 [금강경]에는 어떤 요괴도 나오지 않는다. 석가모니가 대중에게 설법을 하는 것이다. 그때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좋은 말씀을 하는데 요괴 하나가 훼방을 놓지 않을까. 그런 요괴 이미지를 착안하여 이야기를 발전시킨 것이다. 오프닝 이야기는 그런 식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 [제8일의 밤]이 감독 데뷔작이다. 시나리오 작업을 언제부터 한 것인가. 그리고 영화를 직접 감독하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는지.
▶김태형 감독: “원래 연출부 생활을 하다가 중간에 영화를 그만두고 기획 쪽 일을 좀 했었다. 그 와중에 소재를 찾았다. 이야기를 다듬고 초고를 만들고 각색하는데 6년이 걸렸다. 호흡이 긴 이야기이다. 영화를 위해 2시간으로 압축하느라 시간이 더 걸렸다. 런닝 타임이 더 길었더라면 긴 호흡의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되었을 것 같다. 진수(이성민)를 통해 이야기를 맞춰 방향을 정하다보니 이런 작품이 나왔다. 영화기획자를 꿈을 키우다가 마흔 넘어 뭔가 해봐야지 하는 포부가 있어 이번에 연출을 한 것이다. 지금은 마흔 둘이다.”
▷ 드라마로 만들 생각을 했었나?
▶김태형 감독: “제가 원래 하던 게 영화였다. 소설을 보더라도 대하소설을 좋아한다. 인물이 많이 나오고, 사연이 많은. 헤어지더라도 언젠가 다시 만나는 그런 내용. 영화라는 것은 2시간 내에 이야기의 흐름을 맞춰야한다. 드라마로 (길게) 만들었으면 충분히 납득이 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 불교적 이야기를 테마로 담게 된 계기는
▶김태형 감독: “시나리오를 준비하며 공부를 좀 했다. 서양철학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 니체, 빅터 프랭클 같은 철학자의 메시지에 주의했다. 인간은 고통에서 어떻게 벗어나는가. 그 방법이란 게 불교의 모습으로 봤을 때 부처의 설법과 통한다. 금강경의 요체이기도 너무 허무하다. 대체적으로 마지막에 그 의미를 찾아간다. 그게 핵심적인 포인트가 아닐까. 괴로움에서 벗어나서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전하고 싶었다. 요괴를 그린 이유도 그러하다. 어찌 보면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비유적인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 빅터 프랭클?
▶김태형 감독: “빅터 프랭클(Viktor Emil Frankl)은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이다. 로고테라피 학파를 창시한 사람이다. 마음 속 고통 자체를 치료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삶을 살아가는 의미를 찾아야한다는 것이 요체이다. 과거든 미래를, 나를 괴롭힌 모든 것을 극복해 내야한다고 말하고 싶다.”
▷ 이성민 배우와 이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는지.
▶김태형 감독: “과학 안에서 요괴가 보이느냐 안 보이느냐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이성민 배우가 말한 것과 맞닿은 지점이 있다. 영화로 만났을 때 작품 이야기는 거의 안했다. 그렇게 1년 정도를 기다려주셨다. 이성민 배우가 대단한 것이 그 사이에 캐릭터를 위해 그런 지점을 많이 파고든 것 같았다. 감사드린다.”
▷ 시나리오를 쓸 때 누구를 캐스팅할지 염두에 뒀는지.
▶김태형 감독: “물론 처음에는 이성민 선배다 하고 진행한 것은 아니다. 난 인물들의 그림, 초상을 그려놓고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이 역할은 누가 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한동안 떠오르지 않았다. 그럴 때 이성민 배우가 시나리오에 관심이 있다고 하더라. 지금 사용되는 그 포스터 이미지, 내가 처음 구상할 때 그려놓은 것과 유사하다. 아마 이성민 선배인 것 같다.”
▷ 애란을 비롯해 극 중 모든 인물들이 말을 별로 하지 않는다. 어떤 의미인지.
▶김태형 감독: “불교 교리에 깨달음을 얻기 위한 팔정도(八正道)가 있다.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고 참을 줄 알아야한다. 애란의 경우는 인물 자체가 신비롭고 누군가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애란으로선 나머지 인물과 소통자체가 필요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대사가 없다. 물론 영화는 영상예술이라고 배운 사람이어서 최대한 대사를 아낀 것이 있다.”
▷ 김유정 배우를 특별히 그 역할로 캐스팅한 이유가 있는지.
▶김태형 감독: “정말로 놀라웠다. 시나리오에서 애란이 비중은 정말 적었다. 하지만 중요한 역할이다. 어느 배우가 이 역할을 하게 될까 고민이 많았다. 그럴 때 김유정 배우가 시나리오를 받았고 미팅을 요청했다. 난 처음에는 동명이인의 다른 사람이 오는 줄 알았다. 시나리오에 대해 완벽한 해석을 한 상태였다. 어려운 역할인데 말이다. 비중이 작은데 괜찮냐고 물어봤고, 그 역할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었다. 비중은 작지만 연출적으로 더 힘을 주고 싶었다. 이게 흑백영화라면 김유정의 모습은 채도를 더 올려서 연출을 하고 싶었다. 인생의 화양연화가 상당히 짧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 주요 등장인물들이 과거의 문제, 결함 등으로 연이 닿아 있다. 박해준(김호태 역)과 김동영(동진 역)의 이야기도 그러한 것 같다.
▶김태형 감독: “처음 생각한 영화는 긴 호흡을 가졌다. 호태에게 더 판타지한 이야기가 있다. 그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 그리고 그렇게 죽을 수밖에 없는 지점이 있다. 그게 제대로 설명이 안 된 것 같아 아쉽다. 작품에서 동진이 그렇게 망가지는 것이 누구 잘못이든 간에 더 고민을 하고 싶었다. 한 인물에게 힘을 주다보니 편집할 때 삭제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 연결된 세 개의 인물 이야기가 있다. 진수(이성민)와 청석(남다름), 김 교수(최진호)와 애란(김유정), 그리고 호태(박해준)와 동진(김동영)이다. 세대간의 이야기를 한다고 할 수도 있다. 어른이 아이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아이들이 손을 잡고 가야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 결말의 메시지에 대해서는 만족하는지.
▶김태형 감독: “만족한다. 거꾸로 된 화면이 조금씩 뒤집어진다. 상황을 돌려놓고 싶은 것이다.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카메라가 조금씩 위로 올라가며 인물을 잡는다. 영혼이 떨어지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뒤집어보면 영혼이 올라가는 것이다. 진수의 상황에서 깨달음을 얻는 표현이다. 그런 표현방식에서 감응을 받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표현방식에 만족한다.”
▷ 요괴 같은 초월적인 존재가 있다고 믿는지. 인간이 그들을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지.
▶김태형 감독: “하하. 그 질문은 나홍진 감독님께 해야 할 것 같다. 난 이 영화에서 형이상학적 이야기를 눈에 보이는 형이하학적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초월적 존재는 있다. 그걸 누가 만드냐면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그 요괴란 것도 이겨낼 수 있다. 화해하면 된다. 그럼 요괴는 사라질 것이다. 우릴 위해(危害)하진 않을 것이다. 공존할 뿐. “
▷ [제8일의 밤]으로 힘든 데뷔를 거쳤다. 소회가 있다면,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계속 하고 싶은지.
▶김태형 감독: “상업영화 감독을 하려면 그에 맞는 덕목을 가져야한다. 자본을 투자해 주신 분들에게 손해를 입히면 안 될 것이다. 그분들에게 이익을 남겨줘야 하는 것이 가장 큰 덕목일 것이다. 그리고 관객들에게는 재미를 선사해야한다고 배웠다. 그렇게 생각한다. 이번 영화가 관객에게 즐겁게 해 주었는지는 모르겠다. 호불호가 갈린 것 같다. 만약 좋지 않게 보신 분이 있다면 그들에게 내가 빚을 진 셈이다. 그분들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은 것이니. 다음 작품의 장르가 어떨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확실하게 재미를 드려야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오컬트 무비 '제8일의 밤'으로 힘겨운 상업영화 데뷔전을 치른 김태형 감독은 관객과 한걸음 더 다가가는 고민을 하겠다고 덧붙이며 이날 인터뷰를 마쳤다. [제8일의 밤]은 지난 7월 2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