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주 감독은 공포물 <불신지옥>(2009)과 멜로 <건축학개론>(2012)을 만든 감독이다. 필모그라피를 보면 <살인의 추억> 연출부를 지냈고, <경성소녀: 사라진 소녀들> 각색 작업에도 참여했다. 그런 감독의 오랜만에 만나는 신작은 15일 극장과 OTT서비스 티빙을 통해 동시 개봉된 <서복>이다. 전직요원 공유가 유전자공학의 최신결과물인 박보검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는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SF이다. 개봉을 앞두고 온라인으로 연속 화상인터뷰를 진행한 이용주 감독에게서 영화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지난해부터 개봉날짜가 계속 미뤄지더니 마침내 개봉한다. 소감은.
이용주 감독: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다. 개봉할 수 있을까 막막했다. 저뿐만 아니라 극장관계자들이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런 때 극장에서 볼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OTT(티빙)로도 공개되니 이런 방식이 영화계의 돌파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좋은 선례가 되었으면 한다.”
● '불신지옥'과 '서복', 죽음과 삶
- ‘서복’ 제목은 진시황에게 불사영생의 약초를 구해주겠다는 사기극을 펼친 인물 서복에서 유래한다. 장예모와 공리가 출연한 영화 <진용>에도 등장한다. 영화를 처음 기획할 때 영생을 다루려고 했나, 아니면 유전자공학 스캔들을 담으려 했나.
이용주 감독: “이 영화는 <불신지옥>의 확장판이다. 그 영화에서 소진(심은경)은 신들린 아이로 나온다.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소통하기 힘든 존재였다. 이 작품에서는 서복이 그러하다. 확장판을 구상하면서, 소재로 복제인간을 선택한 것이다.”
-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자면 결국 [불신지옥]과 연결된다. 죽음과 죽음을 대하는 사람들의 자세와 관련이 되어 있는 것 같다.
이용주 감독: “죽음의 두려움에 대해서 말하자면 개인적인 이야기가 있다. 연출부 생활 끝내고 <건축학개론>을 5~6년 정도 쓰면서 감독 데뷔를 준비했었다. 계속 엎어졌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가 가족 중에 한명이 암 선고를 받으셨고,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였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지, 고민하고 두려움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그만 둬야 되나 할 때, 준비하던 <건축학개론> 말고 다른 것을 써봐야지 하며 쓴 것이 <불신지옥>이었다. 그런 환경에서, 그런 테마로 시나리오를 쓰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바로 내 옆에 있는 감정이었으니.”
- <건축학개론>이 흥행에 성공한 뒤, 중국에 진출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건축학개론> 리메이크라는 기사도 있었는데.
이용주 감독: “<서복>은 2013년 무렵부터 쓰기 시작한 시나리오이다. 그러다가 2014년 <건축학개론>으로 중국에 몇 차례 갔었고, 중국의 제작자와 만나 중국에서 영화 하나 찍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건축학개론> 리메이크는 아니다. 예전에 써둔 습작이 있었는데 그걸 좋아하더라. 빨리 끝내고 <서복> 들어가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계약서 준비하던 단계에 한한령(限韓令) 터지고 뭐 그러다가 엎어졌다.”
- 어떤 내용인가. 지금 다시 시작할 생각은 있는지.
이용주 감독: “<건축학개론>의 습작이라고 보면 된다. 집 짓는 이야기는 아니고. 고등학생 멜로다. 중국이나 일본 같은 외국을 배경으로 찍고 싶은 작품이다. 고등학생 이야기인데 한국에서 찍을 생각은 별로 없다. 습작이라 그렇게 상업적이진 않다. 그런 부분을 반성하고 쓴 게 <건축학개론>이었다.”
- <불신지옥>, <건축학개론>을 하면서 <서복>까지. 이 영화를 9년간 다듬었다고 들었다. 초기 버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있는지.
이용주 감독: “꽤 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크게 의미 있는 변화는 없었다. 지금 버전에 이르기까지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이었다고 말해야할 것 같다.”
● 서복 = 절대자
- 공유와 박보검의 캐스팅은 만족하는 최상의 조합인가?
이용주 감독: “그렇다. 기대를 뛰어넘은 캐스팅이 이뤄졌다. 완벽하다.”
- 최근 OCN 드라마 <루카 더 비기닝>이란 작품에서도 유전자공학, 돌연변이 이야기가 다뤄졌다. <서복> 본 사람은 ‘<마녀>의 남자버전’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경성소녀>가 떠오른다. <서복>만의 차별점이 있다면.
이용주 감독: “<루카>는 보지 못했고. <경성소녀>는 각색을 했었다. 그런 이야기 많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영화들은 능력을 갖고 있는 복제인간이 주인공인 작품이다. 난 <서복>에서 그런 능력을 가진 인물을 바라보는 기헌이라는 인물 시점을 중시했다.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보통의 초인(超人)물에서는 주위에서 괴롭히니까 응징하는 식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쓰기 전에 ‘죄인’ 민기헌이 ‘절대자’ 서복을 만나 구원받는 이야기를 생각했다. 그런 부분이 다른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 기헌은 시한부 삶, 서복은 영원히 사는 실험체이다. 이게 ‘절대자’와 어떤 식으로 연결이 되는가. 서복은 많은 실험의 ‘사이드 이펙트’인데.
이용주 감독: “내가 말하려고 하는 ‘절대자’는 믿음을 획득한 자이다. 그렇게 바라본 사람이다. 기독교를 예를 들자면 예수일 것이다. 창에 찔리시고 피를 흘리는 인간적인 메시아이다. 마블 히어로 같은 절대자여야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선입견일 것이다. 그런 모습으로 다가올 것 같지는 않다. 믿음으로 획득하는 것이다. <불신지옥>에서의 소진처럼.”
- 아, [불신지옥]에서 오랫동안 궁금했던 것이다. 옥상에서 그들이 본 것은 무엇인가. 주를 믿는 것인가, 미신을 믿는 것인가. 소진의 부활인가 아니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용주 감독: “사실 그 장면 때문에 투자를 받지 못했었다. 과연 누구를, 무엇을 본 것인가라는 것인데. 나는 ‘아무도 모른다’이다. 믿음의 근거가 무엇인가. 소진일까. 엄마의 망상일까. 믿음이 생기는 것이다. 만약 소진이 살아있다면 지금까지의 모든 살인은 소진이 죽인 것이 되지 않나. 그런 것을 의문으로 남겨두는 것이 훨씬 무섭다고 생각했다.”
감독은 그때의 투자담당자와 지금도 만난다면서 “신이 있느냐 없느냐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을 것이다. 증명이 안 되니 믿음이 필요할 것이고, 그것을 관객에게 물어본 것이다. <불신지옥>은 당시로서는 장르적이지 않았다. 엔딩이. 그때 포기한 투자제작사는 현명한 선택을 한 셈이다. 흥행을 못했으니까.”
- <서복>은 현명한 선택인가?
이용주 감독: “지켜봐야할 것이다.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 흡연과 관련하여,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절대 청정구역이어야 할 실험실에서 장영남이 담배를 핀다. 그러고 보니 <건축학개론>에서도 남자주인공이 실내에서 마구 담배를 피더라. 물론 그건 옛날이야기이지만. 왜 담배를 태웠을까.
이용주 감독: “그때는 담배를 많이 피던 시절이었으니. <서복>에서는 캐릭터 설명을 하고 싶었다. 그런 실험실에서 책임자가 담배를 피는 게 이상할 것이다. 게다가 기헌은 환자인데 말이다. 그 앞에서 보란 듯이 피우니. 저 여자 많이 이상한 여자구나 라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 서복의 운명, 극장과 OTT
- 요즘 영화는 극장 공개보다 OTT로 바로 건너가는 것이 화제가 된다. 영화감독으로서 ‘큰 극장 영화’와 ‘작은 OTT영화’에 대한 미학적 시각이 있는지.
이용주 감독: “이번에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난 이렇게 대답했다. 이전에 음악을 들을 때는 LP나 CD가 대세였다. 그런데 요즘은 다들 MP3나 스트리밍으로 듣는다. CD의 완성도가 엄청 높지만 말이다. 영화도 극장에서 보는 것이 낫다. 스트리밍으로 보면 약간 열화된 화면일 수 있다. 관객이 극장이 아닌 집에서, 책상 앞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공간의 확대이다. 이제는 음악을 듣는 사람이 스트리밍으로 듣는 것을 장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OTT도 그렇다. 완성도나 화면의 퀄리티는 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관계성의 문제가 될 것이다. 극장에서 티케팅하고 영화를 보는 사람은 중간에 스스로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끝날 때까지 영화를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OTT로는 한 편을 끝까지 보는 게 힘들다. 나도 그렇다. 지루할 때 화살표를 누르게 되더라. 옛날 비디오 볼 때는 생각하기 힘든 시청방식이다. 요즘 젊은 사람은 OTT로 영화 볼 때 1.2배속으로 본다더라. 그런 시대의 흐름에 고민하고 있다.”
- 그럼, <서복>을 극장에서 얼마나 볼까. 넷플릭스 영화가 극장에 내걸리더라도 영화관을 실제 찾는 사람은 얼마 안 되는 것 같은데.
이용주 감독: “<서복>은 극장과 OTT가 본격적으로 동시상영하는 실험이다. 티빙 때문에 극장가는 사람이 많이 줄어들까. 결과가 궁금하다. 코로나 시국이라 예전 데이터와 비교하기는 힘들 것이다. <승리호>를 스크린에서 보고 싶어 하는 영화팬이 있지만 못 본다. 고맙게도 <서복>은 극자에서 볼 수 있다. 이런 방식이 돌파구가 되었으면 한다. 서로 윈윈하지 않을까. 공생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되지 않을까 희망한다.”
- 차기작 준비하는 게 있는지.
이용주 감독: “써놓은 시나리오 전혀 없다. <서복>하기까지 오래 걸렸으니, 다음에 오래 걸리지 않게 부지런히 해야지 하는 생각뿐이다.”
오랜만에 자신의 신작을 발표한 이용주 감독은 “극장이든, OTT든 많은 관객 분들이 보시고 즐기시길 바랍니다. 그것 하나뿐입니다.”고 인터뷰를 마쳤다.
공유, 박보검 투톱 주연의 영화 <서복>은 지난 15일 극장과 OTT(티빙)에서 동시에 개봉되었다. '티빙‘이용자는 ’우엣돈‘없이 관람할 수 있다. 이용주 감독의 <불신지옥>, <건축학개론>도. 한번 더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