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로부터 호명된 여성들의 삶과 젠더 이슈
성폭력은 인격의 살인이다. 자신의 의지로 타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사고관은 결국 '인간을 격을 지닌 존재로 보지 않는다'는 전제로부터 태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범죄의 심각성과 잔혹성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법적 제도와 의식은 어디까지 왔는가, 그 물음을 따라가보면 지금의 사회는 아직 갈 길이 먼 것이 현실이다.
정재은 감독이 연출한 'KBS 1TV 모던 코리아' 짐승 편은 폭력과 야만의 시대에서 성폭력 특별법이 제정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KDAS(KBS 디지털 아카이브 시스템)의 아카이빙 자료를 토대로 제작됐다. 1991년 9살 때 자신을 성폭행한 이웃집 아저씨를 21년 만에 찾아가 살해한 '김부남 사건'의 피의자는 최후 진술에서 "나는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 짐승을 죽였습니다"라고 말했다.
정재은 감독의 말에 따르면 짐승이라는 말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혐오 표현이었으며 시대적 언어였다. 민주주의의 확대와 빠른 경제 성장으로 인해 다양한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던 1980년대였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이 살고 있었던 현실은 미디어에 비치는 모습과는 달랐다. '모던코리아' 짐승 편은 1980년대와 1990년대의 현실을 통해 여전히 존재하는 성폭력을 마주하고 있는 2020년대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Q. 성폭력 특별법에 관한 주제를 선택한 핵심 계기는 무엇이었나?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의 젠더 이슈 중에서 성폭력 특별법 제정 투쟁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았다. ‘모던 코리아’의 핵심의제가 법제화 경험이 아닐까 생각했다. 성폭력 특별법은 당시 여성들이 가장 뜨겁게 연대하여 단 시간 안에 입법화시킨 법률이다. 물론 93년 국회 통과된 성폭력특별법은 당시 여성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는 않았고 현재도 계속 개정 중인폭력은 인격의 살인이다. 자신의 의지로 타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사고관은 결국 '인간을 격을 지닌 존재로 보지 않는다'는 전제로부터 태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범죄의 심각성과 잔혹성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법적 제도와 의식은 어디까지 왔는가, 그 물음을 따라가보면 지금의 사회는 아직 갈 길이 먼 것이 현실이다.
정재은 감독이 연출한 'KBS 1TV 모던 코리아' - 짐승 편은 폭력과 야만의 시대에서 성폭력 특별법이 제정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KDAS(KBS 디지털 아카이브 시스템)의 아카이빙 자료를 토대로 제작됐다.
1991년 9살 때 자신을 성폭행한 이웃집 아저씨를 21년 만에 찾아가 살해한 '김부남 사건'의 피의자는 최후 진술에서 "나는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 짐승을 죽였습니다"라고 말했다. 정재은 감독의 말에 따르면 짐승이라는 말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혐오 표현이었으며 시대적 언어였다. 민주주의의 확대와 빠른 경제 성장으로 인해 다양한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던 1980년대였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이 살고 있었던 현실은 미디어에 비치는 모습과는 달랐다. '모던코리아' 짐승 편은 1980년대와 1990년대의 현실을 통해 여전히 잔존하는 성폭력을 마주한 2020년대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Q. 성폭력 특별법에 관한 주제를 선택한 핵심 계기는 무엇이었나?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의 젠더 이슈 중에서 성폭력 특별법 제정 투쟁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았다. ‘모던 코리아’의 핵심의제가 법제화 경험이 아닐까 생각했다. 성폭력 특별법은 당시 여성들이 가장 뜨겁게 연대하여 단 시간 안에 입법화시킨 법률이다. 물론 93년 국회 통과된 성폭력특별법은 당시 여성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는 않았고 현재도 계속 개정 중인 법률이다. 이런 사실들에 관심 갖고 기억해 주길 바랐다.
Q. KDAS의 아카이브 자료가 방대했을 텐데 그중에서 다큐멘터리를 위해 어떤 자료들을 뽑아서 쓰기로 결심했는지, 자료를 선별한 기준이 궁금하다.
처음에는 ‘여성’이라는 이슈로 서치한 후 무작정 소스를 보았다. 여성을 미디어가 어떻게 다루어 왔는지 그 변화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사회가 필요로 하는 여성의 역할을 만들어가는 프로그램이 많았다. ‘여성이 가정에서 어때야 하는가’, ‘좋은 주부란 무엇인가’ 등 주체로서 여성을 다루지 않았다. 여성들이 부딪히고 있는 현실을 다루는 데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당시의 드라마들이 여성들의 당면한 문제들을 직접적이고 도전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에 놀랬다. 때로는 영화 이상의 압도적인 연출력에 감탄도 했다.
Q. 서치해서 찾은 여성들의 자료에서 미루어 본 1980년대의 모습은 어땠나? 당시의 현실을 봤을 때 어떠한 생각이 들었나?
여성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던 시기였다. 여성학의 세례를 받은 2세대들이 활발하게 미디어에 진출한 시기였다. 그 시기 미디어에서 그들을 얼마나 불편하게 대했는지를 본 것이 흥미로웠다. 여성들에게는 거의 봉건시대나 마찬가지였다. 여성들의 인권을 말하며 미디어에서 활발하게 싸워오셨던 분들에 대해 존경심이 생겼다.
Q. 이미경님, 권김현영님, 황금명륜님 등 다양한 반 성폭력 활동가들과의 인터뷰를 나눴다. 어떠한 방식으로 섭외가 이뤄졌으며 그들과 어떠한 주제를 가장 심도 있게 다루려고 했나?
성폭력 특별법 제정은 당시 모든 여성 단체가 연대하여 이루어낸 것이다. 제정될 법의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서로 이견도 있었던 것 같다. 인터뷰를 섭외하면서 당시 사건들과 직간접적으로 함께 했던 분들을 찾아내 인터뷰했다. 그분들과 인터뷰하며 내가 지금 보장받고 있는 내 삶의 많은 조건들이 그분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향상되어 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외에도 성폭력 특별법 제정 과정 뉴스나 푸티지에 가장 많이 등장하신 분은 최영애(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님이 있었는데 그분 인터뷰를 했다면 참 좋았을 거 같다. 시기가 안 맞아 성사되지 못한 게 아쉽다.
Q. 성폭력에 관한 법률에 대해 상세히 나온다. 다큐멘터리를 구성하며 가장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대한민국의 법적 체계가 있다면 무엇이었나?
법률 조문만 해도 A4 수십 장이다. 법률 제정 과정을 상세하게 담을 수는 없었다. 당시에 많은 논쟁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지나 입증할만한 영상 자료는 없었다. 핵심적인 주제는 ‘성폭력을 무엇이라고 보는가’였다. 여성 단체 분들은 성폭력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범죄행위라는 점을 꼭 넣고 싶었는데 못했다고 했다. 아무래도 당시 입법 주체가 대부분 남성 국회의원들이니깐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아카이브를 통해서 다양한 법률의 제정 과정을 살펴보면서 ‘법’이 변화하고 요동치는 ‘생물’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Q. 다큐멘터리에서 피해자들의 분투로 인해 피해자들의 권리가 확장되고 있다는 인터뷰 내용이 나오는데, 그 말은 '피해자에게 지어진 몫이 많다'는 의미라는 생각도 든다. 대한민국의 법은 가해자를 처벌하는 데 치중하고 피해자를 치유하는 것에는 소홀하다는 인터뷰 내용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받아들여진다. 이에 대해서 어떤 방식으로 우리는 피해자들의 상처를 보듬어줘야 한다고 생각하나?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그분들이 그것을 원할지 생각했다. 특히 피해자의 인권이 충분히 보호받지 못했던 과거의 영상과 사진 자료들이 도처에 있는데, 그분들에게 또 다른 피해가 되면 어떻게 할지도 걱정했다. 개인적 사건이 결국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이 된다는 걸 그분들도 그때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건들은 기억되고 호명되어야 하되 속물적인 관심에서는 벗어나야 하는 것 같다.
Q. 성폭력특별법도 아직 체계적으로 구성되지 않은 현 시대에서 기술이 발전하며 새로운 형태의 성범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용어나 인식 개선과 더불어 새로운 형태의 법 제도를 마련하고 정립해나가는 과도기를 거치고 있는 중이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모던 코리아'가 되기 위해 디지털 성범죄에 대하여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인터뷰를 진행 하면서 활동가님들에게 계속 반복 학습한 내용은 “성폭력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범죄행위다”다. 나도 늘 경계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Q. 한편으로는 어디선가 이 작품을 보고 있을 성범죄 생존자들에게 위로가 되는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진다. 일련의 일들을 겪는 것이 단지 개인만의 문제고 자책해야 할 것이 아닌 현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해결해 나가야 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 같았다. 작품을 만든 감독 본인은 이 작품을 통해 어떠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나?
우리가 같은 미래를 꿈꾸기 위해서는, 같은 시간을 보냈고 같은 역사를 살아왔다는 것을 확인하면 된다. 아카이브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일은 디스크 조각 모음(단편화 제거) 프로그램을 돌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드디스크가 느리게 돌아간다면 디스크 조각 모음을 통해 기억장치 내부의 비어있는 영역을 제거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아카이브 다큐멘터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