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기라는 감독이 있다. <숫호구>(2012), <시발, 놈: 인류의 시작>(2016), <오늘도 평화로운>(2019)에 이어 네 번째 장편영화 <인천스텔라>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B급과 C급 영화를 오가는 듯한 독특한 영화를 만들고 있다. 계보로 따지자면 (‘너무 많이 본 사나이’ 때의) 손재곤 감독이나 남기웅 감독, 바다 건너 그 옛날 ‘에드 우드’나 (‘철남’ 시절의) 츠카모토 신야, (‘배드 테이스트’의) 피터 잭슨을 떠올리기에 한다. 가당키나 한가. 적어도 <인천스텔라>에서는 크리스토퍼 놀란에 도전한다. 대.단.하.다!
백승기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것을 너무 좋아했단다. 영화 만드는 것이 꿈인, 영화감독이 소원인 백승기 감독을 ‘전화로’ 만나 25일 개봉하는 영화 <인천스텔라>와 <인터스텔라>와의 상관성을 물어보았다. 인터뷰의 목적이었다.
“감동스럽습니다. 저의 네 번째 작품이 극장에서 개봉됩니다. 지금은 코로나 시대이고, 영화가개인예술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고생한 결과물입니다. 이 영화를 배급시키기 위해 많은 분들이 얽혀 있다 보니 흥행성공에 대한 부담감도 생겼습니다.”
● UCC짤방의 제왕, 캠코더를 들다
백승기 감독은 2005년 무렵 작은 캠코더를 구입하여 영화 같은 동영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필름아카데미 등을 거치는 정식 감독의 길이 아니라 이른바 ‘UCC짤방’을 만들며 영화에 대한꿈을 키워온 것이다.
“처음 만들기 시작한 것은 16년 쯤 전이다. 팀 버튼 감독의 ‘가위손’을 패러디한 ‘망치손’이란 작품이었다. 패러디로 영화 만들기를 공부한 것이다. 영화들을 따라 찍으며 나름대로 재해석한 것이다. ‘다빈치 코드’를 패러디한 ‘달마도 코드’, ‘은하철도999’를 실사로 만든 ‘은하전철999’, 잭 스나이더의 ‘300’은 저희 버전으로 ‘3: 세 명의 전사’를 완성시켰다.”
(그 작품을 볼 수 있냐고 물어보기도 미안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당시 한창 UCC라는 게 생기고 인기를 끌 때였다. 저희가 만들어서 올리고, 많은 분들이 봐주시고 댓글도 달아주셨다. 1세대 UCC스타인 셈이다. 조회 수도 많이 나왔다. 계속 이어갔으면 유튜브 스타가 되었을텐데 말이다.”
“그러다가 ‘극장용’ 영화를 만드는 게 목표가 되었다. 광고가 있을 리도 없고, 불법으로 퍼가는 시절이니 수익이 생길 리도 만무했다. 만드는 사람에 대한 인식과 처우도 열악했다. 하다가 포기할 수밖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 계속, ‘저희들’처럼 복수제작 시스템을 말한다.
“그 당시에 영화사 ‘꾸러기’스튜디오‘를 만들고 캠코더로 작품 만들 때이다. 대학동기 두 명이 같이 시작했고, 나중에 생업전선 나가고, 멤버들이 바뀌고 더 들어오고 그랬다. 전반적으로는 멤버가 유지되었다.”
- 그렇게 만들어 극장에서 개봉된 영화가 ‘숫호구’이다.
“그렇다. 14개관에서 개봉되었다.”
- 잠깐, 자신의 영화의 미학이 무엇인가. 4편을 총괄할 수 있는 영화철학이 있다면.
“물론 거대자본이 투입되는 거작을 만들고 싶은 마음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을 갖지 못함을 인정하고 ‘없음의 미학’을 펼치고 싶었다. 없는 사람이라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미장센, 기술력, 인력을 활용하는 것이다. 주변공간을, 아기자기한 소품을 활용하여 키치적인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 작업이 지금의 한국영화에서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저예산 독립영화, 다양한 영화 말이다. 그런 게 많아지면 상업영화도 풍부해질 것이다.”
● 나를 알아봐준 BIFAN
- <인천스텔라>는 작년 여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서 처음 소개되었다.
▷백감독: “코로나 속에서 부천이 강한 의지로 영화제를 열었고 감사하게도 제 영화를 상영했다. ‘숫호구’때부터 부천은 내 영화를 모두 상영해 주었다. 백승기를 발굴해 준 것이다. BIFAN이 없었다면 제 영화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너무 감사하다. 영화제에 참석하여 관객의 호응을 보고, 질문을 받을 때 가장 행복하다. 부천영화제는 어느 정도 다양성을 인정하고, 장르를 이해해주시는 분들이 많아 행복하고 기대를 가지게 한다.”
- 부천에서 상영된 것과 이번에 개봉하는 것은 다른가? (부천버전은 139분, 개봉작은 108분이다)
▷백감독: “30분 정도 줄였다. 보고 난 반응은 갈린다. 퀄리티가 좋아졌다는 사람도 있고, 웃기지 않고 진지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처음 접하시는 분들은 아마 <숫호구>때처럼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코로나라고 극장에서 아무 영화나 막 내거는 것 아니냐 혼란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 부천에서 상영된 뒤 다른 곳에서 소개된 적은 없나? 평소 같으면 해외영화제에도 나가고 그랬을 것 같은데.
▷백감독: “SF를 컨셉으로 춘천영화제에 초청되었다. 그리고 과천의 국립과학관에서 기획 초청해주셔서 상영되었다. 부천, 춘천, 과천. 이제 사천에서 상영되면 될 텐데...”
- 가장 중요한 것은 ‘인천’에서 상영했어야 되는 것 아닌가?
▷백감독: “인천에서 디아스포라영화제가 있는데 관계자가 프리뷰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었다. 스크리너를 보내드렸는데 연락이 없다. 컨셉이 다른 모양이다.”
* 디아스포라영화제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인천은 문호를 개방한 이래 이주와 이민의 중심지였습니다. 1902년 한국 최초의 이민선이 인천항에서 하와이로 떠난 후,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이 항구와 공항을 통해 떠나며 들어옵니다. 한 세기의 기억을 통해 떠나고 들어오는 많은 이들의 설렘과 슬픔, 그리고 그들의 문화를 함께 품는 도시, 인천. 하늘과 바다를 통해 들어온 다양한 정체성과 함께하며 살아가는 이곳, 환대의 도시 인천에서 디아스포라영화제를 개최합니다.”
- 그럼, 편집의 차이를 소개해 주시면.
▷백감독: “추가된 장면은 없다. 두 남녀 사이의 관계가 편집되었다. 감정선이 많이 들어갔었는데 그걸 많이 잘라내었다. 길고 지루하다고 느낌을 줄였다. 상영시간을 108분으로 만들었다. 영화를 재미있게 보게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감독이 자신만의 예술에 취하면 안될 것이다.”
- 혹시, 해외영화제에 출품해 봤는지. 반응이 궁금하다.
▷백감독: “‘숫호구’때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영화제에 초청되어 간 적이 있다. 그때 기억이 좋아서 <시발, 놈:인류의 시작>와 <오늘도 평화로운>을 몇몇 영화제에 보냈는데 연락이 없다. 나름 분석을 해보니, 유머감각의 차이 같다. <시발, 놈>(*욕이 아님. 인류의 기원을 다룬 작품임 ‘始發’)에는 가짜 영어와 가짜 중국어가 속출하며 영화를 재밌게 끌고 가는데 외국 사람에게는 번역이 제대로 안 먹히는 모양이다. 우리는 재밌는데 그네들은 재미없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된다.”
● 인천스텔라, 그냥 영화가 아니다
- <인천스텔라> 이야기를 들어보자. 어떻게 만들게 되었나.
▷백감독: “나는 ‘우리존재3부작’을 만들고 싶었다. 우리의 존재를 인식하는 게 육체인지 정신인지를 보여주는 <숫호구>를 시작으로, 타고 나는 것인지 고찰하는 <시발, 놈>, 그리고 우리존재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 인류애를 살펴보는 <인천스텔라>이다.”
“우주를 담는 영화는 많은 영화감독의 로망일 것이다. 손이용 배우와 네팔 히말라야에 갔었다. 술을 마시고 취해서 옥상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데 우주 한가운데 떠있는 느낌이 들었었다. 그때 깨달았다. 나도 우주영화를 만들 때가 되었다고. 영감을 받은 것이다. 그때가 손이용 배우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 손배우를 위해 그리운 아버지를 영화에서라도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시나리오는 이렇다. 우주선을 타고 나갔다가 갑작스레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게 되고, 새로운 공간을 창조한다. 다중공간에서 돌아가시기 전의 아버지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나중에 만들려고 했더니 너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색을 해보려고 부단히 노력을 했지만 더 억지스러워지고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 것 같았다. 이왕 욕을 듣는다면 패러디 자매편으로 만들자고 생각을 바꿨다. 물론, 그 사이에 손이용 배우가 나이가 들어 아들 역할을 하기에는 애매했다. 그래서 그냥 아버지 해라 그랬던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우주로 나가게 되는 것이다.”
감독은 ‘인천스텔라’에 대해 이렇게 덧붙인다.
▷백감독: “영화는 1999년 작품 ‘콘택트’와 더 비슷한 영화라고 봐야할 것이다. 물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님의 궤를 상당부분, 도플갱어처럼 따라간다. ‘인천스텔라’는 사람(人)이 곧 하늘(天)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는 사람(人)이 땅(터)을 찾아 떠나가는 이야기이다. 물론 비공식적인, 뇌피셜이다.”
- ‘인천스텔라’는 5만 달러 영화답게, 로케장소가 인간적으로 소박하다. 촬영지를 소개해주시자면.
▷백감독: “아사(ASA,아시아항공우주국) 기지로 나오는 건물은 인천 월미도 월미공원에 있는 월미전망대이다. 아사 내부는 작년까지 근무했던 학교, 인화여고 내부이다. 부국장실은 교장실이었고, 통신팀이 뭔가 우주의 소리를 캐치하던 곳은 교무실 내 자리였다. 취조실은 교사들 회의실이고. 우주선이 발사되는 장소는 인화여고 운동장이다. 그밖에 집은 강화도 펜션을 빌려 찍었다.”
● 백승기 감독, 백승기 선생님, 백승기 게스트
- 백승기 감독은 전업감독은 아니다. 현직교사이다.
▷백감독: “현직 계약직, 기간제 미술선생님이다. 퐁당퐁당. 영화 촬영하거나 편집할 때는 영화감독. 지금은 1년 계약으로 미술을 담당하고 있다. 인천고등학교 1학년 1반 담임을 맡고 있다.”
코로나라서 선생님은 매일 출근, 학생들은 격주로 등교한단다. 영상수업 진행하시고. 그래서 이날 인터뷰도 수업시간이 끝나고 전화로 컨택트 되었다!
- 영화감독이시니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을 것 같다.
▷백감독: “요즘 애들은 그렇게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더라. 극장 안가고 집에서 드라마 보는 것 같다. 그리고 게임을 더 많이 하는 것 같고.”
- 라디오 고정게스트이다. (백승기 감독은 KBS 쿨FM 정은지의 가요광장(월-일 12~14시) 토요일에 매주 출연하여 영화이야기를 들려준다)
▷백감독: “감사하게도 1년 넘게 고정게스트로 출연 중이다. 격주로 수요일 방송국 가서 사전녹음을 한다. 처음엔 B급 영화를 한 편씩 추천하는 것이었는데 소재가 다 떨어져서 지금은 웰메이드 영화, 고전영화, 독립영화 등 골고루 하고 있다. 1년 정도 출연하고 나니 여한이 없다. ”
- 그동안 저예산, 독립, B급 영화를 만들어왔다. 만약 어디선가 제작비를 많이 대준다면 메이저 영화도 만들 수 있는가?
▷백감독: “만들고 싶은 영화, 소재는 굉장히 많다. 아이템은 진짜 많다. 그냥 저예산으로 우리끼리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멤버들이 나이를 먹고 있고, 어떻게든 백승기 영화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기도 하다. 상업영화로 좋은 성과를 내고 싶은 욕구도 있다. 상업시나리오 아이템을 몇 가지 갖고 있다.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저에게는 큰 예산이라고 할 수 있는 6천 만원으로 최대한 보여주려고 했다.”
- <인천스텔라>에서 구현된 CG는 어떤가. 저예산으로 커버가 되는 것이었나?
▷백감독: “간단한 것은 구현된다. CG프로그램, 컴퓨터 한 대, 사람 한두 명만 있어도 가능하다.”
- 그래도 저예산영화를 찍으면 배우들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인데.
▷백감독: “그렇다. 저도 최대한 잘해주고 싶은 생각이다. 잘해 준다고 하지만 고충이 있을 것이다. 페이를 많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밥과 술은 굶기지 말자, 감정이 다치지 않게 잘하자고 생각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경조사 잘 챙기는 것도. 이분들이 자신의 꿈을 키워가는 과정에서 조금이나마 성장해가는 것에 도움을 주고 싶다.”
● 목표, 시나리오
-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영화를 만들고 싶은 감독이라면 영화제에서 펼치고 있는 각종 지원 프로그램을 노릴만한데.
▷백감독: “이번 작품으로 인천영상위원회의 지원을 처음 받아보았다. 저의 문제인데, 영화제작 지원을 받으려면 시나리오가 있어야하더라. 대강의 스토리만 가지고 현장에서 쪽대본으로 영화를 찍던 입장에선 투자 받기가 어렵다. 앞으론 투자를 받기 위해서라 미리 시나리오를 완성시킬 것이다.”
- 아니, 그럼, 시나리오 없이 영화를 찍었단 말인가요?
▷백감독: “처음엔 없었다는 말이다. 배우들 캐스팅할 때 완성된 대본이 없다는 것이다. 배우들 앉혀놓고 스토리를 변사처럼 이야기한다. 머릿속에 있는 것을 풀어놓는 것이다. BGM도 깔고. 배우들 캐스팅이 늘어날 때마다 이야기가 진화한다. 저번 것은 별로였다. 바꿔보자고. 그렇게 이야기가 디벨로프 되었다. 캐스팅이 끝날 때가 되면 이야기가 완벽하게 된다. 쉽게 옮겨 적을 수가 있다.”
- 이번 영화 흥행은 어느 정도 바라보고 있는지.
▷백감독: “제 전작 최고 흥행은 2200명 정도이다. 이번엔 그래도 ‘반만 명?’ 배급사에서는 그렇게 표현하더라. 제 영화는 어떻게 어둠의 경로로 다들 보셨는지 아는 사람이 많더라. 아직 영화로 수익을 내본 적이 없으니. 이번에는 다만 얼마라도 벌었으면 좋겠다.”
“일단은 영화를 볼만하게 잘 만들어야할 것이다. 작은 영화지만 어떤 식으로 어떤 의미를 찾아내야 할 것이다. 좀 더 다양한 영화를 만들어야하지 않을까. 포기하지 않고 할 것이다. 영화란 것은 관객들이 마지막 봐주셔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니.”
백승기 감독은 다섯 번째 작품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사이즈를 키워서 함께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조금 보상도 해드리고 싶다고. 본격적인 투자를 받을 수 있도록 시나리오도 제대로 준비할 것이란다.
백승기 감독의 영화 <인천스텔라>는 25일 개봉한다. 대한민국 모든 극장에서 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소수의 선택받은 극장에서 지극히 선택받은 관객만이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참, 백승기 감독의 전화벨(대기음)은 F.R.데이비드의 ‘Words Don't Come Easy’였다.