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성민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화 ‘제8일의 밤’(감독:김태형)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초 개봉된 ‘미스터 주: 사라진 VIP’이후 오랜만의 스크린 복귀작이다. 이 영화는 2019년 촬영을 끝내고 작년 극장에서 개봉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 여파로 개봉이 지연되다가 지난 2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다.
영화 ‘제8일의 밤’은 오래 전 부처에 의해 봉인된 요괴의 ‘붉은 눈’과 ‘검은 눈’이 봉인을 풀고 합쳐지는 지옥도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퇴마사’ 이성민의 활약이 담겨있다. 이성민은 사연을 가진 전직 스님(선화스님)이고, 지금은 공사판에서 노동을 하며 숨어사는 인물(진수)이다. 그에게 크나큰 과업이 던져진 셈이다. 그의 업보(카르마)인지 모른다.
● 퇴마하는 전직 스님, 이성민의 업보
▷ 시나리오를 읽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진수 캐릭터에 대해 어떻게 파악했나.
▶이성민: “관객들이 이야기를 이해하고 잘 따라올 수 있을까 생각한 지점이 있었다. 진수는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 구천을 떠도는 많은 영혼들을 천도((薦度, 죽은 이의 명복을 빌고 재를 올려 정토로 가게 하는 법식)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자신이 누구보다도 큰 고민과 번뇌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이다. 그게 이율배반적이라 여기고 일을 그만두고 끊임없이 그것을 털어내기 위해 살고 있는 사람이다. 말이 없고, 변변찮게 기거하지 못하는 사람. 수도승 같다.”
▷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진 이야기인가. 이야기의 어떤 점에 매료되었나.
▶이성민: “우리가 보고 느끼는 세상이란 게 보이는 이것이 전부일까. 우연히 유튜브에서 물리학강의를 보았다. 양자역학 이야기도 있었다. 우주만물을 구성하는 것이 원자 단위일 것이다. 우리와 다른 시야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 세상의 다른 차원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랑 다른 눈을 가진 사람이든지 생물이든지 외계인이든지 말이다. 그런 호기심을 가지고 있을 때 이 영화를 만났고, 영화를 하게 되었다. 종교나 신념과 상관없이 어떤 깨달을 보다는 공감을 하게 되었다. 삶이란 게 풀숲에 난 풀잎의 싹일 뿐이다. 찰라 같은. 그래서 고뇌하고 살지 말라는 가르침 같다.”
▷ 넷플릭스로 공개되면서 그 동안 극장 개봉 때와는 또 다른 피드백을 받았을 것 같은데.
▶이성민: “우선 다른 나라에서 이 작품을 같이 본다니 놀랍다. 영화가 개봉되면 인터뷰를 갖고, 수치로 나타난 관객 수치를 보고, 리뷰를 보면서 자기의 작품을 체감하게 되는데, 넷플릭스의 경우는 그런 것이 없어 실감이 되지 않는다. 새로운 경험이다. 그게 안타깝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하다.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든다. 배우들은 흥행이나 리뷰로 상처받기도 하니 말이다.”
▷ 영화에선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이나 요괴와 싸운다.
▶이성민: “시나리오에서 하는 이야기가 관객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요괴라든가, 특별한 인지 능력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이다. 그런 특별한 사람의 눈에는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를 상상하며 연기를 했다.”
▷ <미스터 주>에서도 CG가 많았다. 일반 연기와 다른 점이 있었다면?
▶이성민: “이번 작품에는 CG가 많았다. [미스터 주]를 할 때는 ‘이건 곰이다’, ‘이건 호랑이다’하며 상상하며 연기할 수 있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두고 연기를 펼쳐야 해서 힘들었다. 감독님이 예상한 그림이나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인지 모르니, 그런 지점이 힘들었다.”
▷ 이 영화는 언제 찍은 것인가. 시나리오를 보고 배우가 판단한 진수/선화의 고뇌는 어떤 것이었나.
▶이성민: “2019년. 이 작품하고 영화 [리멤버](개봉 미정)를 찍은 것 같다. 진수의 고뇌는 그의 가족이 누군가에게 희생당한 아픔이 있다. 마음속의 고통이 심할 것이다. 진수는 자신의 가족을 죽음으로 몬 상대의 아이(청석)를 같은 식으로 없애려고 했던 적이 있다. 진수로서는 헤어날 수 없는 아픔이고 고통이다. 진수가 운명적으로 그에게 주어진 능력을 마주한다. 생을 마감하고도 이승에 미련을 두고 구천을 떠도는 영혼을 천도해 주는 것이 그의 직업이었다. 그런 고통이 좀 더 극명하게 묘사된 인물로 이해한다.”
▷ 배우는 상상이나 관찰을 많이 하는 직업일 것 같다. 이성민의 연기자상은 어떤 것인가.
▶이성민: “대학로에 있는 CGV극장에 가면 배우들이 한마디씩 한 현판이 있다. 그때 내가 쓴 글이 있다. ‘배우는 무쇠를 가슴으로 녹일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 사람’이라고 썼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배우의 기본적인 태도이다.”
▷ 기이한 살인사건을 쫓는 형사 박해준과 동자승 청석으로 출연한 남다름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
▶이성민: “박해준씨와는 같은 극단에서 연기를 했었다. 드라마 [미생] 때 다시 만났다. 극단에서 활동하던 때와 달리 카메라 앞에서 만나는 게 낯설게 느껴졌었다. 연극과 달리 TV나 영화는 특별해서 그런가 보다. 이번 작품으로 다시 해준이를 만났을 때는 편했다. 연극할 때는 멋있는 캐릭터를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양복 입는 그런 캐릭터를 해본 적이 없으니.”
“남다름은 드라마 ‘기억’(tvN 2016년)에서 아들로 나왔었다. 그때 사춘기 때라 고민이 많아서 고민 상담을 많이 해줬었다. 이번 작품에서 남다름이 성인 연기자로 도약할 수 있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어 기뻤다. 앞으로 멋진 배우가 되기를 기대한다.”
▷블루스크린(크로마키) 촬영이 어떠했는지. 특별히 기억에 남는 액션이 있는지.
▶이성민: “이번 영화는 블루스크린은 많이 안했다. 거의 실사로 촬영을 했었다. CG작업은 따로 했고. 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제 주위를 맴도는 장면이 힘들었다. 완벽하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연기를 한다는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다. 체력적으로 힘든 연기이다.”
▷차기 작품은? 코로나 사태에서 촬영이 힘들 것 같다.
▶이성민: “작업을 끝낸 작품이 아직 몇 편 있다. 코로나로 개봉이 계속 밀리고 밀리고 해서 안타깝다. 그 와중에 이 작품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니 다행스럽기도 하다. 쉼 없이 농사를 지었고, 창고에는 수확물이 쌓였는데 이런 상황이 펼쳐지니 부담도 된다. 잠시 속도를 늦추고 있다. 가을에 드라마를 할 것 같다.”
이성민이 출연한 영화 중 개봉 대기 중인 작품은 [기적], [리멤버], [대외비:권력의 탄생], [핸섬가이즈] 등이 있고, 준비 중인 작품으로 촉법소년을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에서 김혜수, 이정은과 공연할 예정이다.
▷ 코로나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진 세상이다. 화상으로 인터뷰를 한 소감은.
▶이성민: “영화배우들에게는 정해진 틀이 있다. 개봉을 앞두고 제작보고회하고, 기자들 만나고, 시사회 갖고 인터뷰한다. 이런 게 힘들면서도 설레기도 한다. 이렇게 (화상으로 만나) 인터뷰를 하는 게 당황스럽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나 싶다. 다음에 개봉할 때는 직접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영화가 좋을 때는 기쁘게, 영화가 좀 아쉬울 때는 눈도 좀 마주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이렇게 하니 질문도 굉장히 딱딱하다. (모니터로 질문을) 글로 읽으니 답변도 제대로 안 되는 것 같고 말이다. 안타깝다. 재밌는 이야기 많이 할 수 있었는데. [8일의 밤] 많이 관심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영화 ‘제8일의 밤’은 ‘불교 오컬트’라는 신선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영화 ‘검은 사제들’(2015년), ‘사바하’(2019년), ‘곡성’(2016년)을 잇는 퇴마의 현장을 보고 싶다면 이성민이 열연을 펼치는 ‘제8일의 밤’을 보시길. 넷플릭스 7월 2일 공개, 15세관람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