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감독들의 꿈이 태양을 움직이는 것이다. 이제 그것이 된다. 시간, 장소, 날씨 등 모든 것을 제어할 수 있다."
팬데믹 상황에서도 지구 반대편의 풍경을 국내에서도, 그것도 마치 눈앞에 보이는 실제 상황처럼 찍을 수 있다면 앞으로의 영상 제작업계는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까. 버추얼 프로덕션 기술은 과거에는 실현 불가능하다 여겼던 디지털 세계의 구현을 가능하게 했으며 영상 제작업계의 새 패러다임을 열었다.
지난 24일 하남시에 개관된 아시아 최대 규모 버추얼 스튜디오 ‘브이에이 스튜디오 하남(VA STUDIO HANAM)’은 국내 최대 LED월(Wall)을 보유한 총 11,265㎡ 규모의 아시아 최대 버추얼 스튜디오다. 국내 최초로 규모별 총 3개의 버추얼 스튜디오 갖춰 영화, 드라마, 광고, XR 공연, 라이브 커머스 등 다양한 메타버스 콘텐츠 기획, 제작에 특화된 맞춤형 제작 환경을 제공한다.
브이에이코퍼레이션과 함께 버추얼 프로덕션 기술을 발전시켜나갈 장성호는 ‘공동경비구역 JSA’(2000), ‘해운대’(2009), ‘늑대소년’(2012) 등 뼈 굵은 작품의 시각 효과를 담당한 인물이자 국내 VFX 1세대로 불리며 시각 효과 업계의 개척자로 알려져 있다. 인터뷰로 만나본 그는 자신 있는 태도로 국내의 VFX 기술이 성장해온 길을 설명하고 앞으로 제작 환경 또한 달라질 수 있는 희망찬 미래 또한 언급했다.
Q. 코로나 사태 이후 세상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버추얼 프로덕션 기술은 영상 제작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 기술인 것 같다. 본인의 생각은 어떠한가?
팬데믹 상황 속에서 해외 로케이션이 불가능하고,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대규모 인력이 움직이고 촬영 동선을 확보하는 것을 허가받는 것이 앞으로 더 힘들어질 것이다. 그런 문제들이 버추얼 프로덕션을 통해서 해결되는 것이다.
Q. 버추얼 프로덕션 스튜디오는 LED 월에 실시간으로 렌더링한 3D 공간을 투영한 배우와 배경을 동시에 촬영할 수 있는 최첨단 스튜디오다. 기존에 결과물을 알 수 없이 그린 스크린 앞에서 연기하는 것에 고통을 호소하는 배우들이 많았는데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미지 상상력이 뛰어나고 감정을 잘 끌어내는 배우들도 힘들어한다. 버추얼 프로덕션은 현장에서 창작의 주체들이 결과물을 직접 확인하고 최종본을 바로 볼 수 있게 한다. 후반 작업이 없어진다는 의미고 근본적인 변화다. 그래서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다. 잠깐 유행하는 트렌드가 아니라 완전히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변하는 것처럼 혁명적인 변화다.
Q. 후반 작업을 진행하는 비용도 그렇고, 작품을 제작하는 시간과 비용 또한 감축될 것 같다.
아직 작품을 제작한 사례가 안 나온 상태지만, 수십 년의 영화 경험에서 오는 경험치를 바탕으로 영화 ‘승리호’ 같은 시나리오를 분석해서 시뮬레이션을 해봤을 때 37퍼센트 정도의 절감 효과가 있었다. 효과를 깨달아가면서 활용도와 방식이 발전할 것이다.
Q.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국내 시각 효과 업체들은 도전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에 관해 1세대로서 감회가 새로울 것 같은데 어떠한가?
아무것도 없던 시절이 있었다.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재밌었지만 고되게 일했다. 어느 시점부터 상향 평준화가 됐고 소프트웨어도 빨리 발전됐으며 국내 아티스트들의 수준도 상승했다. 반면에 큰 도전이 없어진 상황이기도 하다. 우리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이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다. 차별점을 꼽는다면 우리는 하드웨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퍼레이션도 할 수 있는 인하우스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감사하게도 김우형 촬영 감독 같은 훌륭하신 분이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해주셨고 발전 속도가 빨라진 것 같다.
Q. 우리나라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시기다. 활발하게 제작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기술들이 적극적으로 활용되면 함께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BTS 전곡을 다 들어봤고 뮤직비디오도 다 봤는데 그냥 취향 차이라고 할 순 없다. 명백히 퍼포먼스부터 모든 것이 완성도가 높다. 우리가 이제 콘텐츠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빌보드에서 BTS가 활약하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 영화와 배우들이 상을 받는다. 지금 우리에게 현실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기술적인 면에서도 이렇게 빨리 선도적으로 무언가를 해내고 있다는 것은 자부심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Q. 할리우드의 기술을 따라가는 예전에 비해 오히려 지금은 할리우드를 선도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전에는 할리우드에 4,5년 뒤쳐져있었다. 몇 년 후에나 상용화될 수 있어서 그 기술을 받아서 쓰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었는데 이 기술은 할리우드와 동시간대로 함께 쓸 수도 있다. 우리는 더 이상 할리우드의 뒷통수를 바라보고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