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환은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의 연출을 맡으며 동시에 방황하는 청춘 재필 역을 연기해 '감독'과 '배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다른 성질의 일을 동시에 해내는 일은 쉽지 않지만 그는 작품의 세계를 구성하는 디벨로퍼(Developer)로서, 그리고 그 세계에 속한 군상을 실감 나게 구현하는 플레이어(Player)로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Q. 전작 ‘박화영’이 많은 관심을 받았다. 10대를 조명한 새로운 작품을 다시 만들게 되며 어떤 평가를 받을지 긴장도 많이 됐을 것 같다.
사실 ‘박화영’이 극장에서는 스코어가 좋지 않았다. 이후 IP TV나 넷플릭스로 가면서 좋아진 상황이었기에 생각하는 것보다 큰 부담은 없었다. 늘 그랬듯 ‘어른들은 몰라요’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해나가면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Q. 이번 작품의 배우와 감독을 동시에 맡았다. 연기와 연출을 둘 다 소화해내는 과정이 힘들지는 않았나?
어색함은 없었다. 내가 맡은 재필이라는 역할은 다른 배우들의 감정을 끌어내는 역이었다. 플레이어처럼 그 세계에 들어가서 보니 배우들의 상호작용을 이끌어내는 것 또한 연출 방법의 일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재필 역을 맡기로 결론을 내렸다. 물론 체력의 한계는 있었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가는 것 같았다. ‘박화영’ 찍을 때는 안 힘들었는데 이번에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느꼈다. 체력이 확 떨어지더라.(웃음)
Q. 본인이 맡은 재필이라는 인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재필이는 갓 스무살이 된 친구다. 자신만의 신념이 있다. 전사가 있긴 한데 재필이가 많이 언급하지는 않는다. 그것을 이야기하면 방해가 될 것 같아서 관객들의 상상에 맡겼다. 재필이는 집을 뛰쳐나와 배달 일을 하면서 친구랑 살고 있다. 그러던 중 배달하러 왔다가 맨발로 뛰어든 여자아이를 마주친 것이다. 재필이는 그 일에 휘말렸다기보다는 도움을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어른들은 세진이를 외면했지만 재필이는 세진이를 외면하지 않았다.
Q. 하지만 작품 중반부터 재필이의 심경 변화가 느껴졌다. 그가 큰 감정의 동요를 겪게 된 후에 이어진 전개는 충격적이었다.
재필이는 세진이를 향해 연민으로부터 시작된 이성의 마음을 가졌던 것 같다. 하지만 세진이를 도와주기 위해서 노력했는데 기성 세대와 세상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실패를 하다 보니 아이들 사이에서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본인이 느끼게 됐다. 자신의 신념 또한 무너진 상황에서 그 분노가 세진을 향했던 것 같다.
Q. 재필이의 분노신을 비롯해 작품 속에는 폭력적인 신이 다수 등장한다. 특히 맞는 신이 많았는데 힘들지 않았나?
아픈 것보다 재밌었다. 허준석 배우한테 "재필이는 신념을 가지고 덤비니 네가 꺾어주지 않으면 절대 안 꺾을 거야. 그러니 마음의 무릎을 꿇게 만들어"라고 말했다. 촬영 끝나고 편집 때 편집 감독이 촬영 장면을 보더니 계속 내가 허준석 배우를 이긴다고 하더라. 허준석 배우가 그 분량 끝난 뒤에는 촬영이 없었는데 집에 안 가고 기다리고 있었다. '맞은 놈이 발 뻗고 잔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어 보여서 끝나고 개인적인 돈으로 배우들만 모아서 회식을 해줬다. 맞은 사람은 난데 술은 내가 쐈다.(웃음)
Q. (웃음) 엄청난 연기를 보여준 허준석 배우 이외에도 신스틸러 배우들이 다수 등장한다. 캐스팅 과정은 어떠했나?
조성하 선배님, 이승연 선배님 같은 경우는 오래된 인연이다. 정식으로 시나리오 쓸 때부터 두 분을 생각을 했다. 흔쾌히 한다고 이야기해주셔서 너무 감사했고 다른 선배님들 또한 진짜 작은 역이라고 이야기했는데도 흔쾌히 수락해주셨다. 이 모든 배우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이다.
Q. 배우들과의 훈훈한 분위기가 짐작된다. 작품 촬영 전에 배우들과 워크숍을 갔던데, 그 워크숍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워크숍은 대본 리딩, 리허설로 진행된다. 배우가 해석해온 것을 현장에 가서 찍기 시작하는데 '박화영' 때부터 워크숍을 했다. 그 시간이 정말 중요했다. 영화가 50퍼센트에서 60퍼센트 정도 완성되는 시간이다. 배우들이 저마다 살아오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써보는 시간을 갖는다. 이후 촬영에 오면 넓은 범위의 감정을 다 쓸 필요 없이 워크숍에서 느끼고 디벨롭했던 감정들을 나눠 부분만 쓸 수 있다. 그 감정은 배우가 번 것이기 때문에 또 다른 리허설이 필요 없는 것이다.
Q. 워크숍의 분위기도 그렇고 배우들의 유대감이 짙은 것 같다. 이번 작품에 참여한 배우들과의 사이는 어떤가?
우리는 모두 친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웃음) 햇빛이는 나한테 가끔 반말도 한다. 자기도 모르게 하는데 기분이 좋다. 나를 자기 또래로 만들어주는 것 같아서 기쁘다.(웃음)
*2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