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10부작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가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고독사한 사람의 마지막 누운 자리와 방을 정리하는 ‘유품정리사’의 이야기이다. 비정규직 청년고독사도 있고, 행복하게 두 손을 맞잡고 죽은 노부부도 있다. 가장 허망하고, 가장 슬픈 이야기이지만 마음을 정화시키는 눈물을 안겨준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김성호 감독이 넷플릭스와 손을 잡고 만든 ‘무브 투 헤븐’은 넷플릭스에서 건질 수 있는 순한 영화 1호라고 할 수 있겠다. 김성호 감독을 만나 그 특별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무브 투 헤븐'은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유품정리사 그루(탕준상)와 그의 후견인 상구(이제훈)가 세상을 떠난 이들의 마지막 이사를 도우며 그들이 미처 전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남은 이들에게 대신 전달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국내 1세대 유품정리사인 김새별의 논픽션 에세이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그리고 ‘무브 투 헤븐’
▷ ‘무브 투 헤븐’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처음부터 관여를 했었나.
▶김성호감독: “처음 시작할 때는 제가 없었다. 넷플릭스, 제작자, 작가가 만나 유품정리를 하는 원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재작년(2019년) 여름에 4부까지 대본을 받았다. 윤지련 작가와 같이 작업하면서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와 고인이 된 사람이 남긴 유품의 이야기, 그 숨겨진 사연을 따뜻하게 전달하고자 했다. 겨울부터 준비하여 작년 3월부터 6월까지 촬영을 진행했다.”
▷ '무브 투 헤븐'이 넷플릭스 시청순위 1위에 올랐다. 공개 후 반응이 뜨겁다. 소감은.
▶김성호감독: “넷플릭스 작품이라서 관객 수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시청률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대신 공개된 후 전 세계로부터 리뷰와 메시지를 받을 수 있었다. 감동을 받았다며 좋아해 주셨다. 그런 반응이 너무 행복하다. 수많은 언어로 이 드라마를 잘 보셨다고 한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다고 전해드리고 싶다.”
▷실제 사회문제를 소재로 다룬 점이 인상적이었다. 연출자로서 이야기를 고르고 끌고 가는데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김성호감독: “사회적 이슈, 약자에 대한 보편적인 문제를 다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숨겨진 이야기도 전달하고자 했다. 너무 감정적으로 그리게 되면 힘들어지거나 신파가 되어버릴 것이다. 편파적인 생각이 들 수도 있으니 일반사람이 느낄 수 있는 그런 감정을 다루고 싶었다. 잊고 있었던, 잘 몰랐던, 지나간 이야기를 담담하게 찾아보았다. 이 작품을 보고 자신의 주위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며 좋겠다.”
▷ 이 작품은 수많은 고독사를 다룬다. 원작인 된 에세이<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김새별, 전애원)과 어떻게 연결되나
▶김성호감독: “원작을 보면 유품정리사가 등장한 것은 주변 사람이 도와줄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고독사하거나, 독거노인, 힘든 직업의 종사자이다.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이야기를 다루었다. 독거노인, 비정규직, 데이터폭력 등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 점은 작가님이 많이 고민한 것 같다. 작가님이 소재와 사연을 많이 조사했다. 이후 작업을 하면서 상구 캐릭터를 완성했다. 전체 극을 끌고 나가는 과거 이야기에 대해 연출적 고민을 많이 했다. 유품정리와 관련된 이야기와 조화를 이룰 수 있게,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중요했다.”
인터뷰 자리에 함께한 홍보관계자는 “원작이 되었다기보다는 그 에세이에서 영감을 받은, 모티브를 얻었다는 것이 적합할 것 같다”고 덧붙인다.
● 이제훈, 탕준상, 홍승희면 충분해
▷ 넷플릭스와의 협업은 어땠나.
▶김성호감독: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만들 때 이야기를 하자면 이렇다. 개를 훔쳤다가 돌려주는 이야기가 담담하게 펼쳐진다. 그런데 제작하려고 하니 아빠가 시체로 발견되어야하고, 할머니가 죽을병에 걸린다는 이야기를 넣자고 했다. 이야기를 완벽하게 전하는 방법을 설득해야 하는 지점이 있었다. 그런데 넷플릭스와 작업할 때는 그런 압박감이 전혀 없었다. 첫 만남에서 연출에 대해 어떻게 관여하는지 물어보았다. ‘저희는 의견만 드립니다’라고 하더라. 분명하게 했었다. 실제 편집할 때 좋은 의견을 주고 끝났을 뿐이다. 창작자에겐 좋은 기회였다.”
▷ 이제훈을 제외하면 빅스타 캐스팅은 없는 작품이다.
▶김성호감독: “일단 세 명의 주인공이 극을 끌고 간다. 삼촌(이제훈)은 나이가 있고, 그루(탕준상)은 스물 살이다. 어린 나이의 배우면 된다. 기성배우를 데리고 올 필요가 없었다. 젊고 어린 배우, 신인배우, 신선한 얼굴로 끌고 가고 싶었다. 이제훈이 충분히 두 사람과 함께 전체 이야기를 이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밸런스를 맞출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훈 배우의 어떤 면이 그렇게 신뢰가 갔나.
▶김성호감독: “이제훈은 훌륭한 배우이고 내가 좋아하는 배우이다. <건축학개론>에서의 인상적인 모습이 컸다. 극중 조상구는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큰 어려움을 겪고 변해가는 모습을 연기해야한다. 그런 스펙트럼 넓은 역할을 할 배우가 필요했다. 이제훈 배우는 그런 자질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훈 자신도 엄청 열심히 노력했다. 현장에서 감동받은 부분도 있다. 자칫 잘못하면 그런 캐릭터를 깨뜨릴 수 있는데, 이제훈은 상구 캐릭터를 구축하고, 본연의 목표를 최대한 보여주었다.”
▷드라마를 성공적으로 이끈 데에는 탕준상의 힘도 크다. 아스퍼거 증후군 연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 연기는 과해도 모자라도 어색할 수 있다.
▶김성호감독: “아스퍼거 증후 연기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보아왔다. 그런 천편일률적일 수 있는 모습과는 조금 달랐으면 했다. 제 주변에도 그런 환경이 있어 ‘무브 투 헤븐’에서는 좀 달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주변의 친구도 있어서 많이 봐 왔다. 아스퍼거 증후군의 경우 스펙트럼이 넓고 형태가 다양하다. 한 부분만 강조하는 경우가 많아 시청자는 그게 익숙할 것이다. 그루는 스물 살의 청년이고, 유품정리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다. 탕준상은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았다. 그러면서 극중에 가장 어울리는 것을 골랐다. 여태 보아왔던 것을 최대한 반영하였기에 현실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김성호감독: “준상에게 다섯 개를 준비하라고 해서는 틀을 잡을 때까지 리허설을 했다. 현장에서 준상씨가 계속 궁금해 했다. 아스퍼거를 연기하다보면 진폭이 있다. 캐릭터를 맞춰갔다. ‘덜 보여주면 어떨까’ 디테일하게 연구했다. 실제 준상이는 아주 디테일하게 연기했다. 눈동자의 위치를 바꿔보자, 시선을 깔아보자 는 식으로 디테일하게 그루를 만들어갔다.”
▷그루의 지기, 나무 역에 홍승희를 캐스팅한 이유는.
▶김성호감독: “그루 역의 탕준상은 그가 나온 전작을 보고 바로 결정했는데, 나무 역은 오디션을 많이 봤다. 홍승희의 에너지가 마음에 들었다. 신인배우의 경우 경력이 없어 부자연스럽거나 연기의 폭이 좁다. 그런데 홍승희는 본성에서 갖고 있는 에너지가 대단했다. 연기의 진폭이 심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었다. 신인이라 떨거나 하지 않았다. 겁 없이 당차게 연기하더라.”
▷정동환 배우가 아파트 경비로 출연하는 에피소드가 개인적인 울림이 컸다. 최근 사회문제가 되는 이야기들이 다 녹아있다. 감독님은 어떤 에피소드, 사연이 특히 인상적이었는지.
▶김성호감독: “모든 에피소드와 유품에는 사연이 있었기에 마음이 아팠다. 그런 아픔을 어떻게든 표현해보고자 했다. 최근 컨테이너항에서 젊은이가 목숨을 잃었다. 선우 에피소드라 많이 떠올랐다. 편집하면서 선우 이야기가 특히나 가슴 아팠다. 우리가 그냥 스쳐 지나가 버린 이야기들이다. 주위를 돌아보고, 살펴보게 하는 힘을 갖고 있는 것 같다.”
● 코로나와 넷플릭스
▷ 코로나19로 촬영 과정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김성호감독: “이 작품을 시작할 때 코로나 이렇게 오래 갈 줄 몰랐다. 많이 조심했다. 작품을 하면 회식도 하고, 파티도 하고 그러는데 ‘무브 투 헤븐’의 경우에는 아직 배우, 스태프들이 회식을 한 번도 못 했다. 도시락도 따로 먹었다. 사태가 더 심각해지면 어쩌나 그런 마음도 들었다.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있었는데 무사히 마쳐 다행이다.”
▷전작 [개를 훔치는...]이 극장에서 조기종영 되면서 논란이 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 감독이 넷플릭스를 통해 신작을 공개했다니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김성호감독: “‘개를 훔치는 완전한 방법’은 완벽한 극장용 영화이다. 관객에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다. 창작자 입장에선 자신의 작품이 개봉이 되어야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다. 극장시스템이 그렇다. 큰 영화만큼 작은 영화에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다. 넷플릭스는 큰 의미가 있다. 기본적으로 창작자가 하고 싶은 것을 만들게 하고, 전 세계에 공개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넷플릭스를 통해 ‘무브 투 헤븐’이 공개된 후 전 세계에서 리뷰와 메시지가 하루에 수십 개, 수백 개가 온다는 것이 너무 감동적이다.”
▶김성호감독: “넷플릭스가 창작자에게 자율을 준다는 는 것에 대해 말하자면, 감독은 예산과 스케줄에 대해 공동의 책임이 있다. 연출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었던 것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다. 바운더리 내에서 충분히 할 수 있었다.”
▷ 마지막 장면에 이레를 등장시켰다.
▶김성호감독: “이레는 ‘개를 훔치는 완전한 방법’의 주인공이었다. 훌륭하게 성장한 배우이다.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이 작품을 만들며 저와 인연이 있는 배우들에게 부탁드렸고, 캐스팅을 많이 도와주었다. 이레도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김성호감독: “역할이 크지 않지만 함께 참여해주신 분들이 고맙다. 매튜을 연기한 케빈 오는 연기가 처음이라 쉽지 않았을 텐데 너무 훌륭하게 해 주었다.”
▷1995년 한국에서 발생한 한 커다란 사고가 이 영화에선 중요한 소재로 쓰인다.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지.
▶김성호감독: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제한된 답변) “저도 고민을 많이 했다. 자연스럽게 전체 줄거리와 최대한 잘 어울릴 수 있도록 연출했다. 잘못 전개될 수 있으니. 고민을 했다.”
▷ 차기작 준비하고 있는지요.
▶김성호감독: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정해진 것은 없지만.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 등 여러 장르를 생각 중이다.”
넷플릭스 10부작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를 추천 드린다. 에피소드 몇 개는 청소년들에게 꼭 관람시키고 싶은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