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들의 문제를 무시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방황하던 소녀. 결국 자신이 유일하게 솔직해질 수 있는 보드 위에 몸을 맡긴 그는 어디로 향했을까.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감독 이환)에서 임신을 한 뒤 방황하는 미성년자인 세진 역을 맡은 이유미 배우는 벼랑 끝에 선 청소년의 일그러진 서사를 표현했다.
Q. ‘박화영’에 이어 이환 감독과의 또 다른 작품에 참여했다. 세진이라는 역할을 제안 받은 후 어떤 마음이었는가?
놀랐다. ‘박화영’의 세진이를 너무 좋아했어서 너무 기뻤다. 정말 얼마 지나지 않아 시나리오 초본이 나왔다. 막상 시나리오를 봤을 때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있었지만 세진이를 다시 연기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보니 감사했다. 감독님한테 내가 뭐라고 이렇게 하냐고 물었는데 감독님이 ‘박화영’에서 연기한 세진이의 모습이 좋았고 배우로서의 매력이 있었다고 말씀해주셨다. 너무 기분이 좋고 감사했다. 책임감을 느꼈다. 배우로서 특별한 경험을 한 것 같다.
Q. 작품 속에서 파격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세진 역을 맡으며 어떤 생각이 들었나?
할 수 있는 건 다 해본 것 같다. 간접적이긴 하지만 새로웠고 신기했다. 처음에는 세진이가 사람들과 쉽게 관계를 가지고 바로 친구가 되는 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감독님이랑 말을 하며 많은 것들이 해결됐다. ‘박화영’의 세진이 가지고 있는 외적인 부분들은 가져오되 내적인, 심적인 부분들은 좀 더 깊게 다루려고 했다.
Q. 영화에서 뱉는 말들이 정제되지 않은 언어들이다. 악센트나 톤에 대해서는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궁금하다.
‘박화영’에서의 세진이를 가져왔다. 감독님이 원하는 어투나 웃음소리가 있었다. 그것에 대해서 많이 소통을 했다. ‘쬐끔’이라는 말도 대본에 조금이 아니라 ‘쬐끔’이라고 써져 있다. 웃음도 ‘크흡’이 있었고 ‘흐흐흡’이 있었다. 그런 것들을 섬세하게 나눠서 만들어나갔다. ‘뀨’라고 하는 부분도 대본에 있었다. 그 대사를 보고 감독님에게 “감독님은 그런 대사를 해보셨나요? 언제 해보셨나요? 저는 해본 적이 없어요”라고 말했다.(웃음) 그런 말을 시나리오에서 본 적이 없었다. 너무 충격적이어서 걱정을 많이 했지만 그런 장면들이 세진이의 캐릭터를 더 살려주는 장면인 것 같다. 워크숍 때 상대 배우랑 많이 맞춰봤다. 촬영 현장에서는 그래서 덜 오글거리지 않게 견딜 수 있었다.
Q. 촬영 전 배우들과 함께 워크숍을 갔다고 들었다. 워크숍은 어땠는가?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장면을 표현해보는 자리다. 잘못된 것도 없고 정답도 없고 그냥 다 해본다. 배우로서는 내가 해보고 싶은 것 다 해볼 수 있는 자리다. 카메라 앞에서는 동선이나 이런 제약들이 있으니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없다. 하지만 워크숍에서는 그런 것 없이 마음대로 표현해볼 수 있다.
Q. 그런 워크숍 과정을 거쳐 본인의 의견이 반영된 신이 있나?
노래방 신이다. 재필 역을 맡은 감독님한테 이 장면은 치욕을 줘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감독님이 아니라고 했는데 나중에 영화를 보니까 그 장면을 썼더라. 감독님한테 "이거 뭐죠?"라고 물었다. (웃음)
Q. 작품 속에는 파격적인 신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본인이 소화하면서 힘들었던 신은 없었나?
세진으로서 힘든 건 없었지만 개인적으로 이유미로서 힘들었던 장면은 존재했다. 맞아 쓰러져서 누워있을 때였다. 희연 언니의 목소리와 재필이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 힘들었다.
Q. 부당하고 불합리한 장면들도 많이 나온다. 세진이 아닌 배우 이유미로 봤을 때 같이 분노했던 장면은 무엇인가?
연기할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영화를 본 후 너무하다고 생각했던 신이 있다. 세진이 부부를 만난 장면이다. 상담사가 이야기를 나누다가 세진이를 그 부부에게 인도한다. 그렇게 잘해주는 척 하더니 인도한 곳이 불법 대리모를 원하는 부부의 집이었다. 이것이 세진이가 원했던 것일까, 정말 저 방법 밖에 없었는지 생각했다. 그 장면에서 아이러니한 감정을 느꼈다. 어쩌면 가장 세진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부부였는지도 모른다. 직접적으로 가해지는 폭력보다도 부부가 세진이에게 했던 것들은 정말 마음이 갉아먹는 듯한 위협이었다.
Q. 그렇게 현실과 무서운 어른들에게 시달리던 세진은 힘들 때마다 보드를 찾는다. 세진을 연기한 배우로서 세진에게 보드가 어떤 의미였다고 생각하나?
동경, 꿈, 자유이자 유일한 친구이면서 세진이가 유일하게 솔직해질 수 있는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스포츠는 내가 아무 생각 안 하고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수단이지 않나.
Q. 엔딩에서 보드에 몸을 맡긴 세진은 어디로 향했을까?
세진이 여러 사건들을 흡수하다가 과부하가 되었을 때 제일 먼저 찾았을 때 세정이었다. 그때 세진이가 흡수한 걸 다 뱉어내고 정말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짓을 해도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드디어 알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세진이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았을 것 같다. 나를 믿어주는 한 명의 사람을 얻은 것이니까, 그 정도면 행복하고 인생 잘 살았다는 생각을 하면서.(웃음)
*인터뷰는 2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