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광수! 아버지가 ‘김’씨이고 어머니가 ‘조’씨일 것이다. 영화제작사 ‘청년필름’에서 ‘와니와 준하’(01), ‘올드 미스 다이어리-극장판’(06)과 ‘조선명탐정’시리즈 등을 만든 영화제작자이며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12), ’원나잇온리‘(14) 등 색깔이 분명한 작품을 직접 감독하기도 했다. 그리고 동성과 결혼식을 올린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퀴어로맨스 [메이드 인 루프탑]으로 돌아왔다. 제작과 더불어 감독까지 맡았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연쇄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 줌(ZOOM)으로 연결되었다. 식당에서 맛있는 곤드레밥을 먹었단다.
[메이드 인 루프탑]은 그동안 그가 직접 감독한 영화들 중 가장 밝고, 젊어졌다. ‘하늘’(이홍내)은 3년 동안 사귀던 남친에게 헤어지자고 말했다가 그만 진짜 헤어지게 생겼다. 별수 없이 BJ로 별풍선을 끌어 모으는 ‘이 동네’ 인싸 친구 봉식(정휘)의 옥탑방(루프탑)에 얹혀살게 된다. 이제부터 청춘게이들의 일상을 보게 된다. 그들도 똑같다. 웃고, 울고, 청춘을 고민한다.
▷ 오랜만에 직접 감독으로 돌아왔다.
▶김조광수: “어릴 때부터 감독이 꿈이었다. 연극영화과(한양대)에 가서는 선후배들과 몰려다니며 함께 단편을 찍었다. 제작자가 되어보니 아쉬운 게 많았다. 영화를 찍기 시작할 때 ‘A’라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감독이 ‘A-(대시)‘ 정도만 만들어도 좋을 텐데 ’B'가 되고, ‘C'가 될 때가 있더라. 물론 ’A'보다 더 좋을 때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온전한 작품을 만들려면 직접 감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도 고민하다가 직접 나서게 되었다. 감독은 꾸준히 해야 한다. 물론 ‘A'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A-‘ 정도는 되지 않을까. 연출이란 것은 자기를 갉아먹는 일이다. 힘들지만 내가 이 일을 정말 좋아한다는 것을 현장에서 느끼게 된다. 뭔가를 일궈내는 과정을 즐겁다. 감독 일을 더 많이 해보고 싶다.”
▷시나리오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었나.
▶김조광수: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시놉시스는 머릿속에 다 들어 있었다. 염경문 작가(이 영화에 출연도 한다)를 만나 ‘잘 들어봐. 내 영화는 이렇다’며 말로 들려주었다. 그렇게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한 달 반 정도 지나 초고를 뽑아주었고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런 작업은 행복한 케이스이다. 촬영은 작년 7월에 한 달 간 진행했다. 코로나 1차 대유행이 지나가고 잠시 상황이 나아졌을 때 촬영을 끝낼 수 있었다.”
▷ 촬영 중 어려웠던 점은?
▶김조광수: “코로나 시기여서 장소 빌리기가 좀 힘들었다. ‘병원은 안 된다’, ‘분식점은 꺼린다’, ‘공원은 위험하다’ 식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찍기를 잘 한 것 같다. 제작비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에 빨리 끝내야했다. 이정은 배우의 스케줄도 빡빡했다. 그래서 프리프로덕션을 빡세게 진행했다.”
● 경이로운 배우들
▷ 이홍내 배우는 ‘경이로운 소문’으로 뜬 배우이다. 물론 그전에는 무명이었다. 캐스팅 운이 좋았다.
▶김조광수: “그 친구가 출연했던 뮤직비디오를 봤었다. BTS가 서태지의 ‘Come Back Home’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언젠가는 스타가 될 것 같았다. 이 영화 준비할 때 홍내 배우는 오디션을 많이 보려 다녔다. ‘경이로운 소문’ 오디션도 볼 것이라고 했었다. 그 드라마에 캐스팅되면 스타가 되어 (홍보에) 도움을 좀 받게 될 것 같다고 말했었다.”
▶김조광수: “‘컴백홈’도 그렇고 ‘경이로운 소문’에서 이홍내 배우의 이미지는 아주 강렬하다. 이 영화에서는 ‘순둥순둥’ 귀엽고 사랑스럽게 나온다. 이홍내의 내면에는 극중 하늘이 같은 게 많더라. 그 순수한 내면을 잘 끄집어내면 잘할 것 같았다. 대중들은 ‘경이로운 소문’에서 워낙 강렬한 이홍내 배우를 먼저 만났기에 이 영화가 오히려 득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감독이 연출을 잘 했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잖은가.“
▷ 이홍내 배우 못지않게 정휘 배우도 활기찬 연기를 펼친다.
▶김조광수: “정휘 배우는 예전에 [팬텀싱어]에서 ‘알라딘’ OST를 부른 적이 있다. 목소리가 맑고 청아했다. 그가 나오는 공연을 눈 여겨 보고 있다가 시나리오를 전달했다. ‘봉식이’가 제일 먼저 캐스팅되었다. 정휘 배우는 공연에서 다양한 역할을 했었다. 아픈 내면을 가졌고 동시에 BJ로 천방지축 같은 발랄함을 잘 표현할 것이라 믿었다.”
▷ 봉식(정휘)의 새로운 사랑으로 곽민규 배우가 나온 것은 의외이다. 꽃미남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
▶김조광수: “곽민규 배우는 상대 배우의 연기를 맞춰주고 끌어내는 연기를 잘 펼친다. 독립영화에 출연한 그를 꾸준히 눈여겨보고 있다가 이 영화를 위해 만났는데 살이 많이 쪄있더라. 운동을 못했다고 하더라. 극중 민호 이미지와 안 맞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꽃미남끼리 연기를 펼치는 것 보다는 그게 나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워낙 연기를 잘하기에 자기 몫을 다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 그런데 왜 극중에서 운동을 ‘배드민턴’으로 설정했나. 제작비 탓인가?
▶김조광수: “염 작가랑 여러 가지 운동을 생각했었다. 공원에서 만나는 스포츠 동호회, ‘육체적’으로 보일 수 있는 수영이라거나, 박진감 넘치는 축구도 생각했었다. 그런데 배드민턴이 ‘아재’스러운 느낌을 주면서 이 영화와 언밸런스하면서도 귀여운 느낌을 줄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는 이 영화가 귀엽고 발랄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 봉식이와 청경채
▷ 정휘가 연기하는 봉식이 이름은 어떻게 지었나. 너무 올드하지 않나?
▶김조광수: “예쁜데 촌스러운 이름을 생각했었다. 21세기에, 90년대 이름이 걸맞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극중에서 자기는 ‘청하’처럼 예쁜 이름을 갖고 싶어 한다. ‘청경채’같이. 이야기를 진행시키는데 캐릭터한테 좋은 면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이름을 선택했다. 물론 정휘가 예쁘다고 말한 이름의 청하는 가수 청하다. 임청하 아니다.”
“옥탑방 텃밭에서 키우는 채소 중에 청경채가 있다. 염 작가랑 무얼 키울까 고민했었다. 배추? 오이? 청경채가 좋겠다고 한 것은 작으면서도 온전한 상태로 잘라서 먹는 게 적합하기 때문이다. 꽃을 피우는 이야기도 괜찮을 것 같았다. 청경채는 전부터 집에서 키웠다. 그런데 영화 찍을 때 꽃을 피워야 하는데 작년에 비가 너무 많이 와서인지 꽃을 피우지 않더라. 그 장면 CG다.”
▷ 영화에 등장하는 고양이는?
▶김조광수: “잘 훈련된 고양이가 필요하지만 그렇게 하면 제작비가 많이 든다. 그래서 페이스북에 '개냥이‘같은 고양이 필요하다고, 며칠만 빌려 주세요라고 올렸다. 많은 분들이 고양이 사진과 동영상을 보내주셨다. 직접 방문해서 몇 마리를 살펴보았다. 주인과 있을 때는 괜찮았는데 외부인을 보면 촬영하기 어려워지더라. 고등학교 때 친구네 고양이를 보게 되었다. 저한테도 잘 안기더라. 촬영장엔 조명도 많고 해서 처음에는 자꾸 숨더라. 조금 친해지니까 연기를 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그 고양이가 열 살이었다. 친구 딸 둘이 번갈아가면서 현장에 나와 케어 해주었다. 열 살 고양이에게 무언가 추억하고 싶은 것을 선물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 청춘의 특징 ‘유치하면서도 오글거리지만, 절박하다’
▷그동안의 ‘이런’ 영화와 차이가 있다면?
▶김조광수: “이번 영화는 일반 관객이 봐도 부담스럽지 않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특별하게 게이들의 문화를 보여주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성소수자들끼리 느끼는 현실적인 문제, 아픔들을 담으려고 했다. 영화에서 병원 응급실 앞에서 핸드폰 속 사진을 지우는 장면이 있다. 동생(염문경이 연기함)을 만나서는 자기가 누구라고 밝히지 못하는 장면도 있다. 너무 무겁지 않게 그들의 아픔을 전해주고 싶었다.”
“청춘의 이야기는 밝다. 그런데 진짜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들의 유치함이란 것은 절박함이다. 그게 20대 청춘의 특징이라고 생각했다. 밝고 명랑하고 유쾌하면서, 유치해 보일 수 있다. 배우와 작가와 이야기하면서 어느 정도까지의 선을 지킬 것인가 이야기를 나눴다. 관객들이 보기에 너무 간 게 아니길 바랐다. 오글거리는 것은 괜찮지만 손발이 없어지면 안 된다고.”
“다른 퀴어 작품들이 너무 무겁게, 비극적일 정도의 현실을 담았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20대, 90년대 생 게이들의 밝고 명랑한 모습을 담고 싶었다. 요즘 그들을 보면 많이 달라졌다. 일찍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정리하고 밝게 산다. 영화라는 것이 현실을 그대로 담기만 하는 매체가 아니라 판타지이기도 하다. 판타지한 것이 정말 필요한 것이 아닐까. 저 자신도 밝고 명량한 캐릭터이다. 저랑 비슷한 영화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 조선명탐정의 앞날은
▷김명민 오달수가 콤비가 되어 펼치는 수사활극 ‘조선명탐정’은 3편까지 만들어졌다. ‘조선명탐정’ IP는 ‘청년필름’이 갖고 있는 것이니. 영국의 ‘셜록’이나 중국의 ‘적인걸’처럼 영생할 수 있지 않을까.
▶김조광수: “조선명탐정은 예전에 KBS시트콤 ‘올드미스다이어리’를 만든 김석윤 감독이 만든 작품이다. 이분은 캐릭터 코미디를 잘 다룬다. 탐정극을 하면 잘 할 것 같았다. 제작자 입장에서 보면 현대를 배경으로 하면 영화 만들기가 어렵다. 그래서 판타지로 조선시대에 탐정이 있다고 해서 만든 것이다. 감독님께 제안 드렸고 영화로 만들어졌다. 작업하면서 한국의 ‘인디아나 존스’나 ‘007’ 같은 시리즈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3편까지 만들어졌다.”
“사실, 중국 [적인걸] 만드는 회사에서 [조선명탐정]과 손잡고 사건을 해결하는 작품을 만들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있었다. 사드사태가 터지면서 현실화되지 못했다. 만약 성사되었으면 재밌을 것 같은데. 한중문제를 해결하는 재미, 유덕화와 김명민이 같이 나온다면 말이다.”
▷ 극장용 말고, OTT로 만드는 것은 어떤가. 넷플릭스에서는 [뤼팽]도 인기인데.
▶김조광수: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고민되는 지점이다. 코로나로 인해 영화제작 환경이 안 좋아졌고, OTT가 새로운 매체가 되어버렸다. 지금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극장)영화가 좋아서 출발한 사람들이다. OTT라는 매체를 두고 영화와 드라마 중 어느 것이 더 좋은지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영화를 만들 때처럼 아이디어를 고민하는 단계이다.”
● 프라이드는 계속된다
▷ 이 영화는 작년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되었다. 영화제 집행위원장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프라이드영화제’에 몸담은 소감은.
▶김조광수: “11년째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전 세계에 수많은 영화제가 있지만 장르영화제 중 퀴어영화제가 가장 많다. 일본만 해도 도쿄, 나고야 등 각 도시에서 여덟 개나 열린다. 미국에서는 20개가 넘고. 아직은 우리나라 영화 관객들에게 ‘퀴어 작품’만을 상영하기에는 ‘허들’이 있다. 영화제를 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 기업협찬도 이끌어내야 한다. 성소수자에 대한 허들이 있다 보니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기업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과장급에서는 이야기가 통한다. 그런데 국장 선 위로 올라가면 ‘No'하는 경우가 많다.”
“영화제 처음 할 때는 3일 동안 단관에서 진행됐다. 지금은 1주일동안 5개관에서 열린다. 반응도 점점 좋아지고 있다. 대한민국 관객이 상상하지 못한 다양한 장르의 퀴어를 볼 수 있다. 만족도가 높아진 것 같다. 허들 너무 느끼지 마시고, 이렇게 재밌는 영화가 많구나 한번쯤 방문해 주셨으면 한다.”
▷ 요즘 뮤지컬이나 공연 쪽에는 퀴어물의 인기가 꾸준하다.
▶김조광수: “영화제를 보면 여성층이 80퍼센트다. 연령층은 젊은 층이 많지만 의외로 다양하고 폭넓다. 한국에서는 신인배우들이 주로 연기한다. 스타들이 도전하기가 쉽지 않다. 외국은 이미 그런 벽이 허물어져서 스타들도 나오는데 말이다. 뮤지컬에서는 퀴어가 소구되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스타들도 나오고 말이다. 내가 만든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이 스타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들이 스타가 되어 앞으로도 성소수자 영화를 출연해 주었으면 한다. 관계의 폭이 넓어질 것이다.”
▷ 최근 본 성소수자 영화 중 한 작품을 추천한다면. 이 영화 말고.
▶김조광수: “최근에 본 것으로는 한국영화 ‘정말 먼 곳’(감독 박근영)이다. 제 영화와는 완전히 다르다. 진지하다. 한국의 ‘브로크백 마운틴‘ 같았다. 배경도 비슷하다. 양을 관리하는 목장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인데 깊은 멜로 드라마이다. 촬영도 좋았다. 아주 인상적인 작품이다.”
이홍내, 정휘, 곽민규, 염문경, 이정은, 강정우가 출연하는 김조광수 감독의 퀴어영화 [메이드 인 루프탑]은 6월 23일 개봉한다. ‘퀴어영화’라고 겁먹지(?) 마시길. 15세관람가 영화로 청춘의 이야기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