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웅산파출소 황용식 순경으로 시청자에게 기쁨을 안겨주었던 강하늘의 스크린 복귀작은 <비와 당신의 이야기>이다. 제목이나 포스터로 보자면 완벽한 ‘멜로드라마’이다. 강하늘과 함께 출연하는 배우는 천우희이다. <곡성>에서 “뭐가 중한디?”했던 그 배우. 과연 이 작품은 멜로일까. 조진모 감독을 만나 <비와 당신의 이야기>에 대해 들어보았다. 조진모 감독은 100여 편의 뮤직비디오를 찍었고, 충무로로 넘어온 뒤 <수상한 고객들>과 <메이킹 패밀리>를 감독했었다. 혹시 두 영화 보셨는지. 궁금해지는 감독일 것이다.
- 제목이 '비와 당신의 이야기'이다.
▶조진모감독: “하고자하는 이야기와 방향성이 맞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작품을 구상할 때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로 끝나버리면 안 될 것 같았다. 영화만으로 만족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영화가 끝나고도 관객과 호흡할 수 있는 이야기였으면 했다. 같은 제목의 노래도 있어서 검색하면 노래가 먼저 나온다. 그건 상업영화로 고민되는 지점이었다. 하지만 사람들과 같이 호흡하고 싶은 소망이 있어 그 제목으로 했다.”
-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처음에 어떻게 기획되었는지.
▶조진모감독: “조금 고통의 시간이 있었다. 유성협 작가의 시나리오를 처음 보고 든 생각은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이었다. 지금의 나는 어떤 사람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언제부터 이런 식으로. 처음 시나리오는 멜로 느낌이 강했었다. 이야기는 2003년의 과거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지금 나를 돌아보아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의 나는 어떤 고민을 갖고 살아갔는지,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미래가 펼쳐질지. 그때의 작은 시간이 모여서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 강하늘과 천우희의 캐스팅에 대해.
▶조진모감독: “시나리오에서 그리고자 하는 캐릭터와 잘 맞았다. 강하늘 배우가 군대에 있을 때 시나리오를 보냈었다. 제대 후 출연한 <동백꽃 필 무렵>으로 그의 진가가 발휘되었다. 그가 너무 유명해져서 두려워졌다. 극중 영호와 소희는 전적으로 ‘나’와 같았으면 했다. 우유부단하고 어리숙한 면이 있기를 바랐는데 너무 스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촬영을 하면서 그런 걱정은 기우였다.”
“천우희 배우는 내가 좋아하는 배우였다. 맑은 느낌의 배우인데 조금 외로워보였다. 아마도 강렬한 인상의 연기를 많이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걸 조금만 풀어주면 될 것 같았다. 시나리오를 보고 이 영화를 선택해 주셔서 고마웠다. 시나리오의 힘인 것 같다.”
- 영화는 주인공의 시간대를 많이 오가는 편집으로 완성되었다. 시간 설정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조진모감독: “2011년을 먼저 염두에 두었다. 영화에서는 영호가 형에게 ‘10년 후 형처럼 살지는 않을 거야’라고 말한다. 시간 순으로 생각해서 (이 영화가 개봉되는) 2020년 정도에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생각해 본 것이다. 그때가 되어도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잘 살고 있을지. 그런 식으로 8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갔고, 이야기가 펼쳐지는 구조이다. 2003년을 중심으로 해서 말이다.”
- 강하늘이 연기하는 영호는 기다림과 인내, 순수한 감정의 화신 같다. 그런 면에선 판타지에 속한다.
▶조진모감독: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지면 ‘불가능’에 가까워질 것이고 판타지가 될 것이다. 영호라는 캐릭터를 어떤 규정된 아픔을 가진 감정적 인물로 화면에서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했다면 우유부단한 찐따남이 될 것이다. 고민하고 갈등하는 모습, 좋은 것도 아니고 싫은 것도 아닌 중간 지점을 원했다. 그 정해지지 않은 감정을 눈빛으로 표현해주기를 바랐는데 괜찮게 표현된 것 같다. 감독으로서 감탄하게 되었다.”
● 이것은 기다림에 대한 영화이다.
- 공원에서의 기다림은 어찌 되나. 결국 두 사람의 재회는 성사될 것인가에 대해 처음부터 그런 결정을 내렸었나.
▶조진모감독: “개인적으로 기다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건 조건이나 계약에 따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기다림이다. 그게 심심하다거나 너무 조용하다고 느끼면 재미없을 것이다. 그 기다림을 역동적으로 보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한없는 기다림! 터무니없고 무모해 보일지라도 그 사람에겐 역동적이었을 것이다. 그 기다림의 결과를 관객들과 같이 느끼고 싶었다. 무모하거나 판타지 같겠지만 더 판타스틱한 기다림도 있다.”
- 영화에서는 2003년 4월 1일 세상을 떠난 장국영 이야기와 영화 <아비정전>과 관련된 대사가 나온다. 어떤 의도인가.
▶조진모감독: “아시는 분은 공감하겠지만, 이제는 장국영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 장국영처럼 이 시간을 기억하라는 것은 이 영화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 우리가 어느 시간대에 있었고, 누군가에게 내가 어떻게 기억될지 말이다. 굉장히 오랜 시간이 지나도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갈망이 있을 것이다. 궁금해서 장국영의 영화를 찾아보게 된다면 좋을 것이다.”
● 강소라, 너의 이름은..
- 강소라가 연기하는 수진이란 캐릭터의 역할은 어떤 것인가.
▶조진모감독: “수진이란 캐릭터는 영화를 만들어 가는데 중요하다. 수진 역에 강소라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영화에서 ‘수진’이란 이름은 단 한 번도 불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수진’이란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그런 인물을 통해 다른 방식으로 나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람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강력하게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면서도 명시적으로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나서야 그런 사실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 사람이 나에게 뭘까. 사랑이었을까, 그냥 스쳐지나가는 사람이었을까. 그런 사람이 있어서 영화를 보면서 누군가를 떠올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 수진을 연기한 강소라 배우는 왜 ‘특별출연’으로 등장하나.
▶조진모감독: “난 이 영화의 주인공이 세 명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특별출연을 원했던 것은 아니다. 아마 이유는 다른 데 있을 것이다. 출연비중이 작다거나 하는 문제는 아니다. 상업적 측면이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촬영회수를 줄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다 했으니까.”
- 소연을 연기한 이설 배우는 눈빛만으로 간절함을 표현해야했다. 연출 포인트가 있었다면.
▶조진모감독: “이설 배우는 눈여겨보고 있던 친구이다. 눈빛이 너무 좋았다. 소연은 극중에서 아무 말을 할 수 없는 역할이다. 그래서 더욱 눈빛이 중요하다. 그 눈빛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여러 생각이 들게 하는 배우이다. 배우로서는 선택하기 어려운 역할이었다. 아프다는 사실을 표현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또 다른 상황, 편지를 통한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잘 표현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 따로 질문할 기회가 없어서 이 질문을 드린다. 전작 <메이킹 패밀리>(2016)는 한중합작으로 중국에서 촬영했다. 당시에는 한중영화합작에 대한 기대가 컸었다. 실제 작업해 본 소감을 뒤늦게 물어본다면.
▶조진모감독: “사실, 당시 기대감이 있었다. 그 영화는 거의 혼자서 진행한 것이다. 아주 어렵게 작업했다. 대만 금마장에 출품되어 뽑히게 되었고, 중국 쪽 영화관계자를 만나게 되고 그런 식으로 하나하나 진행된 것이다. 좋은 파트너 만나 열심히 했지만 한국과 중국의 영화 제작시스템이 너무 달랐다. 그 때 경험으로 내가 얻은 것이 있다면 이제 그 어떤 상황에서도 영화를 촬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 강하늘과 천우희 배우는 대면하는 장면 없이 편지로 감정을 쌓아간다. 연기가 힘들지 않았을까.
▶조진모감독: “영화를 준비하면서 처음엔 극중 인물처럼 배우들이 서로를 아예 만나지도 않았으면 했다. 회의도 따로 하고 말이다. 천우희가 얼굴은 안 보더라도 편지로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래서 촬영 중에 나레이션으로 들어가는 부분을 녹음해서 해당 장면이 있을때마다 들려줬다. 하늘씨도 촬영 현장을 한 번 본 적이 있다. 저는 처음에 아예 단절해서 상상하며 연기하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 엔딩/ 에필로그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린다.
▶조진모감독: “운동회에서 의미 있는 순간을 보자면 영호에게는 기껏해야 1~2분 남짓의 시간이지 않았을까. 영호가 누구에겐가 다가가는 시간이다. 그런데, 이 친구는 그 시간(기억)만으로 나머지 시간을 충분히 버틴다. 명확히 표현되지 않지만 글씨를 거꾸로 쓰는 장면. 그런 상상력은 어떻게 펼칠 수 있었을까. 이 친구가 그 친구였다는 것을 알게 되는 지점. 소희의 상상력이 어디서 나왔을까. 체육복 이름(명찰)을 보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 감독에게 이야기를 듣고, 이 장면을 확인하기 위해 영화를 한 번 더 보았다. 영화 보실 분들은 마지막 빨래(운동복)가 널려 있는 장면을 유심히 지켜봐야한다 *
● 애타게 찾고 있는 감독
- 전작 <수상한 고객들>에서는 자살하려는 보험고객을 찾아 나서고, <메이킹 패밀리>에서는 아빠를 찾아 중국을 간다. 이번 작품에서는 첫사랑을 찾아 편지 주인공을 찾는다. 감독님이 의도한 것인지. 혹시, 본인이 영화를 통해 애타게 찾는 것이 있는가.
▶조진모감독: “애타게 찾는 게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통해 나를 봤던 것 같다. <수상한 고객들>이 그러했다. 그런데 <메이킹 패밀리>에서는 조금 안쪽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가족이야기니까. 이번엔 좀 더 나에게 집중된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순서가 뒤바뀌었으면 어떨까 싶다. <비와 당신의 이야기>부터 하고, <메이킹 패밀리>를 하고 그 다음에 <수상한 고객들>을 했었다면 다른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을까? 영화를 찍는 것은 계속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더 찾고, 더 다가가고 싶다. 어느 지점이 될지 모르겠지만.”
- 감독님은 비의 '나쁜 남자' '태양을 피하는 방법'을 연출하신 뮤직비디오 감독이다.
▶조진모감독: “뮤직비디오를 좋아한다. 지금도 즐겨본다. 원래 감독보다 촬영을 먼저 했었다. 뮤직비디오를 100여 편 찍다가 영화감독이 되었다. 영화를 선택한 것은 너무나 잘한 것이라 생각한다. 나에게 뭔가 결여된 것이 있었기에 영화로 이끈 것이라고 생각한다.”
- 이 영화의 장르는 무엇인가.
▶조진모감독: “멜로 장르에는 위대하고 대단한 이야기가 많다. 그런데 나는 이 영화를 굳이 멜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멜로의 향기가 나는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멜로로 포장되는 것도 막고 싶다. 물론 멜로로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관객에게 어떤 식으로 전해질지 궁금하다. 조금 다르게 봐 주셨으면 한다.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로 하지 않았고, 세 사람을 두고 이야기를 만들었다. 남녀를 대상으로 두기보다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바라보면 또 다른 느낌이 들 것이다.”
-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계속 하실 것인가.
"기다림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하고 싶다. 10년 후 내 모습을 생각하며 오늘을 살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담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