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사는 주변 사람과 단절된 채 아무도 모르게 생을 마감하는 죽음을 뜻한다. 그중에서도 청년 고독사는 심각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경제적 고립에서 비롯된 고통, 취업 실패, 인간관계의 부재 등에 몸과 마음의 병을 쌓아가는 청년들은 차가운 도시 속에서 고독에 질식되고 있다. KBS 시사 교양 프로그램 ‘시사직격’의 이유심, 김승현 PD는 지난 7일 청년 고독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죽어야 보이는 사람들’을 통해 우리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청년 고독사의 처참한 현실을 조명했다. 그들은 ‘청춘’에 담긴 의미를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힘든 시절을 살아가는 진짜 청년들의 현실을 드러내고, 나아가 시청자들 또한 청년 고독사라는 사각지대를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Q. ‘시사직격’은 다양한 사회 문제의 사각지대를 다큐멘터리를 통해 비추는 KBS의 대표 시사 교양 프로그램이다. 매일 뉴스에서 보게 되는 이슈들 중에서도 청년 고독사라는 주제를 설정한 계기는 무엇인가?
이유심 – 나의 경우 20대 시절 오랫동안 취직이 안 됐다. 20대 중후반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냈는데 나처럼 혼자 오래 있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고,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김승현 – 취업이 안 되는 친구들 중 연락이 점차 안 되고, 그러다 고립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친구들을 생각하며 해야겠다 생각했다. 이유심 선배가 했기에 믿고 따라간 것도 있었다.
Q. 고독사에 처한 청년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를 완성했다. 영상 초반부 장면부터 쓰레기가 가득한 방의 모습이 등장한다. 시청자의 입장으로서 충격으로 인한 임팩트가 컸는데 이렇게 연출한 의도가 있었나?
이유심 - 우리도 취재하면서 놀랐다. 쓰레기가 쌓여있는 곳을 마치 등산을 하듯 타고 올라갔다. 그 장면을 앞으로 빼서 연출한 것은 팀 전체의 의견이었다. 그곳은 서초구의 한복판에 있는 오피스텔이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도시와 건물에서 몇 mm도 안 되는 벽 너머에서는 누군가가 마음이 아픈 채로 혼자서 단절된 채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Q. 고독사 현장을 찾아가는 것부터 시작해서 취재에 자료 수집까지, 청년고독사라는 주제를 취재하는 과정에 어려운 점이 많았을 것 같다.
이유심 – 선입견일 수도 있지만 취재를 하다 보니 고독사를 하신 분들이 대부분 대인 관계가 활발한 분들은 아니셨다. 그러기에 그분이 어떤 사람인지 찾는 것이 더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분을 기억을 못 하셨고 친구들도 많지 않았다. 우리도 그 사람의 조각을 맞춰나가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러면서도 조그마한 것들이 모여 이 사람이 점점 입체적인 사람으로 변할 때 많이 슬펐다. 이 사람이 정말 외로웠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Q. 영상 속에 고독사한 분들의 주위 사람들에게 연락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그들의 통화 목소리가 슬프지 않았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마치 죽은 사람을 자신과 상관없는 타인을 대하는 듯한 태도가 느껴져 가장 씁쓸했다.
이유심 – 고독사한 분들의 지인들에게 연락처를 어렵게 찾아서 전화했는데 대부분 스쳐 지나가는 사람인 것처럼 말씀해 주셨다. 고등학교 때 지인들도 ‘모른다’, ‘기억 안 난다’라고 말하는 분들이 많았다. 우리를 직접 만나주셨던 분이 딱 한 분만이 ‘스무 살 때부터 만났는데 괜찮은 애다. 실제로 보면 근사하게 생겼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 울음이 터졌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가 죽었을 때 한 명이라도 좋게 그 사람에 대해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인생에 있어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Q. 본인도 청년 고독사를 마주한 이들과 비슷한 나이이지 않나. 같은 세대의 일원으로서도 이 작품을 준비하며 많은 감정들이 들었을 것 같은데 어떠한가?
이유심 – 언론 고시를 준비하던 그때의 기억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누군가는 붙고 짐을 싸서 떠나는데 축하해 주면서도 ‘여기에 남아 있는 나는 무엇일까’ 생각했다. 공부하는 곳 칸막이가 굉장히 울기 좋게 되어있었다.(웃음) ‘나는 왜 이렇게 안 되는 건가’, ‘안 되는 일을 붙잡고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지인 중에서도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었다. 그래서 이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면서 힘든 청년들이 무슨 기분인지 감히 알 것 같았다.
김승현 – 우리 모두 취업 준비로 힘든 경험을 했다. 자신을 의심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선택 받지 못하는 괴로움을 느끼기도 했다. 무엇을 겪는지 다를 뿐이지 모두가 공감하는 것 같다.
Q. 그러한 깊은 공감의 과정을 통해 청년들의 진짜 이야기를 담은 세심한 작품이 완성된 것 같다.
이유심 - 우리 세대가 욕을 먹을 때가 있었다. 대학이나 강연회에서 '열정 없이 산다', '가슴이 뛰는 일을 해라'라고 하면서 혼난 적도 있지 않나.(웃음) 당시 정말 사람들이 20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랬다. 이전에 ‘신한 은행 채용 비리’에 관한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했던 적이 있다. 사람들이 채용 비리에 대해서 관심이 많을 줄 알았는데 별로 반응이 없어서 의아했는데 이번 다큐멘터리를 하면서 깨달았다. 우리가 생각하는 청년상이 너무 좁았던 것이다. 청년의 모습은 다양했다. 저마다 교육 환경도 다르고 일용직이나 취업을 하지 못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우리가 보지 못했던 청년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승현 - 공시생 이야기라서 공감을 사는 보편적인 이야기가 될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진짜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공감이 된 것 같다.
Q. 그러기에 더욱 이 다큐멘터리를 향한 청년들의 반응이 뜨거운 것 같다. 현재(26일 기준) ‘죽어야 보이는 사람들’ 풀버전이 공개된 유튜브 영상에는 댓글이 1만 개 가까이 달려 있다. 대부분 이 다큐멘터리로 인해 위로와 공감을 하는 이들의 댓글이었다. 익명의 힘을 빌려 정신적인 힘듦을 토로하는 댓글도 많았다.
이유심 - 사실 지금도 기억나는 댓글이 있다. ‘죽었는데 학교 찾아다니면서 죽었다고 말하면 누가 좋아하겠냐’는 식의 내용이었는데 혼란스러웠다. 이 작품을 준비하며 헷갈렸던 지점이기도 했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이 사람이 누군지 알아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이렇게 다가가는 것이 맞나 싶었다. 많이 고민했었다.
김승현 – 촬영하고 인터뷰를 진행하고 나서도 마음이 좋지 않은 때들이 있었다. 노량진과 신도림에 고시생들 모이는 곳에 가서 밥 얻어먹으면서 이야기도 했는데 외로움이 느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고 의지할 데가 없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안정에서 오는 행복을 유예하고, 그러기에 항상 느끼는 불안 자체에 익숙해져서 힘들다는 느낌을 까먹고 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더 이 작품 잘하자고 말하면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Q. 그렇게 ‘시사직격’을 통해 위로 받은 이들, 그리고 더 나아가 지금 이 순간에도 고립되어 있을 청년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던진다면 무엇일까?
김승현 – 이 영상에 담긴 이야기는 모두 무겁고 진중하다. 그만큼 우리가 쉽게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의 사연을 깊이 본다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고 귀중한 기회이기도 해서 어떻게 보여줄지 마지막까지 고민을 많이 했다. 빨리 시작했고 늦게 끝났다. 그렇게 고생한 만큼 다들 잘 봐주셔서 감사하다.
이유심 – 영상에 달린 댓글들을 나도 많이 봤다. 서로에게 공감을 하는 것 같다. 사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조금은 뭔가를 말하는 것이 건방진 느낌도 든다. 하지만 어떤 시기든 끝은 있으니까 비관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 매주 금요일 오후 10시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KBS 1TV 시사교양 프로그램 ‘시사직격’은 오는 28일 비트코인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가 방영될 예정이다. 지난 7일 방영된 '시사직격'-'죽어야 보이는 사람들' 편은 아래 '시사직격' 공식 유튜브 채널에 발행된 풀버전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